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남자 A와 여자 B가 있다고 가정하자. 둘은 사귀는 사이다.
만약 A가 속으로 'B와 사귀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 헤어지고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실제로 A 가 인기남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언제든 다른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상을 '진실로' 품고 있다면
A는 그 관계에서 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는 B한테 쩔쩔매지 않을 것이다. 만일 <B와의 만남이 아니라면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스탠스다.
<너 말고도 언제든 더 좋은 연애할 수 있어>하는 생각이 실제적으로 인기남이어서 가질 수 있는 사상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자신감에 불과한지는 실상 중요하지 않다. 그가 그런 사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면, 그는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줄 모르는 우매한 남자란 소리 아닌가요"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강조하는 것은 근거 유무를 떠나 <언제라도 다른 여자 만날 수 있어>하는 그 사상이 내면에서 무척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면, 실제로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A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갑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그의 실체가 돼버린다는 거다. '객관적인 스펙'이라는 껍데기에 스스로 압도되지 않고, 외모가 못났거나 말거나 조건이 좋거나 말거나 아예 스스로 굳게 '난 내가 좋아, 멋져'라고 믿어버리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의미가 없다는 거다. (대개 이런 남자는 많은 경험을 쌓고 단단한 자존감을 획득한 경우다)
결국 중요한 건 '객관화한 겉껍질의 자신'이 아니라, 그가 내면에 품고 있는 '사상'이란 소리다.
예를 들어, 아무리 예쁜 초미녀라도 스스로 매일 '난 못생겼어, 못났어'라고 되뇌는 여자가 있다고 해보자. 아무리 객관적인 생김새가 예뻐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녀는 어떤 관계에서도 초미녀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실존하는 형상, 객관화한 사물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사물이나 현상을 객관화한다 해도 각각의 인간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사상'에 따라 그것은 다르게 변주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사물이나 현상을 100% 객관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친구인 A와 B가 여러 날을 물 없이 사막을 배회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어느 날 신이 그 둘에게 반쯤 물이 찬 컵을 내려보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A는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하고, B는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생각했다면? 그러면 A에게 그 컵은 삶의 희망이 되지만, B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온다. 품은 사상에 따라 같은 시공간을 살아도 저마다 다른 세계를 살게 된다는 거다. 같은 사물을 만나도 A는 천국을 봤고, B는 지옥을 본 것이다.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30대 남자 F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으나 건강이 악화돼 결국 피치 못하게 퇴사하게 됐다. 만일 F가 이미 직장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퇴사를 '차라리 잘 된 것'으로 여긴다면 그는 이후에도 다른 삶의 단계로 가기 위해 열심히 뭔가를 준비할 것이다. '회사는 인간을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곳'이며, '그렇게 노예로 살다 간 평생 <내 일>을 못할 거야'라고 생각할수록 그는 오히려 퇴사를 좋은 선택이라고 여길 거다.
그러나 만일 F가 '회사 말고는 내 정체성을 증명할 대안이 없고 이탈하면 죽는다'라고 생각해온 인물이라면, 그는 퇴사 후 절망과 좌절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다. 매일 술에 취해 잠들지도 모른다. 인생이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퇴사는 곧 패배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자영업을 하는 것은 이탈자들이나 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있을수록 그의 마음은 열패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실상 그 두 가지 생각 모두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의 외모나 능력 등 조건이 한결같아도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따라 얼마든지 인생이 다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거다.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라, 내면에 품은 사상이란 소리다.
또한 사상의 옳고 그름은 없다 해도, 분명한 사실은 사상의 폭이 좁을수록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거다. 달리 말하면 사상의 폭이 넓을수록 인생이 유리하다.
위의 사례에서 퇴사한 F가 <퇴사할 수도 있지, 이 기회에 다른 걸 해보자>라고 생각하는 것과 <회사는 내 전부였어, 퇴사와 동시에 내 인생은 끝났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가 옳다고는 못해도 그 유연성과 폭은 엄연히 차이가 난다. 더 많은 가능성을 포용하는 전자가 더 폭넓으며, 그게 퇴사 후 F의 삶에 더 긍정적일 것임은 자명하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점은, 인간들이 각자 품은 사상이 대부분은 확고하지 않다는 거다.
