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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웨이 Apr 29. 2020

축구 로망 하나 이루다

축구공 실린 내 차 트렁크. 아직 어색하다.


공 차러 갈 때마다 떠올린 로망 하나가 있다. 소박하다 못해 하찮을 수 있는 작은 소망이다. 얼마 전 로망을 이뤘다. 의미심장하게 얘길 꺼냈지만 소소한 이야기다. '그게 무슨 로망이냐?'라고 키득거리는 이들도 있겠지.


이젠 일상이 될 나의 로망은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내 차에 축구장비를 싣고 집과 운동장을 오가는 것, 이게 끝이다. 안다. 사소하다 못해 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로망을 이루는 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부터 따져보면 15년이 흘러서야 이뤘다. 일의 무게를 생각하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난 로망을 이루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간절하지 않아서다. 축구가 아니라 자동차에 말이다.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 100만원 가까운 거금을 주고 운전면허증을 땄지만, 얼마 전까지 장롱(요즘엔 캐비닛이라 해야 하나) 속에 고이 모셔뒀다. 그 사이 면허 갱신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무운전이니 당연히 무사고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 달 전 처음으로 내 차를 갖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마트를 오갈 실력까지 키웠다. 차를 사고 운전을 배웠으니 로망을 이루는 건 시간 문제였다. 공이야 매주 찼으니 축구가 문제가 될 리 없었다.


웬걸, 축구가 문제였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2월부터 공을 찰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요건인 차와 운전이 해결됐는데 정작 축구장비를 쓸 일이 없다니.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자 거의 두 달 만에 경기가 잡혔다. 드디어 로망을 실현하는 날이 다가왔다. 평소와 달리 버스정류소나 지하철역이 아닌 주차장으로 향했다. 뒷자리에 축구장비가 든 가방을 던져두고 운전대를 잡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차 사고 혼자 운전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로망이 아니라 생존이 문제구나. 극도의 긴장 상태로 차를 몰고 풋살장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차가 좋긴 좋다. 평소 1시간 넘게 걸리던 거리를 30분 만에 도착했다. 뒷자리에서 가방을 꺼내들고 오랜 만에 만나는 팀원들에게로 향했다.


물론 로망을 이룬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음 속에선 으쓱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 자랑 일도 아니지만, 홀로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다.


막상 이뤄보니 별게 아니다. 역시나 괜히 썼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뿌했다. 오는 길에 같은 팀 동생을 집 근처에 데려다 주는 호의도 베풀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다가 보도블럭에 부딫칠 뻔 한 것말곤 완벽한 주행이었다.


그 녀석은 모른다. 와이프 외에 내 옆자리에 탄 첫 승객이란 걸. 나중에 만나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 서로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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