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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딸내미, 감나무집 딸랑구입니다

안타깝게도 며느리는 될 수 없어요

by 작사가 신효인


이 지구에 내가 '딸랑구'가 되는 공간이 딱 두 곳이 있다.


그거 먹고 싶어요.
거기 가고 싶어요.


내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

하나는 우리 집.
다른 하나는 약 300km 거리에 있는 내 친구 루피의 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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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딸내미들인가?
> 웅~
딸이 둘이었던가?
> 여는 큰 딸! 내 양딸


나는 루피네 '큰딸'이다. 진짜다.


내려가서 챙겨주시는 밥 와구와구 먹고, 설거지 하나~~도 안 하고, 큰 침대 있는 안방까지 뺏어 쓰다 오는 큰 딸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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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본가 내려갈 건데, 언니도 같이 갈래~~??
> 웅!!!


오랜만에 루피의 본가, 함안에 다녀왔다.


함안 도착! 노란 캐리어 끌고 가는 루피. 귀여웡.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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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혼자 쿨쿨 자고 있던 아침. 7시 반쯤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에 깼다.

루피 엄마(이하 뤂맘)께서 꽃집으로 출근하시는 거다.

좌로 뒹굴.
우로 뒹굴.
흣챠.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갔다. 루피는 거실에서 새근새근. 두두(루피의 오-랜 남자친구이자 내 친구. 나는야 둘의 큐피드.)는 다른 방에서 드르렁.

씻고서, 자고 있는 둘을 두고 집을 나섰다.

집과 꽃집은 무척 가깝다. 걸어서 3~4분 거리.

낮은 상가를 지나고, 이어 경비실을 지나면 큰 길이 나온다. 우회전해서 건물 몇 개를 지나면, 꽃집이다. 그 짧은 거리를 훑는 시간이 행복했다. 이 동네는 늘 한적하고 평화롭다. 몸에 닿는 햇빛과 스치는 바람마저 좋은 날이었다.


good morning.jpg


꽃집에 도착하니 손님이 계셨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분주하신 사장님=뤂맘.


저 왔어용~


바쁜 꽃집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왜 늦잠 안 자고 여길 나왔냐는 뤂맘의 타박 아닌 타박은 이거 얼마냐는 손님의 물음으로 인해 길어지지 못했다. 내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온 것 같은데 히히. 소파에 가방을 던지고 출도옹-!


화분을 봉지에 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금액 알려드리고, 돈을 받고, 손님께 물건을 건네드리고,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하고, 찾으시는 꽃 보여드리고, 화분 포장 케이스 찾아오고...


후후후. 재밌다.


뤂맘께서 만드신 꽃바구니 자랑.jpg


손님 1: 이렇게 다 하면 얼마예요?
뤂맘: 6천 원 4개.. 7천 원 3개..
나: (계산기 토도도독) 4만 5천 원이요!
뤂맘: 울 딸내미가 4만 5천 원이라네요.


손님 앞에서 나를 계속 '딸내미'라고 부르시는 뤂맘. 말은 '왜 왔냐'라고 하셔도, 내가 와서 좋으신 기색이 역력하셨다. 사장님과 전-혀 닮지 않은, 서울 말씨를 쓰는 나를 보시는 손님들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스치곤 했다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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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 뤂맘께 전화 한 통이 왔다.


엄마!! 언니가 집에 없어!!!
> 느그 언니 여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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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다 가시고, 꽃꽂이하시는 뤂맘 옆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톡. 톡. 트드득. 트드득.



말소리 사이사이에 꽃대를 자르고, 잎을 떼는 소리가 자리했다.

잠시 후, 루피와 두두가 손을 잡고 꽃집에 들어섰다. 짜식들 잘 어울리는 군. 만개한 꽃들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둘이 퍽이나 좋아 보였다. 그들이 꿈꾸고 있는 그들의 미래를 혼자 몰래 엿본 기분이었다. 축사를 슬슬 쓰기 시작해야겠다. 머지않은 느낌.


