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싸움의 기술>(2005)에선 전설적 싸움의 고수 오판수(백윤식)가 등장한다.
그의 대사 하나하나는 모두 주옥같다. 명대사 제조기다.
그중 하나, 내 심장을 후벼 판 대사가 있다.
"... 주먹질만 하는 게 아니고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가 싸움인 거야"
알고 보면
세상은 정말 싸움의 연속이다. 내 자아와 자존을 세상에서 구현하는 싸움, 게으름을 벗어나 스스로를 이기는 싸움, 적과 대치하는 싸움, 직장에서 버티는 싸움, 사업을 하며 나라 법망 속에서 경쟁업체들과 정면 승부하는 싸움, '가치 전쟁터'인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희소한 이성을 얻기 위해 경쟁자들과 벌이는 싸움 등
알고 보면 세상 모든 건 VS 구도다. 모든 관계는 힘 싸움이다. 사회적 지위, 직급, 재력, 육체 등 내 모든 것을 걸고 상대를 대하는 게임과 같다. 누구나 서로 간에 모든 요소의 파워(Power) 총합을 자기만의 스카우터(드래곤볼에 나오는 전투력 측정기)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상대를 대한다. 그렇지 않고 순수하게 모두를 대한다고 하는 자는 분명 바보 거나 위선자 혹은 사기꾼이다.
진실로 나와 타인 & 세상을 살펴보면, 모든 것은 그렇게 자기 이득을 위한 싸움들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였다고 믿었던 관계도 알고 보면 알게 모르게 한쪽이 다른 쪽을 착취하는 구조였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우정이란 것은, 항상 소소한 개인적 이득을 따지는 '이기' 앞에 무너진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우리는 배신과 피비린내 나는 복수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순수한 관계예요,라고 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자. 그 관계가 연인이든, 친구든, 뭐든 정말 제대로 살펴보면 그 안에서도 미묘한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갑에 가깝고, 누군가는 을에 가깝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그 사이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싸움이다. 한쪽이 너무 만만해서도 안 되고 너무 강해서도 안된다. 치우치면 순수함에서 멀어지고 그저 갑을관계가 돼 버린다.
이와 관련해, 최근 특정 연예인 커플이 화제였다. 여자 배우가 남자 배우를 조련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연인이었지만, 누군가는 조종하고 누군가는 조련당했다. 그 둘의 관계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정도만 차이 날 뿐 언뜻 순수해 보이는 사랑들도 그처럼 기울어진 관계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들 그 사실을 알고 있든 아니든, 사실 모든 관계는 그렇게 '아쉬운 편', '아쉽지 않은 편'으로 미묘하게 갈리고 그렇게 한쪽이 주도권을 잡는 형태가 돼버린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남을 착취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관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연스레 그렇게 관계에서 우열이나 상하가 나뉘는 경우도 있지만, 다분히 의도적으로 상대를 후리려는 인간들도 있다. 그런 인간들에는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수단이 되는 경험은, 대부분 더럽고 수치스러운 기분만을 남긴다.
간혹 진실한 관계가 성립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게 남녀관계일 때, 우리는 이를 '사랑'이라 부른다. 결혼 후에도 다소간의 다툼이 있었을지라도 노년까지 은은한 관계를 지속하고 서로 간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떠한 비즈니스도, 이기심도 없이 서로 간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관계다. 다만 다시 말하지만, 이런 진실한 관계는 우리 삶에서 아주 희소하게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늘 '사랑, 사랑' , '의리, 의리' 하는 거다. 진귀하니까.
세상 모든 관계가 일종의 싸움에 지나지 않기에, 그렇게 서로들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인 거다.
회사 내 자리싸움을 위해 정치질 하고 친목질 하고 세를 불리고 라인을 타고 농간 부리고 뒷담화하고 그렇게들 살아간다. 일종의 자리잡기 싸움이다. 내 자리 확보를 위한 싸움을 그렇게 정치질, 라인 타기 등 형태로 해나가는 거다.
자영업 세계에서도 그런 식으로 동네 경쟁업체를 의식해 각종 술수를 부린다. 가격 경쟁, 서비스 경쟁만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 튀기는 전쟁을 하는 게, 자영업이란 세계다. 국가 간의 싸움이란 어떤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이 시대에 여러 국가 간 눈치싸움이 활발하다는 것만 봐도, 지구 상의 모든 건 결국 '싸움 짓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일반 인간관계도 결국 싸움이다. 어떤 인간은, 상대방이 치고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그간 경험으로 미뤄 봤을 때 '이 정도 기운의 인간은 이럴 것이다'를 예견하고 그에 맞춰 항상 단련해왔던 시뮬레이션 속 자신의 무기들을 상대에게 들이민다. 가시 돋친 말, 굴욕 주는 말, 상처 주는 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는 권력으로, 누군가는 근육질 몸으로 은연중에 겁을 준다. '너 나한테 함부로 하면 거래 끊는다?!', '자칫하면 너 나한테 맞아 죽는다'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약육강식으로 흘러가는 것도, 결국 인간도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명이다.
그렇기에 우리 개인들도 최소 싸움 단위인 '개인 vs 개인' 관계에서부터 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가장 기본은 운동이다.
