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요?”
“아, 춥다. 대충 가까운 데로 가죠. 저기 치킨집 있다. 저기 가요.”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혹시나 아무도 없는 곳에 데려가서 두들겨 패면 어쩌나 걱정을 조금 하고 있었다.
'요즘 묻지마 범죄가 많다던데...'
내가 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던 건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었던 참이다.
치킨집은
사람이 별로 없었고, 많이 따뜻했다.
1평짜리 고시원 방보다 훨씬 아늑했다.
“이모, 치킨 한 마리하고 생맥 두 잔이요.”
익숙하게 주문을 하더니 앞에 앉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얼마나 울었나 엄청 부었어요. 아하하하. 뭐야 눈이 없어. 코도 부었네? 아니 원래 코도 붓고 그래요? 아주 동그랗네.”
남자가 나를 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맥이 탁 풀렸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고모부라는 남자가 집에 커다란 과자 상자를 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사업을 벌여 꽤 성공했다는 이 남자는
앉기도 서기도 애매한 우리 집 거실에 민망한 듯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먼지투성이가 돼 집에 들어가자
그 남자는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오, 너 왔구나.”
엄마는 쭈뼛거리는 내 등을 앞으로 밀면서 인사를 드리라고 강요했다.
“안녕하세요.”
엄마는 집에 대접할 만한 게 없다며 슈퍼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비웠다.
그 성공한 사업가 아저씨와 나,
대치하듯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니네 부모도 참 대책이 없다. 여자애를 이 꼴을 하고 돌아다니게 하니. 키우지를 못할 거면 낳지를 말든가. 바퀴벌레 새끼 까듯이 마구잡이로 자식 새끼를 싸질러 놓고 뭐 어쩌자는 건지.”
혀를 끌끌 찬 남자는 지갑을 꺼내
5만원 몇 장을 내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엄마가 들어오면 잘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인사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억지로 돈을 받아들고
나는 안녕히 가시라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5분이 지나서야 엄마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고모부는?”
“몰라. 갔어.”
“가셨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5만원권을 바닥에 홱 집어 던졌다.
“그 아저씨 뭔데?”
엄마는 내 목소리가 안 들린 건지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섬주섬 주워서는 많이도 주고 가셨다고 말했다.
그 남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엄마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이 남자도 다른 어른들처럼 인심 쓰듯
내 앞에 과자 한 봉지를 던져놓고
상상도 못할 수치스러운 말들로 내 귓구멍을 난도질 할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데리고 온 거구나 싶었다.
“나쁜...”
“엥? 저요?”
“네, 너요. 그게 우는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린가 싶네요. 뭐 얼마나 잘났는데요? 아, 그런 거 난 관심도 없고. 그래, 고시원에서 운 건 내가 미안하다. 벽이 얇아서 무슨 일인지도 다 안다면서요. 난 또 세상에 이런 귀인이 있나 했네. 이렇게 못돼 처먹게 사람 깔고 뭉개면서 놀려야 기분이 좋겠어요? 아니지. 돈 많아요? 나한테 이런 거 사주면서 낄낄 거릴 정도로 여유가 있나?”
“저기....”
“왜? 뭐요?”
“말을 높이려면 높이고 낮추려면 낮추고. 어지럽잖아요...음,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너보다 나이는 많을 걸?”
“...네?”
마침 맥주가 나왔다. 잘됐다. 마구 들이켰다.
갑자기 옆방 남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왜 이래. 천천히 마셔. 목 엄청 따가울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