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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면 난 왜 도망가고 싶지

썰썰썰 수다 일기

by 작사가 신효인


난 너에게 궁금한 게 늘 많지. 어떻게 지내는지, 마음이 요즘엔 어떤지, 살 만 한지, 설레는 일은 없었는지, 어떤 게 너를 행복하게 하고 어떤 게 너를 속상하게 하는지, 요즘도 요리 계속 잘해 먹는지, 어떻게 대용량으로 매 번 그렇게 하는지, 요즘 가장 바라는 건 무엇인지, 요즘 너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혹시 나를 찾다가 삼킨 적이 있다면 그것이 긍정적인 삼킴이었는지 부정적인 삼킴이었는지, 왜 요즘 나를 덜 찾는지 ^^ 왜 삼켰는지 안 삼키면 안 되는지^^. 혼자 기쁘게 묻어둔 거라면 괜찮은데 내가 귀찮을까 봐라는 쓸데없는 틀린 생각으로 삼킨 거면 나한테 또 얼마나 잔소리를 듣고 싶은 건지 ^^


ㅋㅋㅋㅋㅋㅋㅋ

의 DM을 보고서 킥킥킥킥 웃었다.


.


6월에 집에 일이 있었다. 아등바등 해결하고 나니, 내가 너무 소모되어 있었다. 모든 기운을 잃은 느낌. 내 몸 하나 일으키는 것도 힘들었다.


어? 왜 이렇게 힘이 들지. 이렇게 힘이 드는데 내가 그동안 이걸 어떻게 했었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눈앞이 캄캄했다.

글을 쓸 기운도 없었다.


좀 쉬면 괜찮겠지. 회복되겠지.


를 중얼거리며, 두어 달 동안 약속되어 있는 일정과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소화했다.


무리를 했나 보다. 견갑 주변 림프절이 부어 몸이 아팠고, 계속 기력이 없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을 닮은 갈망에 휩싸였다. 글 쓸 기운이 없다고 글을 안 쓰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이래서 흥, 저래서 흥 하면 뭘 할 수 있겠니.


진짜 기운이 없는데 어떡하라고!


그에 맞서는 소리가 들렸다.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녀오고서 글을 신나게 썼다. 카세트테이프의 테이프를 촥촥 당겨 풀듯이, 내 안에서 문장이 쭉쭉쭉 뽑아내지는 쾌감이 들었다.


그 쾌감이 트리거가 되어 글을 다시 열심히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제자리였다. 반짝 살아났다가, 다시 시들었다.


덜컥 겁이 났다. 계속 글을 쓸 기운이 없을까 봐. 이 상태가 영영 지속될 것 같았다.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더는 혼자서는 안 되겠다. 도움이 필요해. 상담 선생님을 뵈러 갔다.


마음이 많이 닳아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벅차도록 끌어 안고 있었구나. 외로움과 우울이 짙어져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충분히 기다려 봤으니, 이제는 글 쓸 기운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가볍게 하루에 2~3줄만 써보라고 하셨다.


나는 어떤 글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가?


일기.
그리고 편지.

바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일기.

흰 바탕에 내 마음속 글자들을 옮겨 적었다. 오랜만이었다. 속에서 꺼낸 것들을 가만히 눈에 담으니, 밸런스가 무너졌거나 유효하지 않은 생각들이 보였다. 그걸 알아차리자, 조금 편해졌다.

그다음은 편지.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브런치에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매거진을 열고,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었다. 쓰면서 행복했다. 친구뿐만 아니라, 독자님들께도 편지를 써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댓글로 사연을 받아보면 어떨까.

이러는 사이, 글 쓸 힘이 생겼다. 기운을 회복한 정도가 아니라, 막 달리고 싶은 정도로. 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신기했다.

휴에게도 편지를 써주고 싶어서, 나에게 궁금한 게 있는지, 받고 싶은 편지가 있는지 DM으로 물어봤다가 글 서두에 넣어놓은 저 메세지를 받았다ㅋ_ㅋ.

휴가 자기 울었던 이야기를 해주고서, 나는 최근에 운 적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사실 보기보다, 눈물이 없다. 없다고 답하려는 순간, 생각이 났다. 있다. 울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서 버블(아티스트와 팬이 메세지로 소통하는 플랫폼. 아티스트는 1대 다수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팬은 1대 1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메세지가 보인다.)이 왔었다. 이름 불러줬다고, 어리광이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 며칠 뒤에 아티스트가 아팠다는 걸,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라방 스케줄을 불참하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아야 할 만큼. 마음이 쿵. 했다.

그날 다른 멤버들이 진행하는 라방을 보다가, 울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이름 불러줬다고, 귀엽다고 좋아했던 게 미안해서. 많이 아프다는 거에 마음이 아파서.


라방 보다 말고, 생 앞에서 '아니이 내가아ㅠㅠ 아픈 줄도 모르고ㅜㅜ 버블 왔다고 좋아하고ㅜㅜ' 후이이잉 울었다. 꽤 지난 일인데도 지금 글 쓰면서 또 눈에 눈물이 찬다. 보기보다 눈물 없다는 말 취소다 취소.