남자라면 육체적 강인함이 가장 기본적인 무기가 된다. 아무리 법이 있다 해도, 남자 사이에선 자칫하면 서로 간 몸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남자 간엔 서로를 최대한 배려하는 기류가 흐르는 것이다. 그 기류가 무너지는 이유는 한쪽이 지나치게 약하거나 만만하기 때문이다. 그걸 억제하기 위해서 남자들은 헬스장을 찾는다. (헬스장을 갈 필요도 없다. 홈트레이닝을 해도 된다) 어쨌든 근육, 체격, 덩치가 가장 기본적인 남자의 무기가 된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격투기를 굳이 익힐 필요는 없다. 여러 국가들이 각종 무기, 핵폭탄을 보유하려는 이유가 뭘까. 그걸 꼭 다 터트리고 전쟁하려고 하는 걸까. 그냥 무력시위다. '우린 이만큼 세다', 이거다. 벌크업도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그런 시위용으로 작용하는 거다. 대부분은 실제 싸움이나 전쟁으로 넘어가면 서로 간에 너무 귀찮아지고 타격이 되므로 그런 일은 최대한 꺼린다. 그렇기에 격투기보단 그냥 웨이트트레이닝이 최고다.
다른 무기로는 정신적인 강함이 있다. 흔히들 말하는 멘탈이다. 강력한 멘탈이라 함은 주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각종 적들의 농간과 술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멘탈로 정신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을 쌓기 위해 우리는 각종 경험을 한다. 하다못해 돈 내고 군대 캠프 같은 곳을 가기도 하는 거다. 굳이 그런 데를 갈 필요도 없다. 각종 모든 삶의 관문인 '입시, 아르바이트, 취업, 결혼, 승진, 사업' 등에서 몸을 사리지 말고 그저 그것에 도전하고 경험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이 각종 사건 사고 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동반된다. 그런 것들을 몸으로 부딪히고 익히면서 그 고통마저도 나의 자양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강인한 정신을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엔 강인한 멘탈을 갖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멘탈에 더해 계속 공부하고 지적능력을 단련해서, 최대한 똑똑한 내면을 갖춰야 한다. 멍청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말빨로 조지는 것도 무기가 된다. 역학에서는 이를 식상(식신+상관)으로 보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 강하지 않아도, 그러한 식상 짓을 잘하는 부류가 있다. 어떤 여자들은 마구 울면서 입만 살아 말빨로 남자를 마구 조지기도 한다. 상대의 약점 등을 언어로 후벼 파면서 전투력 상실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을 별로 추천하진 않는다. 내 취향은 아니다)
어쨌든 이 외에 재력, 사회적 지위 등도 큰 무기가 된다. 다만 그것은 너무 복잡계 영역에 속해 있다. 그건 가지고 싶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수의 사람이 억 단위 돈을 가져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지위도 마찬가지다. 일반 서민이 무슨 특별한 지위가 있느냐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앞서 말한 육체 운동, 멘탈 등을 강조하는 거다. 그건 복잡계가 아니다. 고시원에 살아도 아무리 흙수저여도, 육체와 정신, 지적능력은 얼마든 단련할 수 있다.
우리는 <나와 너의 관계는 순수해, 나는 아무 조건 없이 너를 돕는 거야> 등의 달콤한 말들의 저의를 늘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서 우리는 순수한 절정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런 상대는 희소하게 찾아온다. 그 외에 대부분은 악연이거나 그저 내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인연을 맺어서도 안 되는 거다.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싸우는 것이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 사람, 내 인연을 옥석 가르듯이 찾아내기 위해 문무(文武)를 단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독립적인 마인드다. 누구로부터도 덕 보지 않겠다, 혼자 서겠다, 내 힘으로 살겠다 라는 생각이 확고한 사람은 누군가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 대부분의 싸움은 누가 우위에 서느냐 하는 기싸움부터 시작된다. 누가 갑이 되고 누가 을이 되느냐 하는 눈치싸움이다. 우리가 일반 인간관계에서 을이 되는 이유는 대개 상대로부터 덕 볼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내가 상대에게 잘못했을 때) 혹시 모를 피해를 볼 가능성을 신경 써, 지나치게 자신을 수그리고 들어가는 경우다.
덕 볼 가능성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의 관계에서 일단 을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피해 볼 가능성이 있든지 말든지, 그냥 내 할 일 하며 독립적으로 살면 을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이후엔 누가 와도 평소 단련한 육체와 정신, 지적 능력을 온전히 발현하며 싸울 수 있는 거다. 애초에 을이 돼버리면 정정당당한 싸움이 못 된다. 시작도 전에 지는 것이다.
그렇게 남으로부터 덕 보려는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항상 매순간 내 힘으로 독립적으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게 가장 본질적인 무기다. 그것을 갖추면, 잠재적인 경쟁자 or 적들이 나를 휘둘러서 이용하거나 착취하려는 의도로 접근했다가도, 내 그런 마인드를 알아보고 '쩝' 하며 물러나기 마련이다.
모든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쉽지 않은 사람"이다.
물론 모든 관계에서 을이 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살다 보면 내가 약간이라도 아쉬운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가능한 독립적인 마인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거 아니면 다른 거 하지' 와 같은 마인드, 꼭 <그거>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러면, 잠재적인 적들이 나를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우를 최대한 피해 갈 수 있다. 싸우기도 전에 을이 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정정당당히 링에 서는 거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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