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통제력의 중요성 : 존버가 아니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인생을 살다 보면 '존버'(존X 버텨!)하라는 주문을 듣는 경우가 가끔 있다. 주식, 비트코인 등 투자자 세계에서 자주 쓰였던 말들은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나는 일상생활에서의 존버를 조금은 부정적으로 본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 무조건 존버만 외치다가 인생 하직하는 경우(과로사 등)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무조건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을 늘 해왔다. 그리고 이젠 더 심도 있게, 그 말의 진의(眞意)를 드러내 보고자 한다.
무조건 존버 하는 게 능사가 아닌 이유는
그러한 태도가 자기 삶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력'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그 기분이나 태도는 한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다.
가령, 직장 생활에서 각종 스트레스와 정신병을 얻은 한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래도 주변에선 "거기 나오면 뭐 먹고살래, 존버해, 회사 나오면 지옥이야" 따위의 소리를 해댈 것이고, 그 소리를 듣고 두려워진 그 남자는 죽기 직전까지 버텼다. 그러다 결국 과로사했다. 이런 경우? 은근히 많다. 무조건 버티다가 골로 가는 거다.
무엇이든 '무조건 버틴다'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력을 잃은 행위다.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지겠지', '버티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그 안일한 생각은 내가 스스로 내 삶을 결정하고 선택해나간다는 자존감과 자기 확신을 흐리멍덩하게 만든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내 길'이 아니라, 그냥 상황에 순종하고 주변 악마들에 굴복하는 '비주체적'인 길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선택과 확신으로 굳건한 자존감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에게, 무조건 존버하라는 주문이나 조언은 일종의 폭력이다. 내 의지나 선택과는 무관하게 그냥 상황에만 무조건 나를 맡겨 무수히 많은 NPC(영혼이나 자기 의지가 없는 인간 부류를 표현)들과 함께 이리 저리 휩쓸리라는 소리인가.
그것은 자기 삶의 선택이나 결정을 무책임하게 주변에 전가하는 방관자적 태도다.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깨닫고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을 획득하고 자신만의 '선'과 '기준'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러한 '무조건 존버'라는 주문은 무책임한 '자기 방관자'의 얄팍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물론, 정말로 존버해야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남성의 경우, 군대에서 자기 삶을 찾겠다고 탈영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군대의 경우를 제외하면 딱히 '무조건 존버'해야 할 다른 상황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인이 된 상태라면 대부분은 상황에 따라 나 스스로의 '가치관'과 '확신' 및 '기준'으로 대처해나가면 되는 길의 연속이다.
예를 들어
직장 다니다가 6개월 만에 관둘 수도 있다. 연애하다가 일주일 만에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 사업하다 몇 개월 만에 접을 수도 있다. 결혼 후 몇 달 혹은 몇 년 만에 갈라설 수도 있다.
기존 가치관에선 이러한 사례들을 보고, 너무 무책임하다고 너무 생각 없이 끈기 없이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시각도 이해한다. 사람은 끈기 있게 해 볼 수 있을 만큼 끝까지 노력해봐야 하는 것은 맞다. 해볼 수 있을 수준까지 해봐야 자신의 한계와 그릇, 단점들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도 젊은 날에 그쳐야 한다는 게 더 정확한 진리다. 맞지 않는 인간을 사귀면서 오랜 기간 고통을 받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중엔 무척 짧은 기간에도 재빠르게 인간을 손절하는 선구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 이게 내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 재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생긴다. 경험이 쌓이고 내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손으로 찍어서 입에 가져다 대봐야 아나. 냄새를 맡아볼 수도 있고 그냥 외양으로만 봐서도 그 본질을 알아보는 능력들이 생긴다. 그렇게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방식과 내공으로 빠른 손절 타이밍이 내면에 자리 잡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특정 상황에, 특정 조직에, 특정 인간에 질질 끌려다니며, '존버'라는 명목으로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존버'하라고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는 사람을 잘 살펴보면, 그 자 역시 특정 상황이나 조직, 인간들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주체적인 사고나 판단, 선택을 못하는 인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지 못해서, 질질 끌려다니며 고통받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무조건 존버하라는 주문은 그런 인생의 진리를 무시하는 처사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에 조직에 순응하기만 하고 자기를 다른 것에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처사다. '존버'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반문할 수 있지만, 대개 존버는 '선택'과 '결단'의 느낌보다는 그냥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기고 아무리 X같아도 무조건 버티라는 '비주체적'인 주문에 가깝다. 왜 나를 고문에 가까운 괴로움의 길로 방치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선택이나 결단하려는 주체적인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존버를 외칠 게 아니라, '뭐든 선택해야 한다'라고 강조해야 한다. 자기 통제력이나 결정권이 없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늘 부모가, 선생이, 친구가, 교수가, 사장이, 상사가 하라는 대로 살 것인가.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만 살 것인가.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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