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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r 29. 2022

엄마의 비밀이 점점 늘어난다.

#수험생활 11

딸은 엄마에게 부모-자식관계를 넘어서 친구와도 같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이미 아들이 있는 친구들은 "딸이라는 보장만 있으면 둘째를 낳겠는데, 또 아들이면 아쉬워서 어떡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본인이 엄마에게 친구가 되었듯이, 내 자식도 훗날 내 친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남편은 연애시절부터 내가 엄마와 통화를 하면 친구와 전화를 하는 것으로 종종 착각하였다. 남편은 외동아들인 데다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촌들도 모두 남자 형제들이라서 엄마와 딸이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모양이다.

나는 옷을 사거나 머리를 할 때에는 늘 엄마와 함께였다. 대학생일 때부터 과외를 한 덕분에 엄마의 화장품이나 옷, 신발 등을 사드리는 것으로 효도를 대신할 수 있었다. 내 손에 매니큐어를 칠할 때면, 옆에 있는 엄마의 발톱에도 알록달록 색을 입혀드렸다. 가까이 사는 외숙모들께서는 늘 딸이 있는 엄마를 부러워하셨다.

때로는 아빠조차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에게만 털어놓을 때도 있었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나와 함께 상의를 하기도 했었다. 이번에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가전과 가구를 새로 구입할 때에도, 기존의 짐들을 정리할 때에도 늘 내가 함께 있었다.


그런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비밀이 생겼다.




#첫 번째 비밀


이모부가 폐암으로 투병으로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작년에 보험을 변경하려고 만난 엄마의 친한 지인분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이모부 보험금과 관련해서 문의를 하려고 연락을 하셨는데, 통화를 하는 내내 엄마가 쉴 새 없이 울었다고 하셨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시험이 끝난 후에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그제야 친정집 근처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매주 놀러 오던 이모가 오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시험이 끝난 후에 말해주려고 이야기하는 시점을 잠시 미뤘을 뿐이라며.




#두 번째 비밀


입주 전 사전점검에서 리모델링 준공검사해본 실력을 발휘하였다. 하자가 있는 부분을 표시하는 스티커를 다 붙이고 추가로 더 받아와서 붙였다.

작년 말부터 분양받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였으나 우리 부모님은 입주일이 미뤄지고 있었다. 당시 거주하고 있던 집이 나가야 보증금을 돌려받고 입주할 집에 잔금을 치를 수 있는데,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지 세 달이 다 되어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다행히도 2월에 집을 계약하겠다는 분이 나타나서 드디어 3월 초에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

미리 구입해두었던 가구나 가전뿐만 아니라 추가로 구입하는 가구들도 이삿날에 맞춰서 배송일을 지정하였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제품들도 있었는데 모바일 결제가 서툰 엄마는 카드 사진을 찍어보내며 결제를 부탁했었다.


이삿날에 가서 일손을 도울까 하는 고민을 하긴 했으나 결국 가지 않았다. 오미크론 확진자 수가 무서운 기세로 늘어나고 있어서 이번 달부터 학원 강의를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시켜놓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계속 친정집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다소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작년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올해에는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문한 가구나 가전이 제대로 배송되고 설치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삿짐이 다 올라갔을 것이라 생각되는 오후 서너 시쯤 엄마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어쩐지 퉁명스럽고 쌀쌀맞은 말투로 전화를 끊으려 했다. 가구 하나가 약속된 시간에 배송이 오지 않아서 화가 난 걸까? 이사로 정신이 없을 엄마를 대신하여 가구 판매처에 전화를 해서 배송이 다음날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배송이 지연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를 했으나 계속 통화 중이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전화를 하여 내일 가구가 배송될 예정이고, 평일이라 집에 아무도 없을 테니 내가 가서 가구가 설치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오겠다고 설명했다.


"아빠가 집에 있을 때 와야 되는데. 엄마는 전화 안 받는다고? 엄마는 큰일이 있으면 감당을 못해. 이사 앞두고 일이 많아서 몇 날 며칠을 몸살을 앓았어."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왜 내가 아닌, 꼭 아빠가 집에 있을 때 가구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큰일'은 이사가 아닌 다른 무슨 일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정확한 배송시간을 다시 전달받으면 알려준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배송기사님께 전화가 왔고, 다시 엄마에게 가구 배송 시간을 알려드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도 이상했다.


