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마음의 단칸방(5)

뜻모를 여정의 시작

by 신이안

따갑던 여름이라는 이름의 햇살이 조금씩 걷히자 좀더 넓은 빛은 스펙트럼을 차지하려는 욕심많은 가을이 찾아와 찰랑찰랑 볼을 쓰다듬고 있었고 난 아직 이전 그대로 방 한켠의 약간 누렇게 변한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약간 높은 데시벨의 소리가 티비에서 들릴뿐 사방은 조용했다.

"성곽 시가지와 론강 건너편 육지를 연결하던 성베네제교는 15세기 홍수에 의해 끊어져 론강 저 멀리만 바라 보듯 서있습니다"

무의식으로 켜놓은 텔레비전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밝혀 있는 화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면엔 잔잔히 흐르는 낯선 이름의 강 한켠에 제 기능은 잃어버리고 끊겨진채 그저 우둑허니 서있는 한다리가 비춰지고 있었다.

"이곳은 1305년 선출된 클레멘스 5세 교황이 왕과의 권력 다툼으로 로마 교황청으로 입성하지 못해 약 70년이라는 시간동안 프랑스 남부로 교황청을 이전하였던 아비뇽이라는 곳입니다. 고성벽으로 둘러싸여 화려했던 가톨릭의 역사를 간직한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 도시는 과거의 역사가 멈춘듯 조용하지만 론강의 강물은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간다는걸 말해주듯 흐르고 있습니다."

곧이어 화면엔 요새라고 말한다면 풍겨지는 이미지를 함축해놓은 것만 같은 프랑스 남부의 한 작은 고도시의 누렇게 변한 성벽면과 강물을 번갈아 보여 주고 있었다.

순간 고요했던 마음의 표면에 잔 물결이 일어 나는 것만 같았다. 무채색에서 세월의 시간 만큼 색을 얻어 누렇게 변한 고성벽의 너른한 두팔은 성내의 소중한것들은 감싸 안은거처럼 둘러져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면 이전엔 고난스러웠고 지금은 무의미한것같은 내 삶을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장소에 대한 욕구가 마음에 차오르자 떠남을 가로막는 여건이라는 장애물들을 고려치 않게 되었고 오직 아비뇽이라는 검버섯과 같은 이끼와 주름졌지만 무엇보다 따듯한 온기를 머금은것만 같은 그곳으로 마음이 물방울 모양처럼 변하여 향해있는 것만 같았다.

멍한 눈망울로 천장만을 향하던 시선은 그 이후로 아비뇽에 관한 글들과 사진을 찾아 움직이기 바빴고 어느샌가 아비뇽을 감싼 성벽의 울타리를 너머 코트다쥐르와 프로방스라 흔히 불리는 프랑스 남부 지방 도시들을 지도위에서 훑어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행이라는 마음의 단칸방(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