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해보자.
대한민국 직장을 다니는 30대 남자 A가 있다. A의 직급은 한참 낮고 같은 부서 바로 위에 차장, 부장 등 높은 연차의 상사들을 떠받들어야 하는 구조 속에 있다.
그런데 A의 행동은 일반 다른 노예와 다르다.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은 아니나, 뭔가 자존감이 가득해 보이고 부장, 차장 등 상사들이 대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다. 부하로서 '헤~ 헤~' 거리며 상사 비위를 맞추려는 행위는 일절 없고, 하나의 노예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회사 안에서 숨 쉬는 느낌이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기중심이 잡혀 보인다고나 할까.
이러면, 회사 내 많은 노예들은 그러한 A가 왠지 모르게 아니꼽게 느껴진다. 그들에게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회사에 자기 목숨을 맡겨놓고 '헤~ 헤~ '거리며 '날 잡아 잡수십시오' 쯤 하는 어투와 태도로 충성하는 애완견 마냥 처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A는 전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고 굳세 보이기까지 하다.
위에 아부하기 바쁘고 학연, 지연 등 모든 선을 활용해 빠꼼거리며 회사 내 줄 서기, 정치질, 친목질에 특화한 상사 들일 수록, A와 같은 한 명의 인격체를 가만히 보고 있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쯤 되면, 그들은 어떻게든 A를 자기들과 같은 노예로 만들고자 회유하거나 협박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격체로서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인간적인' 상사는 그런 A에게 부당한 짓을 덜 할 것이다. 어차피 자신도 직장 내에서 노예 코스프레를 통해 살아남아 먹고사는 것이니, 사회 초년생인 A를 이해 못하진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내추럴 본 노예', 즉 노예 마인드를 타고났거나, 그렇게 완전히 흑화한 유기체들은 A와 같은 '인간'을 가만두고 보지 못한다. 그러게 돼 있다.
자신들은 자기 위의 상사들에 개처럼 꼬리를 흔들고 손바닥이 닳도록 싸바싸바 해대는데,
A는 왜 저렇게 당당하게 마치 자신들과 다른 '인격체'처럼 행동하는가, 하는 꼬인 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기에 A가 노예화 조련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급기야 이상한 방식으로 괴롭히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갖은 악질적인 행위를 퍼붓게 된다.
이때 A의 대처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그러한 노예 문화가 질려서 퇴사하든지, 노예들에 동화돼 그들과 같은 길을 걷든지, 아니면 노예가 된 척 연기하든지 등이다.
사회 초년생들은 회사를 다닐 때 이처럼 상사들이 직원을 괴롭히는 이유를 명확히 꿰뚫어 보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러한 본질을 모른 체, 노예들의 농간 술수 등에 계속 처맞게 된다.
자신은 그러한 노예화 조련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내추럴 본 노예'거나, 아예 애초에 너무 만만해 조련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대한민국 직장을 다니기에 최적화된 인재란 소리다.
그러한 선택받은 인재를 제외하면,
분명 우리가 피해야 할 선택지만큼은 확실하다.
뭐든 절대 '100% (뼛속까지)노예'가 되는 길은 택하면 안 된다, 이 말이다.
아예 퇴사하거나, 노예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그 둘 정도가 적당한 선택지다.
그게 아니라 완전히 회사에 종속돼 '100% 노예'가 되는 삶은 가축이 되어 먼 훗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어차피 직장은 직장일 뿐이다. 만일, 여러모로 따져보아 자신의 현상황에서 직장을 다니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서게 되면, 노예 연기를 일정 부분 하는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노예들의 농간 및 회유가 너무 짙은 문화라면, 빨리 퇴사하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보면 된다.
즉 대한민국 직장은 노예 짓을 해야 다닐 수 있다는, 그 명확한 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추럴 본 노예도 아니고, 완전히 100% 동화된 노예도 아닌데 노예 짓을 어떻게 하냐, 혹은 그렇게 연기한다고 통하겠나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자. 어차피 실상 '100% 노예'보다는 '연기 노예'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서로들 연기라는 것을 서로 간에 알고 있으니 괜찮다. 직급이 오를수록 그러한 '노예 코스프레'는 통하지 않겠지만, 반대로 사회초년생일수록 우선은 주변에 '100% 노예'보다는 '연기 노예'가 많은 상황에서 시작하게 되는 법이다.
간혹 시작부터 '100% 노예'가 많은 아주 말 못 할 그런 직장도 가끔 있긴 하다. 만일 그곳 말고는 다른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다급한 상황이라면, 죽기 살기 식으로 노예 연기를 해야 한다.
한국영화 <기묘한 가족>의 한 장면. 인간이지만 마치 좀비인 척하는 장면이다. 한국영화 <기묘한 가족>에서는 주인공이 창고에 있던 좀비 옷으로 갈아입고 마치 좀비인 척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수많은 좀비들을 속이고 밖에 있던 차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후각에 예민한 좀비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죽기 살기로 좀비 짓을 해서 살아남은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에서도 그렇게 죽기 살기로 노예 짓을 하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괴감이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100% 노예'들보다, 노예 연기하는 자들이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연기 노예'들은 본질적으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100% 노예는 거의 좀비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나라면 노예 문화가 극심한 회사일수록 그냥 퇴사하고 만다. 차라리 노가다, 배달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노예 연기를 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 생각한다.
어차피 정도의 차이일 뿐, 대한민국 직장은 거의 다 노예 짓을 해야 다닐 수 있다. 다니려면 선택은 하나다. 연기뿐이다.
아니면, 아예 그곳을 뛰쳐나와 전혀 다른 자기만의 세상을 만드는 선택지도 있다.
그 길은 비록 험난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누군가의 애완견이 아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는 있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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