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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웨이 Dec 28. 2019

조기축구팀 회장이 됐다


리더는 어렵고 무거운 자리다. 경기에서 지면 누굴 욕하나. 축구팀을 이끄는 감독과 완장을 찬 주장에게 쓴소리가 쏟아진다. 감독과 주장에겐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주장 완장에 적힌 'Respect'란 단어는 존경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존재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응축한 표현이다.

얼마 전 조기축구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자리를 맡았다. 조축팀을 이끄는 회장이다. 명칭부터 부담스럽다. 그동안 회장을 맡아달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애써 외면했다. 사람들을 아우르는 포용력이 부족한 내가 맡기엔 과분한 자리로 느껴져서다. 나와 맞지 않은 옷 같달까. 그렇다고 팀원들의 거듭된 요구를 거부할 순 없었다. 연말 총회 투표를 거쳐 회장이 됐다. 15년 가까운 조축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준 팀원들 덕에 어깨가 더 무겁다.

조축 회장이 뭐길래 호들갑 떠냐고 할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조축팀에서 회장 역할이 막중한 건 사실이다. 좀 과장하자면 회장에 따라 팀의 명운이 좌우된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 찰 운동장을 확보하는 일이다. 홈 경기장 없는 떠돌이 팀은 알 거다. 공 차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다행히도 우리 팀은 운 좋게 홈 경기장을 구했다. 11대11 경기를 차기엔 비좁아 아쉽지만. 구장 계약이 내년 2월이면 만료되기 때문에 새로운 경기장을 찾아야 한다. 지금 경기장 계약을 연장해도 되지만, 많은 팀원들이 원하는 큰 경기장(11대11 경기가 가능한)을 우선순위로 잡았다.

다행히 체육관 공사로 대관을 중지했던 예전 홈 경기장이 내년부터 대관 계약을 재개한다. 11대11 경기를 할 수 있고, 인조잔디 상태도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도 최적의 장소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다. 경기장 대관은 요일, 시간대별 후보 팀을 받은 뒤, 제비뽑기로 대관 팀을 정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비뽑기라니. 구시대적이나 충분히 공평한 방법이다. 무조건 당첨돼야 한다. 뽑기의 신이여! 한 번만 도와주세요.

회장에게 주어진 또 다른 임무는 회원 관리다. 30명이 넘는 팀원들 의견을 모아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생각보다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경기장 계약, 매치 상대 선정, 포메이션 짜기, 팀원 상벌 제도 마련 등등.


회장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릴 순 없다. 임원들과 논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매번 고심하지만 팀원들의 불만이 없긴 어렵다. 팀원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대한 절충하지만 모든 팀원이 항상 만족하긴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다수의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욕먹을 수도 있다. 그것 역시 회장 역할이다.


내가 정말 부담을 느끼나 보다. 회장 역할과 임무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는 걸 보니. 모든 일을 잘 할 순 없겠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주 일요일 공 차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는 팀원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그게 팀원 중 한 명인 날 위한 길이기도 하다. 전 세계 모든 조축 회장님들, 참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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