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의형제>에선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국정원 요원인 이한규(송강호)는 상부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판단을 하다, 주요 남파공작원을 놓쳤다. 이를 두고 여러 선후배가 모여 있는 회의실에서 직속 상사로부터 질타를 받는 이한규. 상사와 설전을 벌인다. 그러다 급기야 상사는 선을 넘는다. 한규에게 "너 이혼했잖아?"라며 인신공격성 말을 내뱉은 것. 그리고 그에 더해 한규를 거친 말로 더 몰아붙인다.
그 순간 빡?이 돌아버린 한규는 잠시 속에 있던 불평을 털어놓다, 이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상사 단점을 읊조리고 회의실을 나가려 한다. 상사는 그걸 보고 또 열이 받고, 그렇게 한규와 상사는 몸싸움으로 엉겨 붙으며 그 씬이 끝난다. 조용히 자숙한다 하고 넘어갔으면 관두지 않았어도 됐건만, 어쨌든 한규는 그렇게 직장을 때려치웠다. 그 뒤, 한규는 흥신소 비슷한 개인사업을 하며 살아간다.
한규는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선까지 참아보다가, 상사가 그 선을 넘자 부여잡고 있던 끈을 탁 놓아버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들이받고 회사를 나온 것이다. 처음 그 장면을 보던 나는 희열에 찬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 살아가면서 절로 알 수 있었다.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아주 소소한 선택의 기로에서 내 기질 그대로의 행동대로 내달린 결과가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한다는 것을. 그 갈림길에서 갈라질 때는 스스로도 몰랐을 테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이 인생의 큰 그림을 좌우하는 '결정적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 선택은 논리와 이성이 아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내 타고난 본연적 기질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한규도 국정원 직원과 흥신소 사장이라는 인생의 차이가 촉발된 매우 사소한 그 첫 갈림길에서, 인내의 한계선을 넘은 상사의 발언에 욱 해 스스로도 선을 넘어 깽판을 쳤다. 그렇게 그전까지 자기 정체성의 큰 부분이었던 '국정원'이라는 세계를 탈출했다.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지구 반대편에 전혀 예상치 못한 큰 결과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와도 비슷한 지점이다. 소소한 삶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기질대로 선택한 것이 나중에 보니 전혀 다른 인생을 낳은 거다.
그리고 그 갈림길 기준이 되는 최초 지점엔 인간마다 각자 '자존'이라는 궁극적 한계선이 존재한다. 그 선 안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자아가 다른 누군가나 특정한 상황에 의해 '탁', '꽝' 하며 폭발하듯 터지고 스스로도 제어 못하는 감정적 트리거(trigger)가 당겨지며 제멋대로 날뛰게 되는 거다.
이는 다른 한국영화 '쏜다'에서도 잘 표현돼 있다. 주인공 박만수(감우성)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상사와 다른 직원들이 함께 한 회식에서, 박만수는 그간 잘 참아왔던 인내심의 한계가 폭발한다. 동료 및 선후배, 상사가 반강제 퇴사하는 박만수를 진심 어리게 위로하기보단, 자기들끼리 신나서 오히려 만수를 희롱한 것이다. 이에 밥상을 엎은 만수, 그 뒤 그는 생애 처음으로 '마치 영화 같은' 폭주를 시작한다.
물론, 영화와 현실은 차이가 있다고 누군가 지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간 경험으로 비춰 봤을 때, 위의 영화 사례들과 현실이 그다지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나도 몇 차례 삶의 갈림길을 거쳐왔고, 어떤 때는 아주 즉흥적 감정선에 따른 결정을 했고 이후 인생이 크게 휘청이기도 했다.
논리와 이성, 계획에 따른 선택이나 결정은 인생의 큰 변화를 촉발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마다 차이는 있다 해도, 누구나 이성적으로 사고할수록 리스크를 최대한 낮추는 쪽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인생이 휘청일 정도의 큰 갈림길엔 분명 충동적 트리거(trigger)가 존재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의 경우엔, 그 갈림길이 '퇴사할까 말까'하는 그 순간에 많이 집중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의형제>에서의 이한규처럼 직장인(화초) / 자영업 및 프리랜서(잡초) 등으로 삶이 갈리는 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 대한민국 직장 수준에선 그 갈림길이 노예와 인간이란 팻말로 구별돼 보이기까지 한다.
나도 그런 갈림길을 여러 번 겪어봤다. 가깝게는 최근 아주 사소한 갈림길으로만 보였던 그 시기에 마음 가는 대로 퇴사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삶의 큰 향방이 저울질되는 그런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이 비슷한 것을 몇 번 경험해보면 안다. 현재 내 삶이 작은 변화에 따라 당장의 내일도 알 수 없는 안개 자욱한 과도기를 지나는지 아닌지를.
