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다음 주 로또 당첨 번호야. 적어.

나만의 작사 데이터 만들기 3: 반응 메모 편

by 작사가 신효인


https://brunch.co.kr/@shinhyoin/111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한 주 잘 보내셨나요?


<작사 입문 DIY> 네 번째 시간은 질문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1. 귀로 들은 것과 실제 쓰인 말이 다른 경우 겪어보셨나요?


저는 자주 있어요. 'A, B, C'가 'medley'로 들렸다든가, 'sea crystal'이 'secret star'로 들렸다든가. 듣고(자극), 비슷한 소리의 단어가 떠오른 거죠(반응).



2. 무언가를 보고 뜬금없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신가요?


옷장에서 가디건을 꺼냈는데, 가디건에 보풀이 잔뜩 피어있는 거예요. 보풀을 보고서(자극), '이렇게 보풀이 일 정도로 예뻐해주고 싶다. 무한 쓰담쓰담'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반응). 생각의 배경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당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 봐요.



3. 누구를 만나고 무언가가 가슴에 남은 적은요?


이탈리아에서 사 온 초콜렛을 친구들에게 준 날이었어요. 친구들이 고맙다 하고서 저보러 먹어봤냐 묻길래, '아니! 먹어보진 못했는데, 유명한 거래. 맛있을 거야!'라고 답했어요. (제 거 살 생각은 못했고, 친구들 줄 것만 샀거든요.) 그 말을 듣고 한 친구가 '내 거 먹어보자. 다 같이 먹어도 돼?' 하더라고요. 초콜렛 맛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제가 준 선물을 제가 먹는 게 조금.. 민망하게 느껴졌어요. 지금 당장 나눠 먹든, 집에 가서 혼자 먹든 그건 선물 받은 친구 마음이니까 제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고요. '엇.. 엇..' 하며 고장이 나 있는데 친구가 '같이 먹어보자!' 하고서 포장지를 박박 뜯고 초콜렛을 먹기 좋게 똑똑 부쉈어요. 덕분에 저도 맛있게 먹었어요. 친구는 제가 맛을 궁금해한다는 걸 눈치챘던 거죠. 친구의 섬세함과 배려가 깃든 행동이 되게 인상 깊었고 고마웠어요.


친구의 따뜻함(자극)을 집 가는 길에 곱씹다가 '먹어보고 싶어 하는 티가 투명하게 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잠시 쑥스러웠다가 금세 '티 좀 나면 어때 우헤헤헿' 했어요. 친구가 내어준 곁에 하늘 보고 대자로 누워서 팔다리 모았다 벌렸다 하며 '맞앙>_< 나 사실 먹어보고 싶었엉>_< 어캐 알았어 너>_<' 이런 느낌..!ㅋ_ㅋ 제 속을 다 들켜도 부끄럽지 않고, 편한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반응).


내가 읽혀서 불편한 사람이 있고, 내가 읽혀서 편한 사람이 있다. 휴는 날 풀리게 만드는 사람.


일기장과 메모장 일부를 담아 저의 답을 적어보았어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평소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반응)을 의식하고 기록하는 편이신가요? 저는 이렇게 제 안에 떠오르는 것을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아주 오래된 습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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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포함한 창작자)에게 이런 생각이나 감정은 로또 당첨 번호와 같아요. 하나하나가 모여 작품의 첫 숨, 작업 중에 맞은 방황 속 나침반 또는 위기 속의 구원이 되어주거든요. 그 '대박'을 놓쳐서는 안 되겠죠. 적어야 해요. 조상님께서 꿈에서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주셨는데, 눈 떠서 '이따가 적지 뭐.' 하지 않잖아요. 바로 부리나케 적죠. 그런 것처럼 내 안에 떠오르는 대로 적어야 해요. 돌아서면, 시선을 거두면 옅어져 버리거든요.


메모하는 습관 덕을 볼 수 있는 경우를 몇 가지 소개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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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하는 습관의 이점 하나.

필요한 단어를 빠르게 구할 수 있다.


파란색 하이라이트로 표시해 놓은 구간은 데모 가사의 라임 및 발음을 고려하여 작업 부탁드립니다.


시안 의뢰를 받아보면, 이런 요청이 종종 있어요. 곡이나 가사의 주제와 잘 맞으면서, 뻔하지 않으면서, 발음이 쉬우면서, 라임이 맞는 단어를 마감 시간과 싸우는 와중에 찾는 건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여간 보통 일이 아니에요. 데모 가사를 보고 바로 뭔가가 떠오르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평소에 단어 수집을 많이 해두면,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위 1번의 저처럼 단어가 떠올랐다면, 바로 적어두세요. 나중에 기억 날 것 같잖아요?! 기억 안 나요.. 그러면 얼마나 아깝게요ㅠㅠ



메모하는 습관의 이점 둘.