이 이야기를 휴에게 하다가, 머리를 한 대 파앙-! 맞았다.


아, 내 친구들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상담을 받으러 갈 만큼 힘들었던 그 세 달 동안,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말을 안 했다. 연락을 줄이고, 동굴에 들어가 있었다. 휴가 요즘 왜 자기 안 찾냐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내 무게를 나눠지게 하는 게 싫었다. 붙잡고 징징거릴 게 아니라, 내가 얼른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내가 해내면 되지, 왜 주변사람까지 힘들게 만드나. 아, 이렇게 되면 일부러 그랬던 게 맞는 건가. 맞네.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라서 그랬다는 말이야.


이제 그러지 말아야겠다. 진짜 그러지 말아야지.


저번에 루피 집에 갔을 때, 저녁을 먹으면서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내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종류의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 직장에 있는데, 이 고충을 내가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루피가 한참 들어주고, 답변을 해주고서 끝에 이런 말을 했다. 강아지 궁둥이 두드려 주듯이.


원래 같으면 혼자 끙끙 앓다가, 다 지나고서야 말했을 텐데 오늘은 말했네! 잘했다.


그러네. 나 말했네. 왜 말했지? 원래 말 잘 안 하는데.


그날은 그냥 하고 싶어서, 입에서 비집고 나왔다. 루피가 하루 종일 집에서 밥 해주고, 예쁘다 해주고, 자꾸 소중하게 대해주니까 '여기가 오늘 내 누울 자리다!!' 한 것 같다.


오. 괜찮은 거구나. 이래도 되는 거구나. 그렇구나.


근데 내가 선을 넘고 계속 징징대가지고, 너 힘들게 해 버리면 어떻게 해.


하니까, 루피가 자기는 매일 도파민을 필요로 하는 ADHD라 괜찮다고 한다ㅋ_ㅋ. 진짜 웃기고 사랑스러운 애다.

그래도 너는 나에게 너무너무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내 거 조금만 나눠 들어줘. 그것만 해줘도 난 너무 고마워.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일이 뭐였냐고? 음..


엄마가 쿠키가 먹고 싶다고 하셔서, 지난주에 오랜만에 베이킹을 했다. 진짜 오랜만에. 영어 강사 일 시작하고서는 체력이 달려서 엄두를 못 냈었거든. 진짜 간단한 베이킹이었는데,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너무 행복했었다. 만드는 것도 행복했고, 먹는 것도 행복했고!ㅋ_ㅋ.


대용량 요리..


오늘도 했다ㅋ_ㅋ. 카레를 한 솥을 했다. 나는 손이 진짜 와-아앙 크다. '하는 김에' 하면서 숭덩숭덩 재료 손질 하다 보면, 양이 많아진다. 도와주러 부엌에 온 동생이 양을 보고 뭐라 하려나 눈치를 슬쩍 봤는데 다행히 친절하게 도와줬다 키키. 많으면 좋잖아~ 많이 먹엉~


설레는 일..


있었다! 백만 년 만에 있었다! 나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 MBTI가 유행하기 전에 마지막 연애를 했기 때문에ㅋ_ㅋ. 백만 년이 대충 맞다ㅋ_ㅋ.


며칠 전에 동생이랑 카페를 갔다.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마시는데, 우유 거품이 엄청 쫀쫀해서 얇은 빨대로는 시원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숟가락을 받으러 카운터에 갔다. 싹싹 긁어먹으려고ㅋ_ㅋ. 한 직원에게


숟가락 하나만 받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물어봤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니, 입 닿는 부분이 하늘을 향한 숟가락들이 스테인리스 통에 꽂혀 있었다.


숟가락을 어떻게 꺼내 주실까? 맨 손으로 입 닿는 부분을 잡아서 주시려나? 숟가락 목을 잡아서 주시려나? 통 안에 손을 넣어서 손잡이를 잡아 주시려나?


가만히 기다리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의 행동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

는 티슈를 몇 장 집어들었다. 그 티슈 중에 반은 손바닥 위에 두었다. 나머지 티슈로 숟가락의 입 닿는 부분을 잡아, 숟가락을 꺼냈다. 그 숟가락은 손바닥 위 티슈에 올려졌다. 그 티슈로 숟가락 머리를 감싸 내가 받기 편하게, 정중하게 주다.

우와! 완벽해!

설렜다. 섬세함에 설렜다. 진짜 백만 년 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찐으로 설레서 당황한 나는 '감사합니다'를 급하게 뱉고 바로 휙- 자리로 돌아갔다.


눈이 손만 따라다녔던 탓에, 그의 얼굴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가 지녔던 분위기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카페에 다시 가면 계실까? 대형 카페라 직원이 많은데.. 계시더라도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보면 뭐!! 어쩔 건데!!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

아무튼 그랬다.

.
.
.

그런데 나 이번 주 일요일에 그 카페 또 간다.

약속이 있다.
(약속 장소 내가 정한 거 아님!!!)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갸아악-

휴가 이 글 보고서 바로 전화걸 것 같다. 어우 무서어.

설렘도 무섭고, 휴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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