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역경을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특히 어떤 때는 한꺼번에 모든 악재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방어할 힘도 정신도 부족한 상태로 그 모든 것을 받아내야 하는, 그런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시기다. 그런 때에 인간은 버팅기다 튕겨나가버리기도 하고 나중엔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모든 걸 놔버리기도 한다.
웃기는 건, 하늘은 그런 힘든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 듯, 더한 시련들을 더 쏟아내기도 한다는 거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는 그렇게 한꺼번에 모든 고통과 번민들이 화살촉과 같은 날카로움으로 내게 들이닥친다.
그때, 사람은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 진다. 그러다 어쩔 땐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절망과 함께 밑바닥으로 떠내려간 인간을, 대부분의 타인들은 반기지 않는다. 처음엔 그걸 모르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으레 인간들은 잘 나가는 인간들과만 어울리고 싶어 한다. 혹은 강하게 역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는 사람이라도 돼야 한다. 그래야 주변인들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주변 반응을 겪으며 밑바닥을 찍는 경험을 하게 되면, 결국 누구나 깨닫게 된다.
역경은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간 인생을 살면서 객관적인 현실에서든 아니면 마음의 심연 속에서든 뭐든,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일들을 몇 차례 겪어왔다.
나는 어둠 속에 숨죽여 살던 때가 많았고, 가끔은 일반인들처럼 별 탈 없어 보이게 잘 먹고사는 기간도 있었다. 그러다 어떤 때는 마치 하늘에서 상이라도 주는 듯이 주변에서 날 '마치 대단한 것처럼' 띄워줬고, 그러나 얼마 뒤 다시 변두리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일들도 있었다.
그러면 마치 내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당시에만 내 곁에 있던 주변 인간들은 여러 요상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쟤, 저러다 저렇게 될 줄 알았어'라며 비웃거나, 희미한 승리자의 표정을 짓거나, 위로하는 척 상황을 살펴보며 은근 우월감을 느끼거나, 이때다 싶어 그간 하지 못했던 감정 섞인 비수의 말을 쏟아내거나 등등 매우 다양하다. 물론 처음엔 도움을 주려는 인간도 있지만, 내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절망의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도 결국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상대방 입장에서 자기가 나와 비슷한 '급'인 줄 알았는데 내가 말도 안 되는 '급'으로 올라가는 듯한 상황만 연출돼도(실제론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에선 시기 질투가 폭발한다. 그럴 때는 주변 인간들이 부들부들 대며 열폭하는 꼴사나운 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절로 인간 혐오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어쨌든 다행히도 나는 그런 여러 다양한 반응들을 10대 후반~20대 초반쯤에 비교적 일찍이 겪어봤다. 어렸던 만큼 당시엔 그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내 상황에 따른 고통보다, 희미하게나마 혹은 안일하게나마 '믿고' 있던 주변 인간들이 돌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한 공포나 상처,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후 세월이 흐르며, 그런 인간들이 보여준 반응들이 나만 특별해서 겪은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인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 매스미디어 등에서 늘 '의리, 의리', '진정한 사랑, 사랑' 해대는 것은 결국 그게 현실에서는 너무나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현실에서 그렇게 존귀한 가치, 진심을 담은 의리나 사랑은 잘 없다. 자기 이득에 따른 비즈니스, 그게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이룬다. 결혼 상대자를 찾으면서 사랑이 아닌, 조건만으로 인간을 한우 등급 매기듯 하는 결혼정보회사 같은 존재들이 이를 너무나 잘 증명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을 믿을 게 아니라 나를 믿어야 한다.
최악의 밑바닥을 경험해보면 알게 된다. 정말 인생 밑바닥에서까지 '나'란 존재를 부둥켜안고 우쭈쭈 해줄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심지어 부모나 자식, 형제도 결정적일 때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고, 심하면 연이 끊길 수도 있다. 부모나 자식마저 나약하거나 도태돼버린 혈육을 한심하게 보거나 등을 돌려버리기도 한다.