"너 내일 와도 집에 못 들어와."

"왜? 집에 무슨 문제 있어?"


내가 묻자 금방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분양받은 아파트 대금을 치르기 위해 대출을 받았으나 아무런 안내도 없이 대출기간이 연장되지 않은 채 끝이 나버렸고, 잔금을 치러야 하는 이삿날 당일에 은행 담당자는 코로나에 확진되어 자리를 비웠다. 은행 대출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줄 알았던 부모님은 이삿날 대출기한이 끝났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이삿짐이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고, 부모님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삿짐을 집 안에 넣었다. 이삿짐이 모두 올라간 후에는 엄마는 집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었다.


"새 집에 이사 오는 날인데, 기뻐야 하는 날인데 이게 뭐야... 너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너한테는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야지. 그래야 같이 방법을 찾아보든 할거 아니야."


도대체 왜 대출이 자동 연장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언제 이런 상황을 알게 된 건지 답답해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아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런 내 마음을 엄마에게 들킨 것 같았다. 나는 따질 자격이 없었다.


"네가 돈이 어디 있어. 결국 사위한테 말할 텐데 무슨 면목으로 이야기를 해."

"사위는 가족 아니야? 방법만 있으면 사위도 같이 찾아볼 수도 있는 거지. 곧 퇴근할 시간이니까 이야기해볼게. 이따 다시 전화할게."


걱정하지 말라며 큰 소리를 치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꾹꾹 눌러온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 자세히 물어봤다면 단 몇 시간이라도 엄마가 마음고생을 덜 하지 않았을까?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가 엄마로 하여금 비밀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자책했다.

남편 퇴근길에 전화를 해서 친정의 상황을 설명했고, 집에 도착한 남편과 함께 시댁에 찾아갔다. 잔금이 적은 액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현금을 융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시부모님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적금 만기가 끝난 여윳돈이 있으셨고, 모자란 금액도 예금을 해지하여 보태주셨다. 잔금을 치르고 등기가 나오면 바로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되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해결하시라고 말씀해주셨다. 연신 죄송하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 나에게 기죽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세 번째 비밀


그렇게 큰 불을 끈 후에도 엄마는 몇 날 며칠을 앓았다. 오미크론이 친정도 휩쓸고 간 탓이었다.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어야 회복이 될 텐데, 엄마는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 확진자였던 사람들도 오미크론에 재감염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이사 후 친정집에 가보질 못하고 있었다.


모든 가전, 가구가 들어가고 나서 전화로 신축 아파트, 새로 산 가구와 가전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았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여기가 서울인지, 시골인지 모르겠어. 지하철역에서 아파트로 들어오는 마을버스는 20분을 기다려도 오질 않고, 아파트 상가에 있는 편의점 말고는 아직 주변에 큰 마트 하나도 안 들어왔어. 출퇴근이 한 시간씩 걸리니까 너무 힘들어."


장롱면허를 가지고 있을 뿐 운전을 하지 않는 엄마는 교통이 편했던 이전 친정집보다 이사 간 새집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다렸던 이사였는데, 좋은 점은 하나도 없고 불만 투성이었다.


