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활 13
다음 달에는 공인노무사 1차 시험이 있다. 나에게는 벌써 세 번째 1차 시험이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1차 시험이 객관식으로 출제되고, 절대평가이며, 합격률이 50%쯤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1차 시험부터 다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햇님이 너한테 1차 시험은 쉽지? 이번에도 합격할텐데 뭐.”
라고 말을 하곤 한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쯤이면 1차 시험 얘기를 꺼내면 당연한 반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2021년 제30회 공인노무사 시험과 관련된 통계자료를 보면, 2차 시험 출원자(원서를 접수한 자) 기준 2차 시험 합격률은 7%대이다. 4500명이 응시하면 315명만이 합격하는 것이다(공인노무사 최종 합격 인원은 300명이 원칙이지만, 동점자가 나오면 그보다 많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2차 시험 시험장에서는 한 교실에 20명 정도가 배정되므로, 2차 시험날에 ‘이 교실에서 합격자는 한 명 아니면 두 명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비장해지기도 한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합격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실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몸소 느낀다. 하지만 매주말마다 보는 모의고사에서 내 등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나만 실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성장하고 있다고 뿌듯해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서 나가야 한다.
수험 진입 시기가 애매해서 2차 시험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못한 사람들이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들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채우는 사람들도 많고, 모의고사 이후 공개되는 최고 답안(모의고사 응시생이 쓴 답안지 중 내용이나 형식 등이 ‘최고’ 수준인 답안지를 수강생들에게 공개한다.)을 보면 제한된 시험시간 안에 작성된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암기도 잘되어 있고 논리적 흐름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타 국가시험과 비교해서 시험과목 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극악의 합격률을 자랑하는 이 시험에서 2차 합격이 어렵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차 시험은 응시자 중 절반이 합격한다. 응시자 수가 증가하면서 합격률이 뚝뚝 떨어지는 2차 시험과는 달리, 1차 시험은 항상 비슷한 합격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합격률이 50%라는 것은 곧 절반은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합격률 50%에만 집중하고, ‘불합격률 50%’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맘때쯤이면 각종 전사들이 등장한다. 30일의 전사, 14일의 전사, 심지어 7일의 전사까지. 이전에는 1차 시험 준비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가 해당 기간에만 바짝 1차 시험을 준비하는 대담한 모습을 ‘전사(戰士)’에 비유한 것 같다. 이 전사들은 1차 시험이 처음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보통 1차 시험을 본 경험이 있는 ‘유예생’(전년도 1차 시험에 합격해서 올해에는 1차 시험에 합격하지 않아도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유예받은 수험생)이 다음해에 한번 더 2차 시험 응시자격을 얻기 위해 보험처럼 1차 시험을 응시하는 경우 또는 ‘헌동차’(올해 1차 시험부터 보아야 하는 동차생이지만, 이미 유예생까지 경험한 후 두 번째로 1차 시험을 보는 수험생)가 1차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에 ‘전사’가 된다.
나는 유예생까지 두 번의 사이클을 경험한 이른바 ‘헌헌동차’이다. 하지만 ‘전사(戰士)’는 못되고, 그저 전사(戰死)하기 직전이다.
1차 시험 경험이 두 번이나 있고, 항상 넉넉한 점수로 합격했다. 누군가는 과락(40점 미만) 없이 평균 60점을 넘기면 합격하는 1차 시험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높은 점수로 합격하는 것을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1차 시험일로부터 3개월 정도 전부터 1차 대비용 객관식 문제집을 틈틈이 풀고 있다.
1차 시험을 합격하지 못하면 2차 시험 응시 기회조차 없다. ‘최종 합격’이 목표이므로, 1차에서 불합격하여 2차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되면 올 한 해를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그래서 불안한 턱걸이 합격보다는 비효율적이라도 고득점 합격이 마음 편하다(그래도 매번 가채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1차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여 2차 시험공부를 손 놓을 수가 없다.
흔히들 2차 시험공부 과정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비유하곤 한다. 계속 반복해서 책을 읽고 써보고 입으로 중얼거리고 문제를 풀어봐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생각보다 적은데, 이는 새로운 내용을 학습하면 이전에 습득한 내용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람도 없고 지루한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 ‘밑 빠진 독’에도 물이 차기 시작한다.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암기하면 책을 더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갈 수 있고, '독 안으로 물을 붓는 속도'가 '밑으로 빠져나가는 물의 속도'를 제법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물 붓기를 잠시라도 멈추면 물이 빠른 속도로 독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천천히 물을 붓기 시작해서 다시 빠져나가는 물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1차 시험일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2차 시험 공부를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전사(戰死)하기 직전의 상태가 된 이유이다.
평일에는 하루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서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공부하고 나면, 주말에는 모의고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말에는 오전 7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7시에 집으로 돌아오고(원래 토요일은 오후 10시 30분까지 수업이 있으나 이사를 온 후엔 월요일 저녁으로 수업을 옮겼다.), 저녁을 먹은 후 다음날 있을 모의고사를 또 준비한다. 눈꺼풀은 무거워졌고, 답안지를 써 내려가던 손목에는 힘이 들어가질 않으며, 책을 보는 눈은 빠질 것만 같다. 너무 힘든 날에는 내가 입으로 판례와 이론을 읊으면 남편이 책을 보면서 잘 외웠는지 확인해준다. 그러고 나면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무척 고역스럽지만, 주말에 보았던 모의고사를 리뷰하고 저녁에 있을 모의고사를 준비해야 한다. 학원의 GS2기가 개강한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쉬는 날은 없었고 늦잠을 잔 날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출근 도장을 찍었던 헬스장은 지난 2주간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 헬스장에 안 가는 날은 동네 한 바퀴라도 걸었지만, 벚꽃이 피고 지는 것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마저도 못한 지 오래된 모양이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살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운동을 하러 간다. 오랜 시간 책을 보고 답안지를 끄적이다 보면 목이 늘 빳빳하게 굳고, 혈액순환이 안되어서 그런지 다리가 저려온다. 운동을 하고 난 후 느끼는 근육통은 시원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매일 틈틈이 글을 쓰던 시간도 이제는 허락되지 않는다. 일단 모의고사를 모두 치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밤늦게 머리를 말리며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시간만이(그러니까 오직 월요일 밤 또는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시간뿐이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공부를 하던 도중에도 머릿속에 글감이 둥둥 떠다니기도 하는데, 공부에 방해가 되니 그만 생각하려고 '작가의 서랍'에 끄적여둔 글감만 쌓여가고 있다.
누가 1차 시험이 쉽다고 했는가?
매년 방심했던 수많은 전사들이, 심지어는 성실하게 1차 시험을 준비한 헌동차생들도 피눈물을 흘리며 떨어진다. 합격률 50%의 이면에 있는 불합격률 50%,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2차 공부를 놓을 수 없지만, 절반이 떨어지는 1차 시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1차 시험에는 이런 무거운 부담감을 견뎌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의도로 한 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대답을 하게 된다.
“저한테는 1차 시험도 결코 쉽지 않아요. 준비하는 과정은 2차 시험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부담스럽고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