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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Feb 14. 2023

글쓰기 취미 덕에 생긴 특별한 일

얼마 전 나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량하고 다정한 목소리의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을 사내 방송 작가라고 소개했다.

'작가? 그런데 왜 나에게?'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굴려봐도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해 온 이유는 몇 해 전에 내가 썼다는 글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글이지? 내가 쓴 게 맞나?'

일주일 전 일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은데, 한 달 전도 아니고 일 년 전도 아닌 몇 해 전 일을 무슨 수로 기억을 하겠나. 게다가 흔한 이름 때문에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잘못 전달된 전화나 문자를 받아본 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썼다던 글을 보고서야 사실 확인이 되었는데...

내막은 이랬다. 몇 해 전에 취미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당시 '글쓰기'에 대해여 소개글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회사에서 구성원들의 취미를 소개하는 코너가 생겼고, 해당 코너에 '글쓰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1분 남짓의 취미 소개 녹음파일과 사진을 보내주면 영상으로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내 목소리와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할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추억 하나가 생기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렁뚱땅 수락을 하고 목소리 녹음부터 시작했다. 평소 말하는 톤에서   정도 밝게 녹음해 달라고 요청 받았는데,  톤을 맞추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튜브를 뒤져 보았다. '밝은 톤으로 말하기'라고 치자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5 짜리 영상을 보고 나서 바로 녹음을   언니에게 피드백을 받았는데, 돌아온 답은 이랬다.

"예쁜 척 30%만 빼고, 다시 담백하게 녹음해 봐!"


예쁜 척은 뭐며, 또 30%는 어떻게 빼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그냥 평소 목소리 톤과 비슷하게 녹음을 하나 더 했다. 아마추어끼리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것도 아니니 작가의 픽에 맡기기로 하고 두 개의 음성파일을 모두 보냈다.


당시에 글쓰기의 쓸모에 대해서 말할 때 나는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 때 글쓰기를 통해서 직면하고, 정리하고, 해소하는 효과에 의미를 두었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난 지금 내가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글쓰기의 쓸모는 나 자신에 대한 또 다른 발견이자 독자와의 연결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 이야기로 독자와 연결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로 확장되는 것.


스크립트를 고쳐 쓰고, 녹음을 하고, 사진들을 고르는 작업은 과거의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었다. 회사 구성원 인솔자로 간 유럽연수 중 자유시간에 ‘작은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작가가 운영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책방에 갔던 일, 독립서점 투어를 하면서 만난 취향저격 책방들과 사람들, 멘토님의 초대로 책방에서 글쓰기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던 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해 본 일까지.


글쓰기의 쓸모를 이야기하려다 글을 쓰게 돤 계기,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찾은 글쓰기의 맛이 더 생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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