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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Aug 13. 2016

<인생 역전은 없다-1>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기를.

막연하게 아주 어려서부터 대학을 졸업한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최종 합격하는 날, 

금의환향을 하듯 

회사 사원증을 들고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가 얼싸안고. 

내 딸 기특하다며 등을 토닥이는 엄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나는 짓궂게 모른 척할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방황, 일탈, 비행과는 거리가 먼 바른 남자를 만나 

깨소금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딱히 불행하다고 할 것도 없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많아진 나이만큼 강단이 생겨줘서 웬만한 생채기에는 아픔도 느끼지 않고, 

웬만한 아픔은 훌훌 털어내고 살게 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상상 속의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예전보다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또다시 따돌림을 당한다 한들 지질하게 구석에 박혀 울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변태도 쌔하게 째려볼 수 있다. 


아등바등. 

이 단어 말고는 내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살고 싶던 스무 살의 나는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멋진 이십대를 꿈꿨다. 


악착 같이 살아냈고 

그 덕에 가끔은 희미하게 고지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가족이라는 멍에가 나를 옭아맸다.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인생이 비극이었다. 

돈이 없다는 건 너무 큰 죄악이어서 

나는 기억할 보통의 일상이라는 것이 없다. 


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날, 

삼삼오오 친구들의 손을 잡고 

분식집에 가서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시켜놓고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노래를 불러 젖히는 시간을 나는 알지 못했다. 


시험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에도 나는 돈이 없었다. 


친구들과 밥을 사 먹을 단 5000원이 없어서 

도망치듯 교실문을 빠져나왔다. 

나는 교복이 제일 편해서 1년 365일 교복만 입고 다니는 

멋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모범생이었고, 

이리저리 학원을 몰려다니는 친구들 틈에 끼지 못하고 

잘난 것 하나 없는 주제에 교과서대로 공부를 해야 하는 갑갑한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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