인간 대부분은 대체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뚜렷한 주관이나 주체적인 사고 없이 시류에 휩쓸리고 남들의 주장을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인다. 확고하지 않은 만큼 언제든 주변에 동화한다.
그렇기에 기준도 없고 주관도 없고 사상도 없이 늘 휘둘려 살게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나를 너무 괴롭히는 데다 회사 문화 조차 너무 안 맞아 매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이건 너무 심한데?! 인간이 버틸 수준이 아닌데?'라고 스스로도 줄곧 생각해왔다고 해보자.
그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사상이 분명한 사람은 어느 일순간에 사표를 쓰고 바로 그만둬버린다. 확고했던 만큼 후회도 하지 않는다.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 명확한 사상이 없으면, '이건 너무 심한데'라고 생각해도, 그만두지 못하고 늘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울게 되는 유형이 된다. 그만두자니 아깝고, 다니자니 죽을 만큼 힘들고,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며 못된 인간들에 휘둘리며 고통받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퇴사하고 다른 거 하면 되지, 회사가 거기에만 있나?, 정 이직 못하면 막일하면 되지'라는 확고한 사상이 있었을 거다. 후자의 경우엔, '그만두고 싶긴 한데, 여기 퇴사하면 뭐 하고 먹고살아..'라는 애매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회사에서든 뭐든, 모든 관계는 힘 싸움이다.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직업, 직급, 신체 근육량 등 요소에 따라 갑을 관계가 되기도 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줘 터지는 관계가 돼버려 조련당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이상하게도 근로자 간에도 직급 서열대로 하급자가 을처럼 된다. 그런 점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참는 식으로 흘러간다. 그런 경우 내가 (1) 폭넓고, (2) 확고한 주관이나 사상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회사에게 '빨리는' 방향으로 계속 고통을 받게 된다.
일반 인간관계도 그렇다. 내가 넓고 확고한 주관 없이 매일 상대에게 뭔가를 퍼다 주는 관계가 형성된다면, 갈수록 상대는 내 자존감이나 사정은 신경 쓰지 않을 확률이 높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악랄할수록 계속 그런 '나'를 착취하는 걸 즐길 수도 있다. 이 경우 내가 '이런 인간 아니라도 난 잘 먹고 잘 살아'라고 그 관계를 벗어나 시야를 넓히고 탁 놔버리거나, 확고하게 '이건 너무 선을 넘었어, 손절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이윽고 고통은 빠르게 사라지게 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주관과 사상을 폭넓고도 확고히 다져야 한다.
그렇지 않기에 모든 괴로움과 고통이 생긴다. 사상이 폭넓고 확고하면 대부분의 고통은 사라진다. 사상이 나쁘고 좋고는 없다. 그게 사회적으로 불법이냐 아니냐에 따라 내 몸이 불편한 상황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 어쨌든 사상의 틀이 크고 확고해야 인생이 쉽다.
그렇지 않으면 늘 휘둘리고 그 사람만의 것이 없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고, 늘 알 수 없는 괴로움에 취하는 꼴이 돼버린다. 시야가 넓어지면 자잘한 것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이에 더해 주관이 바로 서면 행동도 단순해진다. 무얼 포기하고 무얼 얻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런 사람은 후회도 하지 않는다.
유의할 점은 (1)폭넓고 (2)확고한 -> 그 기준에서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부작용이 생길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야가 넓어지고 사상의 범위가 커져 유연한 마음이 됐는데, 자기만의 기준이나 선이 확고하지 않고 단호하지 못하면 경우에 따라 '호구'가 될 수 있다. 시야를 넓힌 상태에서 내게 이로운 것을 취하란 소리지 호구가 되라는 얘긴 아니다. 반대로 자기만의 기준은 확고한데,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너무 좁으면 옹졸한 마음으로 자기한테 불리한 선택만 하게 될 수 있다.
