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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웨이 Oct 04. 2019

토요일 밤 축맥의 유혹

토요일 밤. 축맥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토요일 밤 깊은 고민에 빠진다. 캔맥주를 딸 것인가, 말 것인가. 따든 안 따든 후회하지만, 매주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마시냐 마냐,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축구다. 술이 고픈 이유부터 말하자면 '축맥'(축구+맥주)하기 매우 적절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은 영국,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각국 리그 경기가 펼쳐진다. 축구 보며 맥주 마시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중계 전후로 각종 술 광고가 나오는 이유가 있다. 알코올은 사람의 기분을 돋우는 효과를 가져온다. 술이 들어가면 축구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가끔 지루한 경기를 보다가 술에 취해 잠들기도 하지만.


축맥은 내가 좋아하는 취미다.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뛸 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축구 중계를 봤으니 벌써 5년이 넘었다. 만원이면 캔맨주 4~5개를 살 수 있으니 축맥처럼 가성비가 뛰어난 취미도 드물다. 두둑한 뱃살의 절반은 축맥 때문일 거다. 물론 맥주 잘못은 없다. 캔맥주를 딴 내 탓이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 날 공을 차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다음 날 경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빨리 지친다. 평소보다 헐떡이는 시점이 일찍 찾아온다. 나이 들고 몸무게 늘면서 술로 인한 악영향이 더 크다. 축맥할 때면 새벽 2~3시에 잠 들어 몇 시간 뒤에 경기를 뛰니 그럴 만도 하다. 술 덜 깬 채로 뛰니 얼마 안 남은 실력도 발휘하기 어렵다. 아침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지각할 수도 있다. 선수 사정이 빠듯한 조기축구에서 늦으면 함께 공 차는 사람들에게 큰 민폐다. 회사는 늦어도 축구는 늦어선 안 된다. 방금 내가 만든 말이다.


그래도 축맥하고 싶고, 다음 날 공도 잘 차고 싶다. 안다. 욕심이란 걸. 그래서 나름의 절충안을 찾았다. 저녁 먹은 직후 또는 저녁 먹으면서 축맥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술 마시면 졸린 신체 특성 덕분에 일찍 축맥하면 자는 시간이 늘어난다. 좀 더 자고 일찍 술에서 깨면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한다. 물론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아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내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캔맥주를 땄다. '괜찮아. 아직 밤 10시니까.' 술보다 자기합리화에 먼저 취했다. 다음 날 경기력은 어땠냐고? 뻔하지, 뭐. 축맥한 걸 후회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엔 기필코 축맥하지 않겠단 헛된 다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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