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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Jan 18. 2023

'무릇'이란 말을 경계할 것

뼈 때렸던 멘토님과의 만남

기다리고 기다리던 멘토님과 만났다.

작년 연말에 못 뵈어 새해 들어 부랴부랴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열일 제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장소는 평점 5점 만점을 자랑하는 어묵바였는데, 우리는 바 테이블에 앉아서 뜨끈한 어묵 국물과 함께 치킨요리를 시켰다. 내가 시킨 것은 패션후르츠 칵테일이었는데, 음료가 나오자마자 멘토님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설마... 혹시 환공포증 있으세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패션후르츠의 씨가 까만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들을 응시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환공포증이 있다.


환공포증은 원이나 구멍 따위들이 한 곳에 뭉쳐있는 것을 보고 공포 또는 혐오를 느끼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혹시 나에게도 환 공포증이 있나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창에 '환공포증' 치고 나오는 이미지 몇 장을 보면 된다.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거북함이 몰려오면 '환공포증'이라고 보면 되겠다.

때아닌 '환공포증' 때문에 멘토님의 지령이 떨어졌고, 나는 신속하게 환공포증을 유발하는 음료를 먹어 없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오만'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주제에서 문득 몇 년 전 과거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스토리텔링 글쓰기 강의를 듣고 푹 빠져 버렸다. 스토리텔링에 빠진 것인지, 그것을 강의했던 강사에게 빠진 것인지 모른 상태로 뒤이어 해당 강사가 진행한다는 다른 강의를 찾아가 듣게 되었다.


아마도 예닐곱 차례의 강의가 있었을 텐데 나는 중반부를 넘어가는 시점에 중도 포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강사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 진행되고 나서부터였다. 수강생 한 명씩 본인 작품을 읽고 강사님이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한 번은 수강생이 잔뜩 주늑이 들어서 얼굴을 들기 어려울 정도라 안쓰러울 정도였다. 피철평(피가 철철 흐를 정도의 날카로운 평가)이 있은 후였다. 난 그 상황을 보는 게 너무 불편했다. 현직 작가가 수강생의 성장을 바라고 애정을 담아서 하는 평가였다면 불편함이 올라왔을까? 처음 마주했을 때는 이 불편한 감정을 무어라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강사는 판사 같았고, 수강생은 재판장에 나온 죄인 같았다. 강사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강사답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감동적인, 때로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얹어서 말에 힘을 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입담 덕에 나도 귀가 쫑긋 해지고 눈이 반짝 빛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그녀의 평가 메시지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라면 그 결과물인 글이 이렇게 나올 수가 없다'는 맥락이었다. 그녀는 글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제 글을 배우려고 시작한 새내기 작가의 글이 아닌, 그녀의 삶을 재단하고 매도하고 있었다.


'글 한 편으로 그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있나?'

'글 한 편을 보고 느낀 것을 가지고 사람을 재단할 권리가 있나?'

신이 아닌 이상 글 한편으로 그 사람을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오만이지 않나!


때때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소통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이러한 오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마주하는 누군가에게 '무릇 직장인이라 함은, 무릇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게는'이라는 잣대를 들이밀거나, '무릇 리더라 함은, 무릇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게는'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이 온다면 오만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할 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이런 구성보다는 이런 흐름이 좋겠다.', '이런 상황에는 이런 표현보다는 이런 은유적 표현이 의미전달에 유용하다.'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글쓴이의 삶이 옳은지 그른지를 재단할 일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리더도, 구성원도 상대방에게 틀을 씌워 놓고 판단하고 재단할 일이 아니다.  


'환공포증'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대화는 '오만'에 대한 담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코치로서 에고를 내려놓고, 선입견을 버리고, 평가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오만'이 올라올 때가 있다. 이때 오늘의 대화를 기억해야겠다. 나도 누군가를 재판장에 앉은 죄인 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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