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
확진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오전부터 역학조사가 시작되었다.
증상이 있기 이틀 전부터 시간대별 이동 동선을 조사했고, 해당 장소에서 거리두기가 지켜지고 있었는지, 방문자 등록을 하였는지, 카드 결제를 하였는지 등등을 면밀하게 전화로 확인하였다. 역학조사를 하면서 미안한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 음식점은 오늘 당장 문을 닫겠지, 그 카페는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미안해서 또 갈 수 있을까… 그나마 나는 집에서 공부만 한 날들이 많아 역학조사를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출근해서 어떤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는지,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동료는 누구였는지 등등 확인할 것이 많아 역학조사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전날 밤 미리 카드 결제내역이나 카톡 대화 등을 확인하며 이동 동선을 정리해두지 않았다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나중에 생활치료센터에서 연락을 받으며 알게 됐지만, 역학조사관 선생님들은 확진자의 동선에 있는 곳의 모든 CCTV를 확인한다. 아마도 같은 음식점에 동일한 시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도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하여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초기 코로나 시국에서는 감염경로를 파악하여 확산을 예방하고자 하였다면, 올해에는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던 사람 중 추가 감염자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것 같았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어서 역학조사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으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감염경로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생활치료센터가 배정되어 오후에 이송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증상이 발현된 시기가 비슷하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므로 감염원이 같다고 보아 ‘가족실’에 함께 머물게 된다고 안내해주셨다. 아직 치료제도 나오지 않았고, 이후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그나마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었다.
가까이 사는 시부모님 댁에 보관해둔 여행용 캐리어를 아버님이 현관 앞으로 가져다주셨고, 칫솔이나 치약, 샴푸 등 필요한 생활용품은 온라인 주문을 통해 준비했다.
문자로 챙겨야 할 짐을 안내받기는 하였으나, 생활치료센터에 무엇이 구비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반입을 하게 되면 폐기해야 하는 물품에 대한 기준이 생활치료센터마다 달라서 짐을 챙기는 것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수험생인 나에게는 생활치료센터에 수험서를 가지고 가면 퇴소할 때 다시 가지고 나올 수 있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했는데,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없었다. 보건소에 전화로 문의하니 담당자분께서 확인을 한 후에 다시 전화를 주셨고, 다행히 책 표면을 소독하면 다시 가지고 나올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여행을 갈 때에도 준비물을 종이에 적어두고, 하나씩 소거하며 짐을 챙기는 편이다. 이번에도 나름 꼼꼼하게 짐을 싸면서 방석까지도 챙겼다. 그러나 입소 후에 생활치료센터에 헤어드라이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생활치료센터 지원팀 앞으로 배송하여 전달받을 수 있다고 하여 헤어드라이어를 주문했다. 그러나 식사시간에 함께 올라오는 택배 꾸러미에 헤어드라이어가 없었다. 전화로 물어보니 전선이 길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입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열흘 동안 금방 마르지 않는 머리 덕분에 늘 어깨가 축축하게 젖은 채로 공부를 하였다.
어떤 지역의 생활치료센터에는 헤어드라이어가 구비되어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집에서 챙겨간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기도 했다는 후기를 보았다.
요즘은 재택치료를 늘리고 있다고 하지만,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된다면 무엇이 구비되어 있고 반입이 안 되는 물품은 무엇인지, 퇴소 시 폐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여 짐을 챙기는 것이 좋다.
보건소 담당자분의 전화를 받고 캐리어를 들고 집 앞으로 나가니 구급차가 와 있었다. 구급차 안에는 방호복을 입은 운전기사 선생님과 보건소 담당자로 추정되는 선생님 한 분이 더 있었다.
큰길로 나가자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생활치료센터로 빠르게 이동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호텔(숙박시설)에 도착했고, 주차장에 대기 중인 선생님께서 우리 몸과 캐리어에 소독약을 뿌린 후 우리가 머물게 될 호실을 안내해주셨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목, 엘리베이터 안은 모두 비닐로 쌓여 있었다. 우리가 머물었던 14층에 도착하자 복도에 공기청정기 같은 기계가 무섭게 돌아가고 있었다.
1406호는 침대가 세 개, 화장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저 비좁은 화장대는 열흘 동안 책상이자 식탁으로 활용되었다. 방석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침대 위에는 새 이불과 베개가 올려져 있었고, 수건이나 치약, 칫솔, 비누, 휴지 등 각종 생활용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오전 10시와 오후 4시, 이렇게 두 차례 자가검진을 하였다.
혈압과 산소포화도, 체온 이렇게 세 가지를 잰 후 안내받은 어플에 입력하면 조금 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께 문진 전화가 왔다.
우리는 오후에 입소하였으므로 오후 4시에 자가검진을 하였고, 남편의 체온이 38도가 넘게 나오자 의사 선생님께서 전화로 체온을 다시 측정해보라고 하셨다. 두 번, 세 번 계속 재봐도 38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손등과 발등에 올라온 붉은 반점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방에 준비해둔 해열제를 바로 먹도록 하였고, 식사 시간에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올려준다고 하셨다.
해열제를 먹은 남편은 기운이 없는지 계속 잠을 잤다. 거의 한 시간 단위로 전화가 와서 중간중간 남편을 깨워 열을 쟀고,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해열제를 추가로 복용했다. 선생님께서는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남편과 떨어져 지낼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앞으로 어떤 증상이 얼마나 심각하게 발생할지 알 수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래서 선생님께 허락을 맡은 후 수건을 차가운 물에 적셔 이마나 팔, 다리 등 열이 나는 부위에 대주었다.
그래도 열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