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섬, 잠시 쉼
오후에 되어 좋은 산책 메이트가 되어주셨던 아주머니와 작별한 후, 나는 미리 예약해두었던 워크숍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비건로드투어에 합류했다. 비건 식사를 한 후 비건 디저트 카페에 가는 순서였다.
모임장소에 가니 아삭아삭순무민박 크루이신 파도님이 먼저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시골언니로 오신 한 분이 함께 했다. 우리는 원래 가기로 했던 두부전문점이 문을 닫아 석천돌솥밥에 가서 영양솥밥을 먹게 되었다. 난 오히려 좋았다. 나물과 생선으로 이루어진 비건 페스토 스타일의 밥상이 우리집 본가 밥상 같았다.
나물반찬이 양쪽에 9개씩 18개가 깔리고 된장찌개와 인당 생선 한 마리씩 나오는데, 나물이 엄청 많아서 우리 세 명은 남기지 않으려고 엄청 애쓰면서 먹었다. 보통 4명이서 오는 식당 같았다. 열심히 분발했음에도 조금 남겨서 아쉬웠다. 맛있고 가격도 적당해서 좋았다. 다만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강화 대부분의 식당은 미리 전화를 해서 오늘 영업하는지, 몇시까지 하는지, 예약되는지를 확인하고 예약한 후에 가는 것이 좋다.
이동을 위해 아삭아삭순무민박으로 돌아왔다. 이때 라운지 1층은 스트롱파이어 피자집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운전을 위해 크루인 베니스님이 합류하셨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여기에서의 추억이 인상적인 것은 이날의 대화 때문이었다. 처음에 식당에서 비건과 제로웨이스트 관련된 이야기를 15분 정도 하고, 이후에 K-POP 이야기를 무려 다섯 시간 동안 했다. 사실 그중 많은 시간은 이동하는 내내 틀어놓은 노래를 함께 부른 시간이다. 각자 좋아했던 아이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즐거웠다. 신나는 드라이브 음악을 틀어놓고 흥겹게 따라 불렀다. 웬만큼 굵직한 아이돌은 다 나온 것 같다. g.o.d, 신화, 엑소, H.O.T, 젝키,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투애니원, 빅뱅 등등. 역시 드라이브의 참맛은 BGM에 있다.
이어 비건 디저트 카페인 희와래 커피로스터스로 출발했다. 카페를 운영하시는 부부의 이름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는 곳이었다. 카페 앞에 있는 잔디밭에 도착하니 하늘이 청명하고 초록색 푸르른 벼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쏴아~ 하는 소리가 눈으로 들리는 듯 했다. 마치 초록색 바다 같았다.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논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벤치 옆에는 꽃들도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강화에서 쌀이 많이 나왔지. 여기가 그 유명한 강화쌀이 자라고 있는 곳이구나.”
새삼 눈앞의 풍경이 가깝게 다가왔다. 논뷰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희와래에 가서 논의 푸르른 광경을 꼭 한 번은 바라보길 추천한다. 이날 강화쌀에 왠지모를 애정과 신뢰가 생긴 나는 그 후로 자주 가는 두레생협에서 강화쌀을 종종 사먹곤 한다.
이날 희와래에서 있었던 인상적인 경험이 또 하나 있다. 희와래 카페 내부로 들어가자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 웅장하고 신비로운 소리에 정말 깜짝 놀랐다. 싱잉볼과 공명과 울림이 비슷한데 조금 달랐다. 하나의 음이 쭉 울리는 싱잉볼의 느낌이 아니라 계이름이 있어 연주가 가능했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와 처음 보는 악기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왠지 뒤집어 놓은 가마솥에 각을 만들어 평면을 여러 개 붙여놓은 것 같은 악기를 누군가가 손으로 두드리며 연주하고 있었다. SF 영화 속 외계인이 타는 UFO 같기도 한 모습, 바로 자연을 담은 악기라는 핸드팬이었다.
핸드팬에 대해 찾아본 설명으로는 프라이팬이나 솥뚜껑같이 생긴 단순한 쇠붙이를 두드림으로써 엄청난 공명을 일으킨다고 한다. 2000년도에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내가 그때까지 몰랐던 것도 그럴만했다. 모습은 다소 특이하지만 웅장한 소리가 아름답고 가을하늘처럼 청명해서 인상적이었다. 맑고 깨끗한 울림이 널리 퍼지면서 듣기 부드럽고 귀가 편안했다. 핸드팬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악기라서 명상용 음악으로 자주 쓰인다. 내가 방문한 날, 마침 우리나라 1호 핸드팬 연주자인 하택후님이 오셔서 연주중이셨던 것이다. 나는 정말 그날 운이 좋았다. 핸드팬의 매력에 빠져 그 이후로 종종 핸드팬 연주를 온라인에서 검색해 들어보기도 했다. 언젠가 한번 배워보고 싶다.
멋진 음악을 감상하는 좋은 시간이 흘렀다. 음악도 좋았지만 비건 디저트 맛집 희와래에서 디저트를 안 먹어볼 수 없지. 우리 일행이 먹은 것은 쑥 카푸치노와 스무디볼, 당근 케이크 등이었다. 희와래에서는 비건 베이킹 및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나중에 체험하러 가봐도 좋을 것 같다.