'자유 주제 작업'할 때 실마리가 되어준다.


- 데모 가사 내용을 살려서 작업 부탁드립니다.
- 이러한 컨셉의 가사로 작업 부탁드립니다.
- 저러한 스토리를 담아 작업 부탁드립니다.


이처럼 작업 방향이 정해진 채 오는 의뢰가 비율이 좀 더 높긴 하지만 '자유 주제' 작업 의뢰도 꽤 많아요. '자유 주제' 곡을 받고 '오오>_< 어떻게 써볼까!!' 하고 설렐 때도 있는데, 반대로 '뭘 써야 하지..' 하고 막막할 때가 있어요. 후자일 때 메모가 도움을 많이 줘요. '곡이랑 이거(메모)랑 잘 맞는다. 이걸 주제로 써봐야겠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보태주거든요. 작업의 시작을 풀어갈 수 있게 해 줘요.


저는 위의 2번에 써놓은 것처럼 일상 속 작은 것에서도 감상이 자주 드는 편이에요. 며칠 전에는 길 가다가 잡초를 보고


나는 잡초다. 저렇게 꺾여도, 뽑혀도 또 자라는..!!! ...... 음...... 잡초라고 하면 엄마가 서운해하려나? 좀 그런가? 그러면 잡초 말고 잔디~ 나는 신잔디~~~ ......흠...... 잡초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왜 이렇게 별로지? 잡초는 무슨 풀이지? (검색) 헐. 잡초는 식물학적 분류가 아니구나. '사람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라는 관념적 표현이구나. 잔디는 심어서 키우는 벼과 풀이네. 잔디도 사람이 원하지 않는 곳에 자라면 '잡초'가 되는 거구나.


이랬답니다. 하하. 저는 무언가(자극)를 통해 드는 저의 이런저런 '반응'을 대부분 적어요. 그리고 작업할 때 그의 도움을 받곤 합니다. '이게 쓸 데 있겠어?' 하고 섣불리 흘려버리지 마시고, 자신의 감상을 평소에 잘 메모해 두시면 좋아요.



메모하는 습관의 이점 셋.

통(通)하는 가사를 쓸 수 있다.


귀에 박힌 영화 속 대사
밑줄 그은 책의 구절
날씨와 기분
냄새와 기억, 온도
사람과 말
감정과 감상
사건과 사고 등


제 인생을, 저를 채운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서 깨달은 게 있어요.



내가 나를 비춘 곳에, 저 사람도 자신을 비추어보는구나. 그곳에서 우리는 교감하고, 공감하는구나.



누군가의 마음에 닿으려면, 제 마음속에 있는 걸 꺼낼 줄 알아야 하더라고요.


이게 가사를 쓸 때도 무척 중요해요. 화자와 청자가 통하려면, 작가가 화자의 마음을 잘 전달해야 하거든요. 자기 속을 들여다보고, 뒤적이고, 집어서 뜯고 분해해 본 사람이 '화자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걸 가사에 풀어낼 수 있어요.


청자는 화자의 언어 속 자신이 비치는 지점에서 울림을 느껴요. 듣는 이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가사에 흐름과 감정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해요. 이를 위해서 자신이 느낀 것과 느낀 과정을 평소에 적어두세요. 그 행위 자체가 가사를 쓰는 데에 피와 살이 되어요.


그리고

~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의 감정을 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도 그 메모가 큰 도움이 되어요. 간접경험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그 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았어도 가사를 쓸 수 있지만, 겪어봤다면 좀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가사를 쓸 수 있죠. 메모 덕분에 그 일을 겪었던 당시의 나를 깨워서 '살아있는 가사'를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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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경험하고, 느끼고, 저장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그중에서 메모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흩어져 떠내려가기 전에 꼭 닻을 달거나, 압정을 꽂아두시길 바라요.


Your Mission: 받은 자극과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하루에 한 번 기록하기.


예시


간단한 내용이어도 좋고, 짧게 써도 좋아요. 한 문장이어도 괜찮아요. 날짜와 시간, 무엇 때문에 어떤 생각/느낌이 들었는지 적어보세요. 의식적으로 일상과 자기 마음을 다듬거리다 보면 그전보다 훨씬 많은 걸 향유하게 되어요. 그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가사를 쓰시게 될 겁니다! :)




3주에 걸쳐서 '주머니' 만들기를 함께 했어요. 단어 주머니, 경험(자극) 주머니, 반응 주머니가 작가님께 훗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거라 믿어요.


주머니 시리즈는 오늘부로 마치고, 새로운 주제로 다음 주 토요일에 오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 AI 학습 데이터로 글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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