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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Jan 04. 2022

내가 쓴 답안지, 기특함과 아쉬움 사이의 그 어디쯤

#수험생활 5

2차 시험을 본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11월,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으나 붕 떠있는 마음으로 연말을 보냈다.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가서 트리도 사 오고 장식도 해놓았다.

크리스마스트리+손뜨개로 만든 눈사람과 트리 인형+남편이 조립한 산타마을 오르골

시험에 불합격한 수험생이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답안 열람이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 과목별 점수와 문항별 점수를 확인할 수 있어서 답안 열람을 하면 1. 어느 정도 수준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면 몇 점 정도를 득점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고, 2. 시험 볼 때는 인식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상대평가 시험에서는 객관적으로 잘 쓴 답안도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이는 문제 난이도가 낮거나 수험생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안 열람을 하면서 이 정도 난이도의 문제는 얼마나 공격적으로, 치열하게 잘 써야 다른 수험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도 체감할 수 있다.




2주 전 답안 열람을 하기 위하여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방문하였다. 답안 열람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산업인력공단(자격시험 시행기관)에 민원신청을 한 후 민원답변을 통해 열람 일시를 지정받아야 한다. 나는 민원신청을 한지 거의 한 달 만에 답안 열람을 할 수 있었다.

지난 시험 때보다 더 많은 인원이 답안 열람을 하러 온 것 같았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의 각종 인사 이슈로 공인노무사의 수요가 높아지고 직업 자체의 인지도가 높아진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국에 취업난을 겪고 있는 대학생이나 불안정한 직장을 벗어나 평생 직업을 꿈꾸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어서 매년 시험 응시인원이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답안 열람 시 사진 촬영이나 필사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용한 가운데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어떤 이들은 답안의 내용을 완벽하게 복기해내기 위해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정독하는 것 같았다. 답안을 잘 복기해두면 스스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분석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학원 선생님께 자신의 답안을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하는지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천천히 답안지를 넘기면서 눈으로 빠르게 답안을 스캔하였다. 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이 종료되면 당일에 바로 문제가 공개되고(공식적인 답안이나 채점기준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각 학원의 선생님들은 자신이 담당한 과목의 모범답안을 노무사 수험생 커뮤니티에 올린다. 여러 선생님들의 모범답안을 보면 어떤 논점을 놓쳤는지, 잘못 쓴 부분은 없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나는 A라는 개념 안에 포함된 B와 C 중 B를 묻는 문제에서 당당하게 C에 대해서 서술했다(분명 서론에서는 B는 b를 의미하고 이는 c를 의미하는 C와 구별된다고 썼는데 왜 내 답안지는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고 있었는가…).




법학을 전공한 덕분에 법학 과목은 공부를 할 때에도, 시험을 볼 때에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경영학 과목인 인사노무관리론에서는 늘 만족스럽지 못한 점수를 받아왔다.

답안을 보니 문제에서 묻는 것만 열심히 썼다. 문제에서 ‘A와 B를 비교하고, C에 관한 4가지 기법을 서술하시오.’라고 질문이 주어지면, 나는 1. A와 B 각각의 개념에 대하여 정의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서술한 후 2. C의 개념과 그에 대한 4가지 기법을 설명했다.

문제가 원하는 답을 잘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왜 A와 B, 그리고 C를 한 문제 안에서 물어봤을까?’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일부가 다른 개념의 보완책일 수도 있고 실현방안일 수도 있으며 양극단의 입장에 있는 이론일 수도 있다. 그 의도를 파악해서 답안에 개념 간의 관계를 설명해준다면 글도 논리적으로 전개되고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했음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암기는 참 열심히 했나 보다. 모범답안을 보면서 ‘나도 저 부분을 서술했나? 누락한 거 같기도 한데…’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의외로 충실하게 적혀있었다.




답안 열람을 하고 나니 내 문제가 명확하게 보였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만 않았더라면, 출제 의도를 좀 더 고민해서 썼더라면 합격했을까?’

결국은 시험 당일 나의 실력이 그 정도였을 뿐인데 합격점과 점수 차이가 크지 않으니 괜히 아쉬움이 더 커진다.


다사다난한 작년 한 해,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여기까지 잘해왔구나 하는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마음이 급해 글씨는 엉망이지만 어떻게든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답안이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지만, 2021년의 나에겐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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