루피와 두두.jpg


뤂맘께서 꽃꽂이를 하시는 동안, 우리 셋은 화분 포장을 했다. 나는 화분을 주름잡은 포장지로 한 번 감싸서 케이스에 넣었고, 루피는 그 화분에 픽(장식)을 꽂고 리본을 달았다. 두두는 나와 루피 사이를 오가며 화분 배달을 했다. 화분들을 계속 들었다 내려놓으니 맑은 흙냄새와 은은한 꽃향기가 내 주변을 채웠다. 맡고 있으니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작업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햇빛이 들이치는 온실이 노란 필터가 살짝 씌인 사진 한 장처럼 눈에 담겼다. 내가 좋아하는 꽃과 사람들로 채워진 그 장면이 좋았다. 다시 고개를 숙여 포장지 주름 하나를 잡을 때마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애틋한 마음으로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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뤂맘의 꽃꽂이가 끝나고, 사찰로 다 함께 배달을 갔다.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스쳐 지나가는 녹음, 머리를 살짝 헝클이는 바람,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루피와 두두의 투닥거림이 그 시간을 채웠다. 난 조수석에 앉아 조용히 키득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풍경을 즐겼다. 사이드 미러에 담긴 그런 내 모습을 루피가 뒷자리에서 몰래 찍었더라. 영상 속 나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이고 즐거워 보였다. 실로 그랬다.


씽난 씽효 몰래 찍다 걸림.gif


어! 이 노래 언니 컬러링!


루피의 저 문장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전화를 제일 많이 거는 사람이 루피라는 걸, 그래서 그녀가 나의 최애 노래를 알고 있다는 걸, 몰랐던 노래가 익숙해질 만큼 루피가 수화기를 오래 들고서 나를 기다렸다는 걸 내포하고 있어서 그랬다. 저 짧은 문장에서 내가 얼마나 큰 애정을 느꼈는지 루피는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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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달을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넷이서 수다를 실컷 떨었다. 두두와 뤂맘의 대화를 듣다가 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어져 가고 있었다. 루피에게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카톡을 보냈다. 루피는 날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에서 틴트를 꺼냈다. '사진 찍기 전에 바르려나 보다~' 하고 있는데, 그 틴트의 팁은 내 입술을 향했다. 가만가만 루피의 손길을 받았다.


이어 사진을 찍으러 카페 테라스로 나섰다. '여기 서볼까. 머리 이렇게. 옷 이렇게 하고. 저기 봐봐. 고개만 살짝 여기로. 손을 주머니에 넣어도 되고.' 루피는 눈을 멀게 할 만큼 센 역광을 뚫으며, 카메라 앞에서 끼익- 끼익- 고장이 나는 나를 고쳐가며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갤러리를 열어보니 사진이 100장이 넘었다ㅋ_ㅋ. 맘에 드는 사진이 많았다.


역광을 뚫고 날 찍어주던 루피.jpg


루피가 찍어준 사진은 언제나 마음에 든다. 왜 그럴까? 루피의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날 보는 그녀의 시선에 관심과 애정이 담겨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루피는 늘 나를 조용히 관찰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에 대해 그렇게 잘 알 수가 없고, 나를 그렇게 잘 챙길 수 없다. 내게 어떤 게 잘 어울리는지, 어떤 각도에서-어떤 상황에서 나답게 사진이 잘 나오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편하다고 혹은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는지 등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나를 잘 다루기도 하는 그녀다. 게다가 루피는 알아챈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 모든 게 사진에 담기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루피가 나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부터, 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내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까지 다 커다란 사랑으로 느껴진다.

이 날 나는 원래 흰색 민소매 티를 입고 위에 어두운 체크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두두가 밝은 색의 체크 셔츠 하나랑 은 목걸이를 손에 들고서 꽃집으로 돌아왔다. 그걸 내게 건네주길래, '뭐야? 어디 갔다 와?' 물으니 루피가 집에 가서 가져오랬단다ㅋㅋㅋㅋ. 아- 알겠다. 나보고 옷 바꿔 입고, 목걸이 하라는 거다. 나한테 일언반구 말도 없이 두두한테 비밀 지령 내린 루피도 웃기고, 지시대로 잘 챙겨 와서는 설명 없이 턱 하고 건네는 두두도 너무 웃겼다. 어두운 체크 셔츠와 휑한 목이 에러였나 보다. 루피 얘는 어디 갔어. 조금 이따가 나타난 루피는 자기 코디대로 하고 있는 나를 보고 '훨씬 예쁘네! 아까 옷은 더워 보였어.' 한다. 루피말대로, 바꿔 입은 룩이 더 보기 좋았다.


