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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꼬꼬 Jan 20. 2020

<라 비 앙 로즈, 2007>

영화로 삶 말하기 5

악보가 타고 남은 비명의 곡. 




낭만주의자들은 청중의 귀에 대고 열렬하게 살기를 주문한다. 그들은 열렬히 노래하고 열렬히 사랑하고 열렬히 슬퍼하는, 내일이 오지 않아도 좋을 오늘 밤의 황홀함을 세상에 흩뿌려놨다. 젊음을 어떻게 만끽할지에 대한 문장들과 뜨거운 사랑을 향한 찬사, 일상의 순간순간과 사소한 감정들까지 조명하는 낭만적인 시선은 가끔씩,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결심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드물게 가끔씩 현실이 사무치게 두려워질 때면 우리는 장밋빛 무대를 찾아 나선다. 그런 낙원이 없을 줄 알면서도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성대한 무대를 상상하고 갈구한다.


나는 별처럼 자라고 싶었다. 별은 외로울수록, 시선이 모일수록 빛난다. 별들은 저마다의 무대를 누벼왔다.  가장 밝은 어떤 별은 밤바다의 거친 뱃사람들을 관객으로 가졌고, 사연이 가득한 별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상에 오르내렸다.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빛나는 별에 동경을 담아 이름을 달다가 붙일 이름이 떨어졌는지, 이제는 반대로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켜 별이라 부른다. 땅 위의 별들은 제법 눈부시고 그중 몇몇은 진짜 별보다도 거창한 무대를 가지는데, 야속한 차이가 하나 있다면 바로 두려움이다. 하늘의 별들은 홀로 억년을 버티면서도 두려움이 없으나 이들은 문득 찾아오는 하룻밤의 외로움에도 위태로워진다.


에디트 피아프는 20세기 최고의 가수라는 빛나는 이름을 달고 살았지만 실제로 눈부셨던 시간은 짧았다. 버려짐, 사별, 시기, 갖은 비난, 마약과 병. 그녀는 쏟아지는 불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무대 위를 그토록 고집했던 이유는 무대 아래서의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자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피아프는 저녁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우리에겐 저녁이 새벽이에요'라고 답했다. 그 답처럼 그녀의 황혼은 자정도 전에 다가와버렸다. 온 세상이 노래하는 피아프를 사랑할수록, 피아프의 노래가 열렬한 만큼 그녀의 빛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아뇨,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아뇨.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뇨,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아뇨,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뇨,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건 대가를 치렀고, 쓸어 버렸고, 잊혔어요.

난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아요. 나의 추억들로 난 불을 밝혔었죠.  

나의 슬픔들, 기쁨들, 이젠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요.

사랑을 버렸고, 그 사랑의 전율도 버렸어요. 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예요.

아뇨,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뇨,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아뇨,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뇨,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거짓이었다. 매번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무대에서 조차 노래했던, 무대 밖을 그토록 두려워하던 피아프가 공연을 포기한 그 순간에 문득 찾아온 것이 미셸 보케르와 샤를 뒤몽의 이 곡이다.

'아뇨, 난 무엇도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 없는 삶은 없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가사는 마치 조금 더 행복하지 못했던 자신과 타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을 향한 절규이자 최면처럼 스몄다. 그녀는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연인의 죽음 앞에서도 무대로 향했고 쇠약한 몸이 버티지 못해 쓰러지더라도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 노래는 무대 밖에서의 초라한 자신이 두려운 만큼, 노래하는 순간에는 가장 빛나야만 했던 에디트 피아프의 마지막 비명으로 들렸다.


나는 별처럼 되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그저 빛나는 별인 줄만 알고, 빛나야만 하는 별인 줄은 몰랐다. 별과 빛에 얽힌 강박이 삶을 얼마나 짓누르는지, 바스러지면서도  삶을 다하여 타들어가야만 발할  있는 생애가 얼마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지, 그렇게 타고 남은 잿더미는 얼마나 냉랭한 영광인지를 나는 짐작할  없었다. 빛나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언제나 무대일 수는 없다. 백스테이지의 초라함이 두려운, 빛나고자 하는 누군가는, 약간의 거짓을 섞어 견딘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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