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직장에서, 친목 단체에서, 어떤 그룹에서든 타인들은 '나'를 평가하고 재단한다. 나란 존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기들끼리 정의 내리고 점수를 부여하고 규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진실한 애정이나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인간들이 주변 인물들에 대해 품는 보편적인 가십거리용 관심에 지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런 평가들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체성은 내게서 혹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주변의 인정, 직업, 직함 등 외부 요소로 나를 규정해선 안 되고, 무엇보다 타인의 시각이나 평가로만 나를 정의 내리거나 스스로를 함몰시켜서도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도 주변 평가나 시선을 받아들여야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 아닌가요?'
어느 정도는 맞는 소리다. 아집과 똥고집으로만 가득 찬 인간은 발전하기 어렵다. 일정 부분 타인의 말을 참고할 필요는 있다. 사람은 주변 반응과 조언을 통해 발전하기도 한다. 다만 그 받아들이는 정도를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주변 평가와 시선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지를 자기 나름의 '선'으로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평가라는 것은 내가 어느 상황에 어느 집단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과거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당시, 나에 대한 주변 평가는 회사별로 차이가 컸다.
A 회사에서 나온 나에 대한 평가 중 하나는 이랬다. "OO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데, 글은 참 잘 쓴다"
반면 B 회사에선 이런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OO 씨는 글은 못 쓰는데, 사람은 많이 만나고 다녀서 좋다"
정반대의 평가지 않은가. 둘 다 나에 대한 평가임에도 전혀 다른 인물을 가리키는 것마냥 다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렇듯, 똑같은 인간을 두고 벌어지는 평가질이 다른 집단, 상황 속에서 아예 다른 묘사로 이뤄지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인물을 평가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내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음식을 먹고 누군가는 불평을, 누군가는 극찬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예론 이상한 소문에 휩싸인 한 인물을 만났는데, 소문과는 달리 무척 좋은 사람인 경우도 많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이기에 내게 좋은 사람이 다른 인물에겐 정반대의 나쁜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부 평가에 지나치게 자신을 함몰시킬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나쁜 놈이라고 몰아붙이는데, 다른 누군가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일까. 외부 평가는 상황에 따라, 평가 주체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구성된다.
한 마디로 답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것은 최대한 투명하고 깔끔하게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평가 주체를 나로 두고 있는 것이 인생을 사는 데 더 유리하다. 변화무쌍한 인생살이에서 내가 아닌 남에게 평가의 칼을 쥐어주고 그것에 따라 일희일비하면 인생 전반적으로 불안한 상황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잣대로 나의 인식과 결단으로 살아가야 한다.
물론 남 밑에서 일을 하는 '직장생활' 중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타인 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가능하면 자기중심을 잡고 가야 한다. 남의 평가에 크게 휘둘리고 아파하면, 이는 곧 주변에 숨어있는 각종 악마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만 더 높아진다.
그렇다면, 타인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주변 타인이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중요 인물이 아닌, 그저 그런 별 것 아닌 인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인간이 직장 상사건, 대표건 불알친구건 뭐건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내게서 멀어질 수 있는 존재들이다. 정말 나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는 존재를 굳이 꼽자면 '내 짝', 결혼 상대자 정도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정말 진실한 인연이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파국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때엔 어찌 보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더구나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지고 불륜이 판을 치는 현시점에선, 어쩌면 결혼 상대자도 결국 남에 불과한 존재일 수 있다.
즉, 현대사회에선 대부분의 관계는 인스턴트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제법 대인관계를 잘 맺는다는 인간도 알고 보면 남들을 자기 유리한 대로만 이용하거나 '취할' 뿐인 경우가 많다. 요란하게 친한 척하며 몰려다니는 무리도, 잘 살펴보면 몇 년, 몇 달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각자 인생을 살기 바쁘다. 어떤 인간은 자기 결혼식에 부를 인간 수를 유지하기 위해 인맥을 관리하기도 한다.
대체 이게 무슨 개짓거린가
싶겠지만, 그게 보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류들이다. 경멸과 혐오를 품으면서도 가식과 연기로 얼굴 가죽을 뒤엎은 자들이, 소위 말해 대인관계가 좋고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인스턴트식 관계에선 서로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애초에 요구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정체와 본심을 이미 다들 알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인간은 그렇게 가증스럽고 가식적인 존재다. 그렇기에 타인의 조언 역시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다. 자기 뜻대로 상대를 휘두르고 조련하기 위한 말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자신은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했다고 기만하면서, 결혼식이라도 하는 날엔 몇 년간 연락하지도 않던 묵혀둔 지인에게 달랑 문자 하나 보낸다.
그런 존재들의 말을 마음 깊이 담아둘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저 내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도만 받아들이면 된다. 대부분은 폐기 처리해도 되는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인간 부류는 자기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 인간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내기도 한다. 자기는 상대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상대가 그에 충분히 피드백을 주지 못한 경우 마음속에서 원망감을 키우는 부류다. 그래서 상대가 특별히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악의적으로 상대를 안 좋은 소문 속에 가둬버리려고 한다.
그런 가식적이고 애정을 갈구하는(애정결핍) 부류의 가증스러운 짓거리는, 자존감이 높고 몰려다니지 않으며 독립적인 마인드를 가진 부류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가증이들의 소문 공작으로 인해 자존감 높은 부류는 그 실체와 달리 어떤 집단 속에선 매우 이상한 인간이 돼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도 휘둘릴 필요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런 모든 공작은 결국 거품이고 헛지랄에 불과하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물 흘러가듯 살아가는 이상
그러한 질 나쁜 가증이들도 결국 '내'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순 없다. 그리고 혹여 가증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공적 영역에서 화살을 쏴대면 그냥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기 인생을 잘 살면 된다. 가증이들의 흠집 내기 전략에 일희일비하면 그들의 바람대로 되는 것이다.
타인은 결국 멀어질 존재 밖에는 안 되는 거다.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에 그렇게 큰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우쭈쭈 해봤자, 그들은 그런 '내'가 자기 수중에 들어왔다고 여기며 (나를) 하대할 가능성만 더 높아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끄고
그저 내 인생에 몰입하는 것. 그리고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 그게 최고의 복수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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