그리고 충동적 선택이 이뤄지는 갈림길엔 자존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군가 자존의 한계선을 건드리면, 광분하게 돼 있다. 그리고 그게 촉발제가 돼 인생이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버린다. 이 논리는 영화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자존'의 정도와 기준이 인간마다 조금씩 차이 날 뿐이다.
자존(自尊)은 '자기 품격을 스스로 지키는 것'이며,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자존심(自尊心)은 '타인에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마음'을 뜻한다.
'자존'은 스스로 사수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자기 기준과 선을 넘어서는 모욕과 부당함에 항거하도록 설정돼 있다. 후진 문화와 시대를 살았던 노예들도 결국 들고일어났다. 그렇게 최소한의 자존을 부여잡도록 설정된 것은, 달리 말하면 그게 곧 인간의 존재 이유기도 하기 때문이다. 너무 처참한 수준으로 자존을 잃어버리면 어떤 경우에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최근 들어 여러 공무원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많았다. 나는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긴 커녕, 영혼을 질식시킬 만큼의 가혹행위를 하는 직장 내 저질 문화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자존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는 거지, 앞뒤가 바뀌어 자존을 죽여가면서까지 누구 밑에 붙어있는 것은 무언가 한참 잘못돼도 잘못됐다.
물론 자존을 내세우다 소소한 손실(해고, 승진 누락, 평판 악화 등)을 보는 걸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나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내 뒤에 가족의 생사까지 달려있다면 결코 내 멋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존만 강조하며 살면, '잦은 퇴사'와 '꼬여버린 커리어'뿐만 남을 수 있다. 대부분은 아무리 모욕적이어도 자기 커리어를 그렇게 꼬이게 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자기 존엄과 가치의 최저 수준을 충족하는 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그 수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 밑에서 굽실굽실 100% 개가 되는 것은, 언젠가는 스스로 서야 하는 인간의 삶에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행위란 사실이다.
마지막 '자존'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 최소한의 선을 지켜내지 못하면, 가축이나 노예, 좀비가 된다. 물론 일부는 내줘야 할 때도 있다. 그게 사회생활이니까. 하지만 자존을 전부 내주는 것만은 우리 모두가 피해야 한다. 전부 내주면 그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닌, 좀비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렇게 100% 뼛속까지 노예가 되면 스스로 서야 할 때 서지 못한다.
아무리 봐도 '이건 가축이나 노예밖에 안 되는데' 싶게 직원을 대우하는 직장 대표나 상사들에도, 많은 수의 인간은 아예 '개기지' 않는다. 그 경우 얻을 수 있는 것은 '안전한 노예직 유지'다. 자존을 넘기고 받은 대가 치고는 너무 가볍지 않은가. 노예직이라면 거기 말고 어디든 있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등 전 세대는 그런 부당함에 항거하지 못하고 기죽고 살아야 했다. 직장은 삶의 큰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직장은 그렇게 큰 가치가 못 되고 있다. 시대는 빨리 변하고 있다. AI 등장에 따른 단순 반복 일자리 박멸, 코로나가 촉발한 비대면 문화 성장, 스마트스토어 및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돈벌이 시스템 등장 등 단순 '대면 근로 노동'에 의한 경제활동은 이미 빠르게 구시대 산물이 돼가고 있다.
코로나로 그 변화 흐름이 더 가속화된 요즘, 젊은 세대는 더욱더 기존 악폐습을 때려 부수어야 한다. 그게 정치든 뭐든 어떤 수단이든, 나 스스로든 뭐든 좋다. 어떤 조직에서든 마치 하급자나 후배가 위로 '개'처럼 기는 문화를 물려받아선 안 된다. 새로운 세대가 그것에 항거하고 깨부수어야 한다. 악폐습을 일삼는 인간은 노예나 좀비 취급해야 한다. 시급히 처단해야 할 시대착오적 핵폐기물이다. 우리도 그런 류가 돼선 안 되고, 그에 앞서 그런 구시대적 인간은 배척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최소한의 자존 없이는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가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과 가치, 품격을 스스로 지켜내야 하고, 또 그런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돼야 한다. 어떠한 조직, 사회에서든,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프리랜서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자기 긍지를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삶의 갈림길에서도 우리는 자기 가치와 품격을 지킨 채 다른 새로운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다. 노예나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서, 다른 새로운 세상을 당차게 살아나갈 수 있는 거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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