언뜻 보면 (1)폭넓고 (2)확고한 그 두 가지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둘을 어떻게 믹스(mix)하느냐다. 시야를 넓히고 광활한 이해력과 포용력 & 유연성을 획득한 상태에서도, 내 주관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하면 된다. 달리 말하면 넓은 이 세계에 위치한 자기의 한계나 그릇을 본인 스스로 냉정하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게 우리는 (1)폭넓고 (2)확고한 그 두 가지를 적절한 비율로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폭이 넓고 확고한 사상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타고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혹은 사람마다 인생 굴곡(시기)에 따라 사상의 형태나 폭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선 분명한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탈'과 사상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외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을 '강력한 멘탈'이라고 한다면, 이는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멘탈을 키우려면, 타고난 것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개고생'하는 게 답일 수 있다. 아무리 약하고 유순했던 '아가씨'도 결혼 후 남편을 잃고 아이를 혼자 기르다 보면 저절로 강해지게 된다. 엄마만 이런 게 아니다. 아무리 연약했던 인간이라도 역경을 거치고 나면, 죽기 살기로 무언가에 부딪히고 나면, 강력한 멘탈을 가지게 된다.
무수히 많은 개고생을 거친 후 강력한 멘탈이라는 토대를 쌓고 나면, 자기만의 경험에 기반한 철학이 생성된다. 그게 속칭 '개똥철학'이다.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자기가 느끼는 세상의 진리>를 계속 통찰하고 그걸 겹겹이 쌓아 가다 보면, 저절로 사상도 확고해진다. 본인만의 기준, 선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각종 많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누려야 한다. 고생을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다는 거다. 매우 편한 길로만 다닌 인간은 '좋은 시절'이 지나고 나면 스스로 서지 못한다. 40대까지 금수저로 단 한 번도 일하지 않고 편히 살아온 인간 H가 있다고 해보자. 갑자기 부모가 죽고 그들의 전재산도 갑자기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H는 분명 엄청난 인생의 고비를 맞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껍질을 깨부수지 못하는 한, 말이다. 그간 쌓아왔어야 할 자기만의 생존력이 없는 상태이므로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스스로에게 여러 다양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여러 경험을 쌓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자각도 빨리 획득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무엇을 할 때 불행한가, 무얼 못하고 무얼 잘하는가, 내 장점은 뭐고 단점은 뭔가 등과 같은 매우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처음엔 힘들지도 모른다. 내 부족한 부분을 냉정하게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모자란 부분, 현실적으로 절대 할 수 없는 부분 등을 직시해야 하기에 때론 좌절하고 때론 낙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샌가 스스로 자기 단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바로 그다음 단계로 재빠르게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스스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식으로 세상에서 자기를 구현하는 최적 스타일을 만들게 되는 거다. 이는 이른바 세상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자존감'이 견고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남과의 비교우위나 비교열위로 오만해지거나 열등감에 찌드는 게 아니라, 타인과 상관없이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만족감으로 굳건한 상태다.
나아가 여러 경험을 한 만큼, 타인을 보는 시각도 깊이가 더해지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알게 된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상대를 이해하는 그릇이 넓어지는 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이해력, 통찰력의 그릇도 커지고, 사상의 범위도 늘어난다. 협소한 폭으로 보기보다 광활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사실 모든 일들은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또, 자잘한 것이나 특정 인간에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휘둘릴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꼭 '그것'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렇게 사상의 폭이 넓어지면 질질 짜거나 아파할 일도 없고, 여러 역경을 거친 만큼 확고해진 사상에 따라 모든 일에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부딪히고 깨져야 한다. 그렇게 여러 실패를 훌훌 털고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때야 비로소 폭넓고 확고한 사상을 가진 '성체(成體, 어른)'가 된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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