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한 EPL,뭔가 빠졌다

by 샤인웨이
익숙하지만 한동안 (생방송으로) 못 봤던 장면.


토요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전날 낮잠 잔 여파로 뒤척이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매일 아침 날 깨우는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기 전이다. 아직 바깥은 어둑어둑했다.


늦잠 자야 할 토요일 새벽부터 왜 부지런을 떨었냐고? 그렇다. 축구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잉글랜드 프로축구, EPL이 다시 열리는 날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TV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익숙하지만 한동안 보지 못한 장면이 나를 맞았다. 초록 그라운드에 선 멋진 선수들! 얼마 만에 해외축구 라이브인가!


더군다나 토트넘과 맨유의 경기다. 어떻게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나. 대한민국 주장 손흥민의 토트넘과 EPL을 대표하는 맨유(요즘 헤매고 있다만)가 맞붙는데 그깟 잠이 대수랴. 해외축구 팬이라면서 이런 경기를 놓치는 건 직무유기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경기 내용이 그저 그랬다. 손흥민이 헤딩으로 골을 넣을 뻔한 장면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골 장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졸면서 본 게 분명하다. 리그가 중단된 기간이 길어서인지 양팀 모두 실수가 잦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난 것치곤 소득이 적었다. 물론 자처한 일이라 하소연할 데도 없다.


경기 중 방역이라니. 앞으론 익숙하게 다가올 모습일지도.


그렇지만 밍숭맹숭한 관전평을 선수들 탓으로만 돌리긴 어려웠다.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기에도 헛헛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짙은 아쉬움의 근원은 뭘까. 뭐가 문제였지?


빠진 게 하나 있었다. 관중이다. EPL 관중석은 언제나 팬들로 가득 찬다. 이들의 부재가 예상보다 컸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팬들의 함성소리로 텅 빈 관중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선수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지만 매력적이지 않았다.


경기장이 아닌 TV로도 팬들의 공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니. 새로운 깨달음이다. 함께 호흡하던 팬들이 없으니 선수들도 흥이 나질 않는 것 같았다. 골을 넣고도 세리머니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살짝 조기축구 분위기가 풍겼다. 대부분 무관중 경기인 조기축구에선 세리머니하면 상대 팀은 물론 같은 팀에게도 눈총을 받는다.


어떤 일이든 날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힘이 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언제쯤 12번째 선수들이 함께 경기장에서 선 장면과 마주할 수 있을까. 그동안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며 아침을 맞았다.



※30대 조기축구 아저씨의 소소한 일상을 전합니다. '구독'과 '라이킷'은 해트트릭보다 더 큰 감동 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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