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 확진자의 병원 생활

#코로나 7

by 햇님

종종 코로나 관련 뉴스 기사, 특히 백신 부작용이나 백신패스와 관련된 기사에는 코로나를 가벼운 감기 혹은 실체가 없는 가짜 바이러스쯤으로 치부하는 댓글을 보곤 한다. 코로나 관련 정책의 당부나 백신의 효과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우리가 겪은 코로나는 진짜였다.



코로나 확진 통보 후 보건소 선생님과 통화하였을 때만 해도 기저질환도 없고 젊은 우리는 생활치료센터에 가게 된다고 설명을 들었다. 열이 나거나 손과 발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는 증상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기침이 점점 더 심해지자(남편과 달리 나는 기침 증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생활치료센터에 계신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하셨다.



남편은 4인 병실로 배정을 받았다. 그래서 KF-94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고, 병실 밖에 있는 공용화장실로 갈 때에만 침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어야 하니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잠자리를 가리거나 실내에 오래 있는 것을 답답해하지 않는 집돌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집에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샤워시설이 공용화장실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이용해야 했다는 점도 불편하다.

음압기가 있는 병실, 커튼레일만 있고 커튼은 없는 오픈형(?) 병실이다.

병실에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젊은 청년 두 명과 50, 60대로 보이는 어르신 한분이 있었다.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도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젊고 건강한 청년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의 반응이 강하기 때문에 고열에 시달리고 폐렴 등 각종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병원에서도 하루 두 차례 자가검진을 하였다. 체온과 산소포화도, 혈압을 재고 난 후 어플이 아닌 종이에 수치를 적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오전에 전화 문진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하루에 두어 차례 병실에 직접 들어와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였다. 남편이 입원했던 5월 말은 그리 더운 날씨가 아니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풍이 되지 않는 방호복을 입고 계신 간호사 선생님들은 항상 땀을 흘리고 계셨다고 하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있는 병실에 아무나 출입할 수 없으므로, 쓰레기 비우기 같은 일들도 모두 간호사 선생님들의 몫이었던 것 같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간호사 인력이 턱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저녁 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남편은 이튿날 폐의 상태를 보기 위하여 폐 씨티 촬영을 하였다(생활치료센터에서 폐 엑스레이를 찍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러진 않았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왼쪽 폐는 이미 폐렴이 진행되고 있었다. 말을 조금만 해도 기침이 시작되고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시부모님께서는 남편과 통화를 할 때마다 무척 속상해하셨다.


병원 입원 3일 차,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서인지, 패혈증을 예방하기 위해 주사를 맞은 덕분인지 해열제를 먹어도 38도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았던 체온이 드디어 정상범위로 떨어졌다. 열이 떨어지니 손발에 나타났던 발진도 바로 사라졌다. 이때쯤부터 미각이나 후각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병원 이송을 빠르게 결정해주신 덕분에 고열이 지속되는 위급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침이 심해서 천식 환자들이 휴대하는 호흡기 같은 것을 받았고, 기침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더 강하게 처방해주셨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도시락


병원 입원 5일 차, 다시 위기가 닥쳐왔다. 산소포화도가 뚝 떨어졌다. 95 이상이 나오던 수치가 갑자기 91로 떨어진 것이다.

산소 포화도는 신체에 있는 전체 헤모글로빈 중 산소와 결합하여 포화된 헤모글로빈의 비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95~100%의 값을 지니며 90% 이하이면 저산소혈증(hypoxemia)이라고 하며, 80% 이하이면 신체의 여러 조직이 심각한 상해를 입는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결국 남편은 코에 산소 줄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열이 떨어질 때까지만 써보자고 했던 스테로이드 복용량을 늘렸다. 하루 한번, 한 알씩 먹던 약을 하루 세 번, 한 번에 두어 개씩 먹는다고 했다. 폐 엑스레이를 다시 찍었다.

열이 떨어져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벌어진 일이다. 아들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까지 가게 되었다고 하니 어머님은 매일 밤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다. 내가 시험에 떨어졌을 때에도, 우리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에도 늘 좋은 말씀만 해주시던 낙천적인 아버님도 기침이 멈추지 않는 아들과 통화 후에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래서 시부모님께는 차마 남편의 상태를 말씀드릴 수 없었다. 나는 시험에 떨어져도 좋으니 제발 남편이 나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결국 하늘이 내 뜻을 들어주셨다.).

입원 5일 차에 찍은 폐 엑스레이에서 오른쪽 폐에도 폐렴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화장실을 갈 때처럼 자리를 비울 때만 잠시 산소 줄을 뗄 수 있었고, 잠을 잘 때에도 산소 줄과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주말에는 의사 선생님 문진을 하지 않아 꼼짝없이 이틀 더 산소 줄을 달고 있었다.