워크숍 프로그램 리스트 중에서 연미정에서 배우는 아프리카 댄스 수업이 있었는데 일정상 참석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강화의 멋진 정자인 연미정에서 아름다운 바다와 뷰를 보며 아프리카 댄스를 배우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연미정에서 하는 스윙댄스 워크숍이나 요가 강좌 프로그램도 있어 하나라도 꼭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일정과 맞는 게 없었다. 하지만 마침 오늘의 이동을 맡아주셨던 베니스님이 바로 아프리카 댄스 강사님이셨다. 이런 좋은 기회가 있다니!
내가 댄스 워크숍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내니 각자가 배운 춤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희와래 잔디밭 앞에서 댄스 타임이 이뤄졌다. 베니스에게 아프리카 댄스를 배우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 댄스와 함께 각자 배웠던 스윙댄스와 밸리댄스 등을 추었다. 댄스 경연같이 진행된 그 시간이 지금 돌아봐도 참 즐거웠다. 아프리카 댄스의 특징은 농업의 각 단계를 형상화한 댄스 동작인 것 같다.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경작을 준비하고, 수확하는 단계들이 따라 하기 쉬운 동작으로 되어 있어 몸치나 초보자도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춤을 추니 운동이 되어 어느새 몸이 풀렸다.
이날은 구름 낀 하늘로 인해 날씨가 흐려서 야외에서 춤을 추기에도 적절한 날씨였다. 다음날 햇빛이 쨍쨍한 땡볕에 서 있어 보니 그 전날 흐린 날씨였던 것이 진짜 감사했다. 상대적으로 맑은 공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라섹 눈 수술을 해서일까. 강화에서 햇살이 너무 밝을 때는 땡볕에서 눈을 뜨기 힘들었다. 양산이 있으면 좋다.
시내로 돌아온 후, 강화의 명물 중 하나인 조양방직에 갔다. 조양방직은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레트로 감성의 카페이다. 신문리 미술관이라는 이름도 있었는데, 옛날 물건들의 수집과 진열이 대단히 잘되어 있었다. 예쁘고 구경할 물건이 정말 많아서 끝도 없이 있는 것 같았다.
“뭐 이런 별천지가 다 있어!”
“이렇게 오래된 물건들을 다 모으려면 얼마나 걸렸을까?”
수집가의 세계란 신기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다닌 만큼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보고 감탄하곤 했는데 우리나라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다. 서울과 성남 도시에만 있어 지역 로컬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도시 촌년(?)이었던 나를 반성했다. 책이나 영화, TV로 보는 간접 경험도 좋지만 이렇게 직접 와봐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확실히 로컬 지역으로 오면 카페만 봐도 각양각색의 특색있는 넓은 공간들이 많다. 나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 자주 우리나라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양방직 구경을 마치고 숙박하고 있는 아삭아삭순무민박 1층인 스트롱 파이어로 돌아왔다. 스트롱 파이어에는 까만색 스트롱 파이어 티셔츠가 걸려있었다. 순간 스트롱 파이어가 강화! 라는 것을 깨닫고 너무 웃겼다. 아재개그 같은 네이밍이 재밌었다. 그리고 거대한 조양방직을 열심히 돌아다녀서일까. 아까 그렇게 먹었는데 또 배가 고팠다. 학창시절 성장기라 한창 자라날 때 먹성처럼 다시 무언가 먹고 싶었다. 피자집이니 피자를 시켜먹기로 했다.
“뭐 드실래요? 고구마치즈피자 맛있겠다! 여기 밴댕이피자도 있어요.”
“피자에 밴댕이가 얹어져 있어요? 생선이요? 우와, 되게 신기하다!”
“우리 맥주도 시켜요~!”
나와 함께 다녔던 시골언니 참여자 S님과 함께 고구마치즈피자를 시켰다. 함께 희와래를 다녀온 베니스가 구워준 피자는 꿀맛이었다. 사과 맥주도 시켰는데 진하고 달콤하고 사과맛과 향이 좋아서 정말 맛있었다.
나는 강화의 특산물인 밴댕이를 얹은 밴댕이 피자가 궁금했다. 결국 밴댕이 피자 역시 먹게 되었다. 밴댕이 피자는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나 맛있었다. 당일에 가져와 싱싱하고 맛있는 밴댕이를 도우에 얹어 화덕에서 구워냈다. 잘 익은 밴댕이 생선에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매콤하면서 짭짤한 맛이 내 입맛에 딱이었다.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 밴댕이 피자를 강화의 명물이라고 칭하고 싶었다.
하지만 2년 후인 2024년에 다시 강화에 갔을 때는 스트롱 파이어 피자집이 사라지고, 1층 강화유니버스 라운지가 되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숙소와 가까운 1층 라운지에서 영감모임과 워크숍, 회고를 진행하는 것은 참 좋았지만 맛있는 화덕피자를 맛볼 수 없어져 이 부분은 참 아쉬웠다. 언젠가 또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