그 룩.jpg


루피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속으로 '저 언니는 내 거다!' 했었다고 한다. 나의 어딘가가 퍽 맘에 들었었나 보다. 루피의 다짐대로 나는 루피의 것이 되었다 ㅋ_ㅋ. 나는 루피에게 나를 맡기는 게 좋고, 루피 손을 타는 게 좋다. 편하고, 안정감이 든다. 루피도 나를 맡는 게 좋다고 한다. 날 귀찮아하지 않는 게 가끔은 신기하다. 늘 열정 듬뿍. 애정 듬뿍이다. 자기 울타리 안에 사람을 잘 들이지 않는 루피라, 루피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영광이다. 특별한 사람 대우를 받는 게 행복하다. 신뢰가 두텁고, 말이 오가지 않아도 통하는 게 많은 우리 사이가 좋다. 나는 황가네 명예 큰딸, 루피는 나의 명예 호적메이트이다. 신루피, 황효인 되시겠다. 성씨가 영원히 통일되지 않는 자매 ㅋ_ㅋ.


이 날 루피는 집으로 돌아가서 사진 셀렉도 열심히 해주었다.


루피가 사 온 우리 잠옷.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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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 뤂맘께서 꽃집 부엌에서 돼지고기 김치찜을 만들어주셨다.


숟가락 속 루피 두피.jpg


엄청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 제가 할 거예요!!!'를 외쳤으나, 싱크대 사수에 실패했다. 뤂맘을 이길 재간은 언제쯤 생길까. 휴우. 설거지를 하고 계시니 청소까지 막으실 순 없지!! 꽃꽂이할 때 잘린 꽃대와 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비질을 해서 꽃대와 잎을 붉은 큰 대야에 담았다. 루피와 두두는 그 대야를 영차 영차 옮겨서 비웠다.


꽉 찬 대야.jpg


근처에 루피 아빠께서 지으신 작은 별장과 일구신 밭이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gif


엄청난 오프로드를 달려 도착한 곳에는 감나무가 엄청 많았고, 블루베리 관목과 채소 텃밭이 있었다. 닭장과 바베큐 장도 있었다.


감나무와 루피.jpg


별장은 커다란 원룸이었는데, 다 갖춘 아늑한 공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게 아부지께서 '효인이!! 커피 타주까!!' 하셨다. 커피를 안 먹어서 사양하니, 홍삼 스틱을 주셨다. 홍삼 스틱을 손에 쥐고서 황가네 사람들의 티키타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아부지의 별장 소개도 들었다. 재밌었다 ㅎ_ㅎ.


서울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어서 엉덩이를 떼니, 아부지께서 '느그들 가을에 감 따러 와야지!' 하셨다. 다들 못 들은 척하는 와중에 나만 신나서 '넹!!' 했다. 꽃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루피가 언니 혼자 가을에 또 내려와야겠다며 놀렸다. 감을 따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 사람들 안에 있는 게 좋아서, 정말 또 오고 싶어서 그렇게 답을 했다.

루피에게 오빠가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내가 큰 며느리 하게 흐흐 *ㅡ*.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더니, 뤂맘께서 내 양 볼을 짜부시키며 동의하셨다 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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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귀경길에 오를 준비를 했다. 뤂맘께서는 물, 간식, 참깨, 상추 한 바구니 등 바리바리 싸주셨다. 분명 가방 하나 가지고 내려갔는데, 올라올 때는 가방이 다섯 개였다.


영상 출처 루피.gif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판 남인 사이에서 이토록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넙죽 다 받아도 되나 싶고, 너무 귀하게 대해주셔서 가끔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설거지를 절대 못하게 하시는 것처럼, 작은 방이나 딱딱한 바닥에서 절대 못 자게 하시는 것처럼, 내려와서 돈도 절대 못 쓰게 하신다. 다 못하게 하셔!! 마음을 전할 나름의 방도를 강구한 나는 명절마다 선물을 보낸다. 선불로 보내는 택배는 거절하실 수 없으니까!! 내가 보내버리면 되니까!! 후후후. 그런데 그 마저도 뤂맘께는 '뭐 하나 더 해줄 거리'가 되어버렸다. 받은 편지에 답장하듯이 제철 과일, 2L 시골 참기름(진짜 맛있음..), 채소 꾸러미 등을 내게 보내시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때 되면 보내신다. 내가 못 산다 진짜. 우리 사이는 이렇게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루피를 곁에서 더 잘 챙기는 걸로 보답하려 늘 애쓰지만, 받는 것에 비하면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여기까지 글을 썼는데, 방금 루피에게서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세상에 이제 진짜다. 나 축사 써야 된다. 뭐라고 쓰지!! 어떻게 쓰지!! 마음을 글에 어떻게 잘 담지.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으아아아아악.

행복을 담으려 연 글을 절규로 마무리.
사랑해 루피얌.




끝으로 2박 3일 동안 먹은 거 자랑하기 ㅎ_ㅎ




* AI 학습 데이터로 글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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