혈연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피가 아예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간혹, <내가 잘 안 됐을 때 위로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잘 됐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이 더 희소하다>는 논리로, 사람이 어려울 땐 오히려 주변인들이 잘 돕는다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맞는 얘기다. 다만 그건 그 어려울 때의 정도가 어느 정도 회복 가능해 보이는 수준일 때 얘기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사회적 직급, 직업 등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부모 상을 당했을 때면 장례식에 거의 모든 지인들이 나타나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직업, 사업체, 재산 등 모든 것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글은 그런 최악의 밑바닥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의지와 정신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경험상, 인생에서 정말 힘든 시기는 일정 간격을 두고 몇 번씩은 오게 돼 있다.
다행인 것은 공황장애, 정신 착란 등 증세가 동반되기까지 하는 극도로 절망적인 시기(ex.기신대운+기신세운=핵기신운)라 해도 얼추 1~2년 정도만 참으면 된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사를 살펴보면 어려운 시기는 10~20년, 혹은 길게 보면 30년 정도까지로 넓게 미칠 수 있다. 다만 그런 인생 흐름일지라도 정말 극도로 어려운 시기는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1~2년 정도씩이란 얘기다. 그런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고통의 시기에,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세상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생기기도 한다. 정말 죽을 정도의 고통은 1~2년만 버티면 되는데도 그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 오인하다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거다.
나도 그런 시기를 몇 번 지나왔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 잠깐의 어려운 시기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어려운 시기엔 모든 것을 놔버려도 된다. 직장을 관둬도 되고, 혈육과 절연할 수도 있다. 당연히 주변인을 손절하거나 잠수 타도 된다. 결국엔 그 시기는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적인 때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당도하는 법이다.
그때 주변 인간들에 도움의 손길을 뻗쳐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은 보기 좋은 것에 환호하고 승리자에 응원한다. 패배자, 낙오자에는 가식적인 동정이라도 전달되면 다행이다. 어려운 시기에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그렇기 때문에 밑바닥을 경험한 인간은 '사람이란 동물'을 믿지 않는다. 애초에 기대지 않는다. 차라리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의 비즈니스 관계나, 아예 내가 기분 좋으면 보상을 해버리곤 답례를 전혀 바라지 않는 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추락의 경험이 처음이거나 사회적 관계에 큰 가중치를 둬왔던 사람들에겐, 어려운 시기에 겪는 각종 인간들의 횡포와 본모습 등이 정말로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도움을 바라다가 더 극한의 절망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되는 이유다. 그러니 처음엔 쉽지 않겠지만, 가능하면 어려울 땐 자기가 먼저 주변에 대한 기대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햇살은 비춘다. 어둠이 깊었던 만큼 환희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만큼, 인간은 예전보다 한참 위로 더 성장해 있다. 징징거리지 않고 주변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겸허하게 보게 된다. 배신당했다고 질질 짜지도 않게 된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야생 초원에서 치명상을 입은 수사자는 그냥 홀로 죽어가게 된다. 그를 돌보는 암사자나 무리는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인간 세계엔 병원이나 약국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져도 혼자서라도 노가다나 배달, 식당 일을 할 정도의 정신력만 부여잡는다면 약값 정도는 충당할 수 있고 죽지는 않는다.
죽지는 않는다면, 우리는 점점 강해져 갈 뿐이다. 극도로 어려운 시기엔 주변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고, 내 육체와 정신만은 어떻게든 다잡고 단련해야 한다. 다시 세상에 나갈 그때를 기약하며 그 시간을 현명하게 흘려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때엔 뭐든 잘 될 리 없다. 다시 말하지만 살아남는 것만 해도 잘한 것이다. 생존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 내게 비수를 꽂은 인간에 아파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걸 겪은 만큼 이후엔 그런 인간 부류를 미리 알아내고 대처할 혜안을 얻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또 알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세상에 나오면, 내게 등을 진 것만 같았던 인간들도 다시 머쓱 거리며 돌아온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을 지인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겐 미소를 지어 보이자. 반대로 가증스러운 인간이었거나 그와 유사한 부류엔 그저 겸허함을 견지하자. 어차피 대부분의 인간은 내게서 멀어져 갈 존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저 다시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뚜벅뚜벅 걸어 나갈 뿐이다. 그게 인생이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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