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 Aug 21. 2016

<인생 역전은 없다-9>

“왠지 알아? 내가 울고 있다. 내가 힘들다. 내가 매우 깊이 상심했다 같은 생각이 나를 비극의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게 하거든.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그런 착각을 하게 해. 그리고 그런 착각은 좀 더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고 말이야. 그런 작용을 통해서 조금 더 멋있게, 있어보이게 살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는 거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옆방 남자의 말을

다 주워담지 못해서

나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그 남자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까 울고 싶을 때는 나를 부르라고, 내 앞에서 울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어.”

과격하게 내 손목을 틀어잡았던 것과 달리

다정한 말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지이이이잉’.

알람을 맞춰 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다시 일상이다.


벌써 6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내 일상은 여전히 팍팍했다.


동생은 졸린 눈으로 주린 배를 끌어안고

교실에 앉아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는 몸이 부서져라 움직이지만

돈은 벌리지 않는

경제성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며

한 달 생활비를 걱정할 것이다.


그나마 6개월 인턴 후 정직원으로 업그레이드된

나는 180만원 짜리 인생이다.


온종일 회사 일에 매달리지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180만원 짜리다.


매달 월급날이 되면

나는 실감나지 않는 180만원 때문에 입이 벌어졌다가도

기다렸다는 듯 걸려오는 가족들의 전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남은 110만원.

생활비로 40만원을 두고 나머지는 비상금이었다.

가족들에게 매달 전달이 돼야 할 비상금. 


참 서글프게도

나는 비상금이 찍힌 통장을 들여다보며 기분 전환을 했다.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절박하게 내 것이었으면 했다.

이 돈은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내 것이길 바랐다.


고맙게도 (또는 불안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밤만 되면 걸려오던 엄마의 전화가 뜸해졌다.

가족들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 뻔한 사정이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모른 척했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비상금으로 모았던 돈,

그토록 바라던 돈이 1년이 지나자 제법 두둑히 쌓였다.


840만.

내 평생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돈이.

이건 기적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 역전은 없다-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