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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Apr 19. 2022

장래희망에 적었던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

#수험생활 12

나는 신림동 수험가에서 강의를 하는 분들을 ‘선생님’이라 불러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 수험생들은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 하여 ‘강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부분 전문자격사이기 때문에 노무사, 변호사, 법무사님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아마도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면 장래희망란에 가장 많이 쓰여 있는 직업이 바로 ‘선생님’ 일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 덕분에 한동안 ‘읽기’ 과목의 선생님으로 학교 교단에 서는 경험을 했다. 사실 학급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책을 소리 내어 ‘읽도록’ 시키고, 지문 말미에 있는 몇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써보고 발표를 시키는 것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되니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 역할을 어설프게나마 경험해보니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았고, 수업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때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는 직장생활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 7~8년 정도 과외를 하기도 했다.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이나 영어, 그리고 주로 국어를 가르쳤다. 방학에는 나와 함께 공부하던 중학생 친구들의 초등학생 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는 학생들 통제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았지만 과외선생님도 선생님이라고 예의도 깍듯하게 갖추고, 숙제도 곧잘 해오고, 시키는 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학기 중에는 평균적으로 3~4명, 방학에는 초등학생들까지 맡으면 6~7명을 가르쳤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혹은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면서 과외를 병행하다 보면 쉴틈이 없었고, 제대로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 편의점 삼각김밥을 대충 입에 욱여넣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착하고 예쁜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사춘기 아이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부모님들과 상담을 한 후에는 보람도 느꼈다. 수업을 하러 가는 시간이 늘 즐거웠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에 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내게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국어와 사회를 가르쳤다. 강남 8 학군에 속하는 지역은 아니었지만 학군도 괜찮고 교육열도 높은 동네에 있는 학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열은 높지 않았다.

친한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녔는데, 유독 한 아이를 괴롭혔다. 수업시간에는 지우개를 손으로 조그맣게 떼어서 그 아이에게 던졌고, 쉬는 시간에는 그 당시에 유행이 시작되었던 패륜적인 욕설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내가 제재를 하면 잠시 동안이라도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굴었으나, 나중에는 실수인 척 나에게도 지우개 덩이를 던지기도 했다.

주동자급의 아이를 따로 불러내어 타일러 보기도 하였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와 따로 대화도 나눠보았다.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아이는 내게 그냥 놔둬달라고 했다. 그리고 원장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리니 이미 알고 계셨다.


“그 아이(주동자)는 학부모님이 체벌을 해서 혼내달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그 어머니가 엄격해서 집에서 혼나고 오면 아이가 내내 기가 죽어있을 정도예요. 그런데도 달라지는 게 없어요.

그 또래 특성상 한 명이 학원을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바꾸면 친한 친구들도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서 학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이 간섭하는 걸 싫어해요.”


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되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다른 방법을 더 찾아볼 만큼 열정적이지도 않았고, 학원 측의 대응방법을 비판하거나 다른 방법을 밀어부칠만큼 정의롭지도 않았다.

수업 진행이 원활하지 않으니 어떤 날은 간식으로 꼬시며 억지로 진도를 나가기도 했고, 아이들이 무슨 행동을 해도 무시하고 강의를 하려고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무시가 되지 않았고 학원에 가는 날은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선생님이 자주 바뀌면 아이들도 매번 새로운 선생님에게 적응해야 하므로 학습환경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아이들을 배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합리화하였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