최근 시어머님이 식사를 하시면 자꾸 배탈이 나서 식사를 제대로 챙겨 드시지 않아 1~2주에 한 번씩 반찬을 해서 갖다 드렸는데, 비타민이나 다른 영양제도 잘 드시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내시경을 하거나 진료를 받아보아도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며느리 선배인 엄마에게 뭘 드시면 속이 좀 편할지 물어보았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이사 직전에 외할머니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이전 친정집은 외할머니댁과 걸어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래서 엄마는 수시로 외할머니댁에 들려서 청소도 해드리고 식사도 같이 했었다. 하지만 이사 간 곳은 외할머니댁과 1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다. 그제야 왜 엄마가 이사 간 새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필 이사 후 친정 식구들이 오미크론에 감염된 탓에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도 외할머니댁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가격리가 필요한 7일 후에도 혹시나 싶어서 외할머니댁에 가기 전에 자가진단 키트를 해보면 계속 양성이 나와서 몇 주째 외할머니를 뵙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것도 내게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고, 엄마는 또 내가 마음 쓸까 봐 말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모부를 보내드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외할머니에게도 똑같은 병이 찾아왔다니, 엄마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한 달 동안 엄마 혼자 끙끙 앓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수험생이 아니었다면 엄마는 이 모든 비밀들을 나에게도 이야기하고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나는 잠 못 이루는 엄마를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할까?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해서 엄마와 통화를 한 날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친정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주말에 내가 외할머니댁에 가겠다고, 자가진단 키트에서 음성이 나온다면 엄마를 데리고 같이 오시라고.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엄마 몸이 금방 회복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친정 부모님은 아직 젊으니 더 많은 날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시부모님을 먼저 챙겨 왔다. 시부모님께서 백신을 맞고 앓으실 때에는 바로 죽도 사드리고 며칠 동안 반찬도 해다 드렸는데, 친정 부모님이 오미크론으로 앓은 지 2주가 넘어갈 때까지 한 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도 나이가 들고 있음을 이제야 의식하게 되었다. 시부모님보다 상대적으로 젊을 뿐, 환갑을 훌쩍 넘긴 친정 부모님도 몸이 금방 회복될 만큼 젊은 나이는 아니다.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반찬이라도 해서 문고리에 걸어두고 올걸 후회가 되었다.

반찬을 만들어가면 늘 친정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지만(아마도 시부모님이 드시기에 부족함이 없는지 걱정이 되어서 하는 잔소리일 것이다.) 그래도 반찬을 만들었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친정 엄마와 아빠의 몸 상태를 설명드리고 회복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사 왔다. 엄마는 이틀에 한번 정도 잠을 전혀 못 자고 있는 상태인 데다가 대상포진 후유증인지 온몸이 찌릿찌릿 저려온다고 했고, 아빠는 잠이 쏟아져서 이른 저녁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한다고 했다.

2주전 / 지난주에 친정에 챙겨드린 반찬들

다행히 주말에 친정 부모님은 자가진단 키트에서도 음성이 나왔고, 함께 외할머니를 뵙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삿짐이 모두 들어간 친정집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가구랑 가전은 제자리를 찾아 놓여있었지만 아직 짐이 다 정리가 되지 않아 엉망이었다. 그래도 외할머니를 뵙고 친정 엄마 얼굴을 보고 오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돌이켜보면 노무사 수험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크고 작은 비밀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결혼을 한 해에는 친정 엄마가 대상포진에 걸렸었지만 난 서너 달 뒤에나 알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비밀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비밀들이 서운하다기보단  많은 일들을 혼자서 감당하려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일련의 일들을 겪을 때마다 잠을   없었고, 꾹꾹 참다가 어느 날은 친구 꾸리에게 전화를 해서 밑도 끝도 없이 펑펑 울기도 하였다. 해결할  있는 일들은 해결이 되었고, 어떠한 일들을 내가 진작에 알았어도 해결할  없는 일들이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엄마가 외롭게 견뎌야 할지   없어 막막했다.


하지만 엄마의 심정을 잘 알기에 엄마의 비밀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내가 각별한 이유는 대입 재수를 하던 때와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던 때에 겪었던 사건들로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밤새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려면 매일 청심환을 먹어야 했고, 입맛이 없어도 버티기 위해서 억지로 숟가락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대학 입시는  치렀으나 로스쿨 입시는 결국 실패했다. 그것이 엄마의 잘못은 아니지만 엄마의 가슴 한편에는  내게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또다시 나의 수험생활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화를 하면 엄마는 또 신경을 쓴다며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을 숨기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사실 요즘에는 장수생이 되어서 의욕이 떨어진 탓인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엄마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좀처럼 공부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만큼은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으로 보이고 싶다.


"엄마, 다른 수험생들도 다 가족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공부하고 합격하잖아. 사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도 열심히 하고 있어. 운만 따라준다면 올해는 꼭 합격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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