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는 나의 눈길을 끌었다
키가 크고 가느스름한 이파리들이 마주보며 가지를 벋어올리고 있는 그 나무는
주위의 나무들과 다르게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기 위해 잠시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산수유나무라고 했다
11월의 마지막 남은 가을이었다
산수유나무를 지나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이를테면 천 년 전에도
내가 그 나무에 내 영혼의 한 번뜩임을 걸어두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되풀이될 산수유나무와 나의 조우이리라는 것을
영혼의 흔들림을 억누른 채 그저 묵묵히 지나치게 돼있는 산수유나무와
나의 정해진 거리이리라는 것을
산수유나무를 두고 왔다 아니
산수유나무를 뿌리째 다아들고 왔다 그후로 나는
산수유나무의 여자가 되었다
다음 생에도 나는 감탄하여 그의 앞을 지나치리라
봄에 피는 산수유나무의 노오란 꽃을 보게 되면 깜짝 놀란다. 꽃 핀 다음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알아 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시인의 마음처럼 다음생까지 가진 않더라도 매년 그 앞을 지나치면 감탄이 절로 난다. 산수유나무 외에 도심에서 흔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라일락과 배롱나무가 또 다른 감탄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