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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y 12. 2022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수험생활 14

“해ㅅ&@?아…!!”

남자 친구가 나를 애타게 불렀지만 앞만 보고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나는 남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은행만을 향해 걸어갔고, 그 이외의 것에는 눈과 귀를 닫았다. 내가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결국 남자 친구는 차에서 내렸고, 다시 내 이름을 몇 번이나 외치며 뒤를 쫓아왔다. 결국 우리가 만난 곳은 **은행 앞이었다.

지금도 남편은 종종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그때 성격을 알아봤어야 했다면서 말이다.


좋게 포장해서 목표지향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시야가 좁고 성질이 급하다고 할 수도 있다.

늘 목표지향적인 삶과 그러한 태도에서 나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취업준비를 하거나 수험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목표를 성취하고 난 후에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혹은 그러한 것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런 나를 보면서 현재를 즐기지 못하니 안타깝게 생각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너무 사소한 것까지도 통제하려는 모습을 답답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서운하기도 하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고 스스로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주변에서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


정확히 누구에게서 시작된 이야기인지, 언제 들었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라는 말에서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많이 들어본 말이다.


아직도 수험기간 도중 여행을 다녀오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후, 또는 친구를 만나고 오면 시간에 쫓겨 공부를 한다. 쉬는 날을 없애거나 쉬는 시간을 줄인다. 하지만 여행도, 음악도 사치라고 느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스스로 여유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유이다. 그동안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과정에 있는 것들을 통제하고 포기하는 것은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결과가 어떤지에 따라 과정은 달리 평가될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다면 브런치 매거진 '어쩌다 장수생'은 성실함과 끈기의 성공스토리가 될 것이고, 결국 불합격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열심히 했지만 시험 머리가 없고 운이 나쁜 수험생의 안타까운 스토리가 될 것이다.


과정 그 자체를 봐주는 사람들도 있다.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계획성과 추진력이라던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끈기 등을 높게 평가해주기도 한다. 나도 결과와 상관없이 이 과정을, 그 안에 있는 내 노력을 가치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결과가 없는 과정, 결과와 무관한 과정이란 것이 있을까?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고 나의 관심도 계획성과 끈기가 있어서, 추진력이 강해서, ‘그래서 결국에 어떻게 됐는지'에 있다. 다시 말해 주된 관심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있다는 것이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이탈리아 아시시(Assisi). 이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과정에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하지만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내 인생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과정도 내 인생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수험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선생님이나 첨삭자에게 칭찬을 받거나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의 논리적 흐름이 명쾌하게 보일 때 성취감도 느끼고 공부하는 게 재밌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 많은 내용을 다 머릿속에 넣을 수 있을지 막막해하거나 혼자서 책과 씨름하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내가 열 살쯤 더 어려서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하더라도, 주변에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즐길 수 없을 것만 같다.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괴로운 탓도 있지만,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과정은 통제되어야 하므로 수험생활은 즐겁지 않다. 코로나로 시험에 지장이 있을까 봐 친한 친구 결혼식에서도 사람들을 피해 쫓기듯 나와야 했고, 미세먼지 없는 좋은 날씨를 창 너머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통제된 과정마저도 소중한 내 삶의 일부이므로,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과정에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단거리 달리기로 끝나길 바랬던 수험생활이 장거리 마라톤이 되었다. 결승선은 눈앞에 보이지 않고, 페이스 조절을 위하여 내 호흡에도 귀 기울여야 하고 바람의 저항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도 보인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유혹에 강한 사람인지, 어떤 상황을 힘들어하는지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느낀다.

그렇게 과정에 있는 것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새기고 싶다.

너를 보려 이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만나서 반가웠어. 작지만 강한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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