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생존하는 건 대단한 거다
심리 상담 선생님을 통해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자살 위기를 극복하고 취업까지 한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고. 인터뷰는 논문에 실릴 거라고 하셨다.
'자살 위기'라..
자살을 생각할 만큼 위태로웠던 순간을 말하는 거겠지? 서있던 절벽에서 몸을 돌려 사회에 들어가,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내고 있는 내가.. 꽤나 대견한 케이스인가 보다.
어떠한 일로 마음이 힘들고, 무언가를 견디기 무척 어려웠던 적은 분명 있었다.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상담을 받았던 지난 7년 동안 '자살'을 생각해 보거나, 시도를 했던 적은 없다. 그러니까 상담 중에 '자살'이라는 말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자살 위기'를 겪은 케이스에 속한 걸까? 곰곰이 그간의 상담을 되새겨 보니,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장기간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었던 어린 시절, 아파트 13층 비상계단 창문 앞에서 밖을, 그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봤던 기억이 있다. 괴로움 보다 무서움이 컸는지 오래 서있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었다. 이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한 적이 있다.
와르르 무너진 채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라지면 친구들이 많이 슬퍼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한 날은 사람 때문에 지치고, 사람에게 질린 때였다. 섬세해서 많은 게 알아채지고, 거슬리는 게 많고, 인간관계에서 쉽게 상처받고 회복탄력성이 낮은 내가 밉고, 피곤하고, 싫었다. 자기혐오가 심해졌다. 이런 나를 앞으로 계속 달래고 챙기고 이끌고 갈 자신이 없어졌다. 나도 쿨하고 무던해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기질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나와 삶을 함께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이런 나 때문에 덩달아 피곤하고 힘들 거라는-나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피해의식을 가진 건 아닌가,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건 아닌가 끊임없이 검열하는 것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이런 생각들, 감정들을 계속 처리해 내야 하는 게 괴로웠다. 다시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동굴에 들어가고 싶었다. 연약한 내게 집 밖은, 내 방 밖은 온통 자극 범벅이었다.
'내가 사라지면 친구들이 슬퍼하겠지?'라는 생각은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날에 했었다. 타인의 슬픔을 통해 나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려 하다니.. 나쁘다. 한편으로는 혼자서 얼마나 외롭게 버티고 있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싶어 스스로가 안타깝기도 하다. 도움을 청하지는 못하고, 한없이 가라앉는 중이었나 보다.
이처럼 마음이 힘들 때가 있긴 했으나 자살을 생각해 보거나, 그 방법을 고민하고 계획을 세운다거나, 충동적으로 스스로 몸에 손을 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전문가가 보기에 우울이 짙어진, '위기'의 범주 안에 드는 날이 있었나 보다.
그런 날 냅다 사직서를 던지고서 동굴에 들어가지 않았다. 5년째 한 직장에 출근을 하고 있는 나는, 매일 많은 사람과 사건을 마주하는 나는 기특한 사람인가 보다. 인터뷰 요청을 받을 만큼. 음.. 그래. 생각해 보니, 정말 기특한 것 같다.
내가 한 곳에서 5년째 일을 하고 있는 걸 그동안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타인과 비교하고는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겼다. 내 또래는 일반적으로 주 5일 9 to 6 근무를 한다.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현재 나의 근무 시간은 그 절반 밖에 안 된다. 그러니 당연히 급여도 적다. 자극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탓에 더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못'한다. 최대치로 일하고 있는 거다. 근무 시간 내내 타인과 부대껴서 일하는 직업은 꿈꿀 수도 없다. 선택지가 적다. 지금 하고 있는 작가, 영어 강사 일은 타인과의 접촉/타인의 간섭이 상대적으로 무척 적다. 내 공간에서 혼자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한 달도 못했을 거다. 이런 탓에 난 불리하다고, 내가 조금만 덜 연약했다면 지금보다 사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원망하고 탓하기도 했다.
아니다. 나는 부족하지도, 불리하지도, 연약하지도 않다. 나는 동굴에서 나오는 힘을 가진 사람, 내 자리를 마련하는 힘을 가진 사람, 그 자리에서 매일 쏟아지는 자극을 온몸으로 맞으며 약속한 내 몫을 해내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다.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잘 살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이욜~ 나 자신 좀 기특한뒈~~
너 이 짜식 내일 월요일 화이팅이닷-★
+
다시 방 안에 있기로 한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말 필요해서 그랬을 테니까. 도움 받을 곳이 없어서, 혼자서 더 버틸 수 없어서 그랬을 테니까. 스스로 그러한 처방을 내린 것도 기특한 거다. 위기 극복의 한 방법이다.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 것만 기특한 건 아니다. 어떻게든 생존하는 건 대단한 거다. 그대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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