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활 16
액체상태였던 물질은 온도가 높아지면 끓어서 기체 상태로 변하는 끓음(boiling) 현상을 보여준다. 주어진 압력 하에서 끓음 현상이 일어나는 온도를 ‘끓는점(boiling point)’이라고 한다(출처 : 물리학백과).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물질에 대하여 같은 강도의 열이 가해지면 매번 일정한 시간이 지났을 때 액체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하지만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 종종 예측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1분 30초 동안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졌던 우유가 어느 날은 보글보글 끓다가 컵에서 넘친다. 넘쳐버린 우유를 닦고 있을 때면 묘한 배신감이 들고 화가 난다.
“수험 생활하다가 성질이 나빠진 것 같아요. 사소한 일에도 자꾸 화가 나요. 참을 수가 없어요.”
가끔 수험생들이 다음 카페에 위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린다. 그 글에 달리는 댓글은 대부분 ‘공감’의 댓글이다. 누가누가 더 성질이 나빠졌는지 가리는 대회라도 열린 듯이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고, 또 서로를 위로한다.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도 화나는 일이 많아졌다. 화가 난다는 것은 타인을 향한 감정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서운함과 짜증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층간소음에 시달릴 때에는 위층 베짱이에게 화가 났고, 처음 써보는 논점도 아닌데 시원하게 논점 일탈해서 딴소리를 하고 있는 내 답안지에 화가 났다. 벌써 서른몇 번이나 보낸 생일에는 나 조차도 공부를 하며 특별할 것 없이 보내 놓고(학생 때는 항상 중간고사 기간 중에 생일이 껴있었다.) 까맣게 내 생일을 잊은 친구에게 서운했다. 1차 시험을 본 날, 친구 청첩장 모임에 갈지 망설이는 남편에게 다녀오라고 해놓고서 너무 늦게 돌아왔다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층간소음은 아파트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건가? 틀리지 않던 문제를 논점 일탈을 한 것을 보면 애초부터 시험에 대처할 능력 자체가 부족한 게 아닐까? 다 각자 사정이 있고 바쁠 텐데 별것도 아닌 걸로 속 좁게 서운해하나? 나 때문에 친구도 마음 편히 만나지 못하는 남편인데 내가 심했나? 계속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다 결국 ‘내가 잘못한 것 같다.’는 결론으로 모인다.
하지만 내 마음의 끓는점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가볍게 상황을 넘기거나 조금 더 참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하하호호 웃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보면 역시 아니다. 여전히 화가 날 것 같다.
나의 환경이 끓는점에 도달 시간을 더 짧게 만들었을 뿐이다. 화가 날만 한 일이니 화가 났을 뿐이다.
사람은 저마다 끓는점이 다르다. 어떤 이는 행인이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어떤 이는 길에서 걷다가 행인이 부주의하게 어깨를 부딪혀도 본인이 먼저 사과를 한다.
그리고 그 끓는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액체는 압력이 변하지 않으면 동일한 온도에서 끓기 시작한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우유가 평소보다 빨리 끓었던 이유는 끓는점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주변 온도가 높아서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전 이미 우유의 온도가 평소보다 높아졌다는 등 다른 환경요인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역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끓는점이 바뀌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쉽지 않다.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야 끓는점이 높은, 평정심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에는 가끔 결혼식에서 교수님께서 해주신 주례사가 생각난다.
“감정이 넘쳐흐를 때에는 그저 강물처럼 흘려보내면 됩니다.”
결혼식은 3월이었는데, 오전부터 비가 쏟아지다가 나중엔 우박까지 떨어졌다. 원래 준비한 주례사가 있었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변덕스러운 우박, 그리고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주례사를 즉석에서 바꾸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감정을 혼자 가슴에만 담아두지 말고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나누라는 말씀으로 이해했다. 특히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두지 말고 강물처럼 잘 흘려보내라는 말씀으로.
하지만 그 말씀은 부부간의 감정에 국한된 주례사가 아니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감정 속에 깊이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 시작이 가벼운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한번 빠져들면 금방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감정. 사랑에 빠지면 가만히 있어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올 때가 있는 반면에, 아침에 놓친 지하철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며 하루 종일 우울할 때도 있다.
특히 혼자서 계속 감정을 곱씹다 보면 왜 이런 감정이 시작됐는지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 감정 자체에 빠지게 된다. 나 역시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두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잊혀지고 ‘자책’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부정적인 감정이 이어진다. 그렇게 깊이 빠져든다.
‘아, 이래서 감정을 강물처럼 흘려보내라고 하셨구나.’
결혼식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쳤다. 그리고 신부 입장과 함께 정면에 있던 유리창의 커튼이 열리자 환한 햇살이 결혼식장 안으로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우박으로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다던 친구들이 우산을 버리고 가도 되겠다고 웃어 보이자 하객분들에게 죄송했던 내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 마음속에 내리는 비도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나면 다시 해가 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