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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Aug 17. 2016

<인생 역전은 없다-8>

나는 잔을 내려놓고 옆방 남자를 한참 째려봤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옆방 남자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그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자가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고마운 사람이지.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위로해주겠다고, 이 맛있는 치킨에 맥주까지 사주고 있다.

내가 뭐라고.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가 벌인 잔치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누구를 원망해야할지 모르겠는 분노를 활활 태우느라

마음이 번잡했다.


운명처럼, 또는 공교롭게도

이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고 보면 착한 사람이다.  

딱히 모자라 보이지도 않는데

저러고 헤헤 거리면서 앉아있다.


생각이 마무리되자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꿈뻑.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동생,

가느다랗게 신음 소리를 내며 누워있을 엄마,

어딘가에서 천원이라도 벌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을 아빠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갔다.

 

“너도 참.”

그가 휴지를 서너 장 슥슥 뽑아내 얼굴 앞에 가져다 댔다.

휙 낚아채서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 근데 아직 학생이긴 해. 이름은 안희윤이고, 학교는 서울대학교. 군대 갔다 와서 작년에 복학했고 이제 3학년 2학기. 아직 1년이나 남았다. 으아.”


남자가 지루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아아, 내가 재수했거든. 너 24살이잖아. 난 26살이거든.”


미안하지만 안 궁금했다.

물어볼 생각도 없었다.


“말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좀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아냐. 덕분에 말 한 마디 걸어보고 좋지. 힘든 일 있으면 말해. 이 정도는 언제든 사줄 수 있어.”
“학생이라면서요. 돈 있어요?”
“돈? 그냥 용돈 받기도 하고 과외도 하고 그래서 웬만큼.”
“뭐, 서울대학교면 과외도 많이 들어오겠네요........그럼..괜찮으시다니까.. 죄송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사주세요. 나중에 갚을게요. 전 친구도 없고...에이 이런 얘기는 됐고 종종 부탁드릴게요. 너무 귀찮게 하지는 않을게요.”


나도 모르게 24년을 묵혀뒀던 뻔뻔함이 흘러 나왔다.


치킨이 나왔다.

울고 나서인지 배가 고팠다.

매일 삼각김밥 하나로 저녁을 때웠는데

뜨거운 기름이 흘러나오는 치킨을 베어물자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서 배가 터질 때까지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기분이 좋았다.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실실 웃음을 흘리면서 술을 마시고 치킨을 먹었다.


불과 30분 전에 했던 고민이 꿈이었던 것처럼,

기적처럼 눈 앞에 나타난 귀인의 등장에 놀라워 하면서.


시간은 금세 흘러서 새벽이 돼 있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은 좀 풀렸어?”


옆방 남자의 말이 너무 다정해서

주워 담았던 눈물이 또 흘러 나왔다.


‘그 정도 울었으면 됐다. 더 울면 못난이다.’고

혼잣말을 하며

빠른 속도로 앞장서서 걸었다.

대충 뒤짚어 쓰고 나온 파카에 손을 쿡 찔러 넣은 채로.


뒤에서 옆방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왔다.


내가 뒤를 채 돌기도 전에 그 남자의 팔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보통 우리 나이면 우는 모습을 감추려고 하지 않아. 가끔은 오히려 보여주려고 하지.”

나를 길 한 복판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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