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6
TV에서 보면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코로나 방호복을 입은 분들이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집 창문과 문을 열어놓고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하면 이후 방역 전문가들이 오셔서 집안 곳곳을 소독해주고 가신다는 블로그 글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동거하는 가족 중 일부만 양성, 나머지는 음성이 나온 케이스도 아니었고(확진자가 생활했던 공간에서 계속 지내야 하는 비감염자가 없다는 뜻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열흘 정도면 자연스럽게 죽기 때문에 코로나 사체만이 남아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별도의 소독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셨지만 나는 찝찝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실외에서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마스크 제대로 쓰기, 손 소독제 쓰기, 사람들과 떨어져 다니기 등등), 집에서도 빨래, 청소를 부지런히 하며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청결을 유지했지만, 결국 우리는 코로나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생활치료센터 퇴소 날, 그동안 입었던 옷이나 샴푸, 수건 등 생필품 등을 모두 폐기물 박스에 넣어서 정리하고, 침대나 화장대, 화장실 등 생활했던 곳곳을 살균소독제를 뿌리고 항균티슈로 닦았다. 그리고 밀봉하여 가져온 옷을 입고 퇴소할 준비를 마쳤다. 지원팀에 정리된 방 내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드리고 대기를 하고 있으면 전화로 방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연락을 주신다. 내가 지냈던 생활치료센터는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 오전에 퇴소를 시켜주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였지만 열흘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오니 숨통이 뜨였다. 물론 아직 퇴원 일정조차 안내받지 못한 남편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나 혼자 이렇게 해방감을 느껴도 되는 것인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코로나 검사 후 귀가 시 자차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생활치료센터 퇴소 시에도 자차나 택시를 이용하여야 하고 대중교통은 피해야 한다.).
확진 당시 집에서 사용하던 수건, 속옷, 잠옷 등을 모두 버릴 생각으로 퇴소일이 정해지자마자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택배를 뜯고 세탁이 필요한 것들은 세탁통에, 기타 물품들은 소독 티슈로 일일이 닦아서 정리를 하였다. 수험서나 아이패드 등도 퇴소할 때 한번 소독을 한 후에 여행용 캐리어에 담았지만 다시 소독 티슈로 닦으면서 짐 정리를 했다.
그리고 친정과 시댁에 전화를 드렸다. 특히 시댁에 전화를 드릴 때는 한 명이라도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씀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으나 잘 참아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산소공급기까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으나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버님과 어머님은 너무 힘들어하셨다. 어머님은 식사도 잘 못하시고 잠도 잘 주무시지 못하셔서 남편만큼이나 살이 쏙 빠지셨다. 같이 코로나에 감염되었으나 나만 너무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괜스레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던 참이었다. 결국에는 가족이기에 함께 속상함과 걱정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누구에게서보다 큰 위로를 받았다.
시댁은 우리 집과 걸어서 3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으므로, 아버님과 어머님은 종종 창문 너머로 내 얼굴을 보러 집 앞에 오셨고, 문 앞에 녹용이나 생강청, 과일 같은 것을 걸어놓기도 하셨다. 남편 없이 홀로 집에 있던 5일의 시간은 생활치료센터 안에서의 시간보다 괴로웠지만 시부모님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잘 견딜 수 있었다.
열흘 동안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전부였던 나에게 택시를 타며 본 풍경이 몹시 어지럽게 느껴졌고, 여전히 미각과 후각이 돌아오지 않아 입맛이 없었다. 그래도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이 퇴원 후에 편하게 생활하고 쉴 수 있도록, 코로나 사체까지도 탈탈 털어 다 없애버려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창문을 열고 이불, 새로 산 수건, 속옷 등을 차례로 빨기 시작했고, 화장실을 비롯한 집안 곳곳을 청소하였다. 택배를 정리하고, 버릴 것들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으니 우리집 현관이 금세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찼다. 그렇게 집 청소와 빨래를 끝내고 나니 벌써 오후 4시가 되었고 뒤늦은 점심 식사를 하였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 너무 궁금해서 깜깜한 밤에 현장에 직접 가보았다. 물론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되어 있는 동안 매 공정마다 집안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덕분에(업체 대표님과 디자이너님도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이셨지만, 현장팀 실장님께서 바쁘게 움직여주신 덕분이다.) 어떻게 집이 변신되어 가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칼각을 맞추어 시공된 타일 사진과 안방 가벽 사진을 보고 나니 실물이 보고 싶어서 퇴소 당일 현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살던 집이 현재 우리집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다녔고, 아파트 엘레베이터는 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행히 역학조사를 통하여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모든 가족 및 지인들이 자가격리 전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에 조심하였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에 대한 의심으로 퇴소 날도 그렇게 알차게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