학원에 직접 가서 강의를 들은 지 햇수로 4년 차,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각 과목에서 소위 말하는 '1타 강사'가 바뀔 만큼의 긴 시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많은 수험생들이 유입되어서 그런지 압도적 1타 강사는 없어지고, 과목당 2~3명의 강사가 대형 강의를 진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어떤 과목은 신림동에 있는 강사만 15명 정도 되어, 자신이 15타 강사라는 농담을 하는 분도 계시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1타 강사가 A에서 B로 바뀌었다, B가 수강생 수만 많아졌지 모의고사 응시생 수는 아직 A가 제일 많다 등등 토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학원들은 자기 학원의 소속 강사를 홍보하기에 바쁘다. "3년 연속 실강 접수 마감", "모의고사 응시생 1000명 돌파", "ㅇㅇㅇㅇㅇ 과목 수험서 판매율 1위" 등등 수시로 공지를 띄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험생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수험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선생님들은 1. 교재를 개정하거나 수험생들이 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재를 만들기도 하고, 2. 질문에 빠르게 답변을 해주기 위하여 다양한 의사소통 경로를 확보한다. 더 나아가 3. 많은 질문을 받은 부분은 설명 방식을 바꾸기도 하도 추가 자료를 제공하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들은 당연한 것이다. 선생님 강의 내용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교재나 자료, 질의응답, 설명방식 등은 모두 수강생이 지불한 수강료와 교재비에 포함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들의 이면에는 선생님들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1. 교재가 답안지에 현출해야 하는 분량에 맞추어 내용요약한 형식으로 출간되는 추세이다. 기본적인 이론 공부에 필요한 두꺼운 기본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예전에는 선택사항처럼 여겨졌던 요약집을 거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필수적으로 내놓고 있다.

원래 강의를 듣거나 기본서를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 답안지에 압축하여 서술하는 것은 ‘수험생’이 해야 할 몫이었다. 요약집을 만드는 것이 선생님의 의무처럼 되어버리면서 그 과정이 고스란히 ‘선생님’의 몫이 되었다. 이제 수험생들은 선생님들이 만든 요약집을 외워서 그대로 답안지에 적기만 하면 된다.

법학과목은 기본서+서브노트/단문집(요약집)+사례집 이렇게 세권이 기본이다. 다른 과목들은 아직 출간이 되지 않은 각종 교재들이 더 남아있다.

2.  질의응답을 위한 소통의 경로가 다양해졌다. 학원 홈페이지를 통해 질문을 하거나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다음 카페나 네이버 블로그, 이메일 등을 통해 소통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핸드폰 번호를 오픈해서 카카오톡이나 전화로 상담을 해주는 선생님들도 있다.

수험생은 꼭 실강을 듣지 않아도, 수업시간이나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어디서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답변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과 사생활의 분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3. 법학 과목은 판례 원문을 보면서 해당 판례가 어떻게 문제화될 수 있는지, 어떻게 답안을 서술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자료를 배부하거나 특강을 하고, 경영학 과목은 교수님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최신 이슈를 학습할 수 있도록 교수 저나 논문 등을 정리해서 배부해주기도 한다. 강의시간에는 PPT를 활용해서 각종 시각자료를 보여주며 수강생들이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수강생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질문을 하는 부분은 수업시간에 다시 설명을 해주고, 다음 순환이나 다음 해 강의에서 설명하는 방식을 바꾼다. 판례가 변경된 배경을 설명해주거나 판례가 제시하는 각종 판단요소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등 선생님 스스로 해당 부분을 더욱 깊이 공부하고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 노력이 보인다. 그래서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강의를 들으며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강의를 들을 때 필기를 하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며 필기노트를 틈틈이 만들어 나눠주는 분도, 대면이나 비대면으로 공식적인 상담을 실시하고, 통학길에 판례를 읽지 말고 편하게 들으라며 판례를 녹음해서 제공해주는 분도 계시다.



나는 그러한 노력이 수험가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로 보이지 않는다. 위와 같은 노력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감정 소모가 클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노력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거나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주는 막중한 책임감이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가끔 강의를 듣다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지금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인가 생각해본다.

나도 처음에는 새로운 과목이나 새로운 문제집을 가르칠 때면 꼼꼼하게 내용을 읽어보고 이해를 한 다음, 어떻게 설명해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해놓은 것처럼 같은 단원의 같은 페이지에서 똑같은 말로 내용을 설명했다. 어쩌면 가르치는 사람이 발전이 없으니, 배우는 학생들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으나 그 자리에 멈춰 섰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교수저, 논문, 판례를 연구하고, 새로운 교재와 자료를 만든다. 어떻게 하면 수강생들이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을지 고민한다. 수강생들의 궁금증을 한시라도 빠르게 해결해주기 위해 소통하며, 적극적으로 상담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 덕분에 예년과 같은 선생님에게 동일한 과목의 수업을 들어도 얻어 가는 것이 많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래서 답안지에 보다 논리적으로 현출 해낼 수 있으며, 장수생임에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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