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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Feb 12. 2022

30대의 터널엔 비상구조차 없다 (1)

#수험생활 6

취업준비나 수험생활 등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뿐만 아니라 목표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과정’에 있는 상황을 ‘터널’에 비유하곤 한다. 그 끝을 알 수도 없고,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쯤 인지도 알 수 없다. 아직도 내가 있는 곳이 이 과정의 시작점에 불과한지,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터널 안은 깜깜하고 답답한데, 마치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과도 같다.


터널에는 '비상구'가 있다. 화재가 발생하거나 차량 사고가 난 경우 등 비상상황에서 이용하도록 만들어놓았다. 터널에 있는 비상구는 1. 사람만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므로 타고 온 차량에서 내려야 이용할 수 있고, 2. 바로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반대편 터널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특징이 있다. 



#20대의 터널에는 비상구가 있었다.


나는 20대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로스쿨 입시’라는 터널에 진입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중 로스쿨 제도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과 동기들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부류와 새로운 제도인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물론 법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거나 빨리 취업을 하고 싶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애초에 제3의 길을 선택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짧은 방황 끝에 법학이 꽤 적성에 잘 맞고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최종적으로 학자이자 교육자의 길을 걷길 원했으므로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기로 하였다(법학전문대학원, 일명 '로스쿨'을 졸업하면 석사학위를 수여받는다.).


나를 포함한 4명의 친한 선배, 동기 중 2명은 준비한 첫 해에 로스쿨에 합격하였다.

우리는 학부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학교 스터디룸이나 강의실을 예약해서 LEET(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하였고, LEET 시험을 치른 후에는 자기소개서를 썼으며 면접 스터디를 만들어서 면접 준비를 하였다. 1~3학년에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과외를 하러 달려가야 했던 적이 많아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던지, 동기나 선배와 같이 술을 마신다던지 등의 추억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로스쿨 입시를 핑계로 매일 같이 친한 선배, 동기와 시간을 보내는 게 무척 즐거웠다.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먼저 합격한 두 사람만큼 '합격을 할 만큼' 노력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로스쿨 입시에서 고배를 마신 후, 졸업 유예를 신청하여 9학기를 다니게 되었다. 나와 함께 고배를 마셨던 또 다른 동기는 바로 취업을 하면서 학교를 졸업했다(그러나 이 친구도 이후에 다시 로스쿨 입시에 도전해서 결국 현재는 변호사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동기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최소한의 전공수업만 들으며 LEET 시험을 준비하니 이전 해보다 성적이 올랐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미리부터 공들여 준비했다. 타이밍 좋게 교내 글쓰기 센터의 센터장이셨던 국어국문학과 교수님께 글쓰기 코칭을 받게 되면서 내 자기소개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남들은 자소설이라 부를 정도로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여 큰 업적처럼 작성하기도 하는데, 내 자기소개서는 겸손하다 못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기존의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기보단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자기'소개서이지만 나를 '타인'이 소개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보다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어투로 작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약하고 강단 없어 보이는 이미지를 바꾸어 보고자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약하고 강단 없어 보이는 이미지'는 전공 교수님 중 한 분께서 키가 크고 말라서, 말투가 나긋나긋하다는 이유로 하신 말씀이다. 사실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꿔보는 노력을 하고 싶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친구들은 고시에 비하면 로스쿨 입시는 쉬운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옆에서 나를 지켜보며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절대적인 공부량이 사법고시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로스쿨 입시는 높은 학부 학점과 만점에 수렴하는 어학성적, 기타 스펙이 될 수 있을 만한 자격증이나 대외활동 등을 준비하여야 하고, LEET를 치른 후 면접까지 보아야 하니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이 많다. 친구들이 인정해줄 만큼(물론 그것이 합격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던 것 같다. 심지어 그중 한 친구는 이후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을 본 후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있으니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불합격이었다.


학점을 올리겠다고 졸업을 다시 유예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고(두어 과목 좋은 학점을 받는다고 9학기 동안 쌓여서 형성된 평점이 쉽게 올라갈 리가 없다.), 토 나오게 봤던 TOEIC 성적을 더 올릴 자신도, 전혀 마이너스가 될만한 점수가 아니었던 LEET 성적을 올려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나보다 학점이나 어학성적, LEET 성적이 낮은 사람들도 로스쿨에 입학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로스쿨 제도 초기에는 이러한 '정량'적인 평가요소들보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드러나는 '정성'적인 평가요소들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어떤 노력을 더 하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여러 사건들이 터진 후 현재 로스쿨 입시에서 각 평가요소의 비중이 초기와는 다소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나는 끝이 어디인지, 어떻게 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까마득했던 그 터널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지런히 로스쿨 입시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오로지 로스쿨 입학만을 위한 준비를 해왔던 나는 학부시절 동안 차곡차곡 내 꿈을 담아왔던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난 후 '취업 준비'라는 또 다른 터널에 진입했다. '로스쿨 입시'라는 터널을 탈출하기 위한 비상구는 '취업 준비'로 가는 길이었다.




때마침 취업난이 시작되었고, 마지막 학기 재학 중이나 졸업 직후 척척 취업을 하던 남자 동기들과는 다르게 여자 동기들은 평균 두 시즌(상반기, 하반기 공채)을 준비해도 만족스러운 곳에 취업하지 못했다(신입 공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보다는 호황이었다.).

놀랍게도 로스쿨 입시에서는 늘 좋지 못한 학점으로 치부되었던 내 평점이(면접 스터디를 하다 보면 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꽤 괜찮은 학점으로 평가되었다. TOEIC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수학 과외를 해왔고, 2년여간 LEET 공부를 해왔으므로, 보통 신입 공채에서 보는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수월하였다.

문제는 채용과정에서도 자기소개서나 면접 등의 '정성'적인 평가요소가 있다는 점이었다. 로스쿨 불합격의 원인을 정성적 요소의 부족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또다시 이 터널에 영영 갇혀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취업 준비를 시작한 첫 번째 시즌만에 취업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나는 '로스쿨 입시'라는 터널을 '취업 준비' 가는 비상구를 통해 완전히 빠져나갔다.


https://brunch.co.kr/@shining-star/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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