우리 또래의 젊은 청년들은 곧 퇴원을 하였다. 그들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상태가 더 심각했던 분은 링거도 맞았다고 했다. 그리고 한 번씩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산소 줄을 했었지만 정상수치로 올라오면 바로 산소 줄을 뺐다고 했다. 병실 내에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코로나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면서 서로 얼마나 두렵고 막막한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몇 마디 안 되는 경험담은 어떤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도 희망적이고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빈 병상은 하루정도 뒤에 바로 채워졌다.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오셔서 병실에서 남편은 막내가 되었다. 6월부터는 병원 이송의 기준이 보다 엄격해져서 조금만 늦었으면 남편은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 오신 분들은 증상이 더 심각해 보였다. 어르신들은 오자마자 바로 산소 줄을 달기도 하시고, 링거를 맞으시기도 하였다. 병실 안에서는 할 일이 많지 않아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드는 분위기라고 하였다. 그날부터 매일 9시 30분경에는 남편이 소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입원 10일 차, 월요일이 되고 주말 동안 산소포화도가 안정적으로 나온 것을 확인한 후 드디어 산소 줄을 떼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폐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날은 내가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하는 날이었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방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속옷을 빨아서 다시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병원은 여러 병실이 하나의 화장실을 쓰는 데다가 빨래를 말려둘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퇴소를 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남편 속옷을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맛있는 간식들도 같이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병원은 생활치료센터보다 반입 물품이 더 엄격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에 일회용 면도기도 가져가지 못했다.


입원 12일 차, 산소 줄 없이도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지 않았고, 엑스레이로 확인한 폐 상태도 전보다 좋아졌다. 스테로이드 등 약의 복용량도 조금씩 줄였다.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직접 방문하여 문진을 하던 날에는 이제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이 고열과 폐렴 증상으로 위기 상황 정점을 찍고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이후에는 다시 위험한 상태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화 문진을 할 때에도 기침을 심하게 해서 의사 선생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고열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기침 증상도 심각하여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가 방문 문진 때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기침하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곧 퇴원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퇴원 일정을 문의했다가 다음 주 월요일(입원 17일 차) 정도로 퇴원을 염두에 두고 계시다는 답변을 받았다. 약을 줄여도 몸 상태가 계속 호전되는지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입원 15일 차에 퇴원을 하였다. 집에 빨리 오고 싶었던 남편이 이후 두어 번 더 말씀을 드려 퇴원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3주 치의 스테로이드 약을 더 처방받아 왔고(스테로이드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갑자기 끊어서는 안 되고, 서서히 복용량을 줄여야 한다.), 회사의 배려로 2주간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였다.

2주 만에 만나는 남편을 얼른 보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하루 종일 시간에 맞추어 모의고사를 보고 답안지를 제출해야 했으므로, 방문을 닫아두고 오전 내내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는 동안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짐을 정리하는 소리, 오랜만에 맘 편히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옆방으로 가니 얼굴이 반쪽이 된 남편이 있었다. 2주 사이에 5킬로가 빠졌고, 팔과 다리는 나보다 가늘어져 있었다. 이후 한 달 정도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고, 기침과 체력 저하로 늘 기운이 없었다.



코로나 확진 당시에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없었을뿐더러, 건너 건너 확진된 지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하였지만 남편과 같이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 사례가 없었다. 그리고 올해 추석쯤 남편 회사에서 20대 여직원이 확진되었는데, 그 직원도 기저질환 없이 건강한 젊은이였음에도 남편과 비슷한 양상으로 증상이 나타나 결국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평소 업무가 겹치지 않아 친분이 있지는 않았으나 아무런 정보가 없어 불안해하는 동료에게 남편은 수시로 안부를 묻고 동료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었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청원을 올리고 매일 뉴스가 떠도 우리 부부는 백신을 접종했다.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겪어보았기에 또다시 감염되더라도 위중증으로 가는 것만은 예방하고 싶었다. 백신 부작용 때문에 접종을 망설이던 사람들도 코로나로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모두 백신을 맞았다. 그러나 백신을 꼭 맞아야 한다고 권유하지는 못하겠다(이후 코로나 확진자의 백신 접종에 관하여 글을 쓸 예정이다.). 다만,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어서 물어보는 주변 지인들에게 바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말한다. 무증상이나 경증으로 지나갈 수도 있으나 위중증 증상은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면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다. 요즘 병상 부족으로 재택치료가 늘어나고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어 매일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코로나는 진짜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코로나에 노출되어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서 회사에 출퇴근하고 점심식사를 하는 것, 토익 시험을 보고 학원에 가는 것까지 모든 일상생활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사무실 내에서, 학원 안에서 우리는 그 어디서든 코로나 감염자를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마스크를 철저하게 착용하고 수시로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것, 의심증상이 있으면 바로 코로나 검사를 받는 일은 꼭 지켜주시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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