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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Mar 10. 2016

여행 중입니다(5)

앞으로 3일 간 묵을 방은 단출했다. 2층 침대 2개가 방을 채우고 있었고, 낡은 나무로 짜여진 사물함이 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날개가 세 개 달린 팬이 천장에 달려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휴게실과 마찬가지로 탈탈탈 소리를 내면서 게으르게 바람을 내고 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창문으로 샌디에고의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쬈다. 조금 열려 있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며 커튼 끝자락을 풀썩였다. 상쾌한 바람이, 격렬한 햇살을 나무라듯 불고 있었다. 이 바람은 마치 여행자에게 보내는 초대장 같기도 했다. 얼른 나오라고, 해가 지기 전에 나와 샌디에고를 즐기라고. 


눈을 감고 아무도 없는 방 한가운데 서서 여유를 느꼈다.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평화로움이었다. 나는 캐리어를 사물함에 통째로 집어넣은 후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침대에 누웠다. 털썩 주저앉자 먼지가 풀썩 떠올랐다. 햇빛 때문에 허공에 떠오른 먼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혼자 있는 방은 매우 편했고 나른했다. 그러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깼을 때는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창문 틈새로 향을 피우듯 건조한 가을 향을 담은 바람이 피어오르며 샌디에고의 밤이 무르익었다고 알려줬다. 오늘 호스텔은 밤 늦게까지 왁자지껄했다.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마가리타 파티가 열린다더니 역시 친화력 좋은 외국인들은 호스텔 4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머! 왜 여기 있어. 오늘은 파티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줬지만 나는 너무 당황해서 웃어 보일 여유도 찾지 못했다. 차라리 며칠 전에 검찰 조사로 해쓱해진 회사 대표를 앉혀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한 편이 백 배는 편안했던 것 같았다. 이런 낯선 분위기에 조금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도 고개를 푹 숙였다. 또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불상사는 막아야했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왜 파티에 안 와? 저녁은 먹었어?”


로웬이다.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목소리를 들은 것은 더더욱 아니고, 한글도 아니고 영어로 된 문자 한 통이었는데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배고파! 그렇지만 파티는 힘들어. 그냥 여기에 있을래.”
“나 휴게실이야. 나가서 맥주 한 잔 하자. 나도 좀 조용한 데 있고 싶거든.”
“그럼 10분만! 아니 5분.”


본격적으로 자려던 계획이 틀어졌지만 잠이야 나중에 자도 되는 문제였다. 빼놨던 콘택트렌즈를 씻어 눈에 넣었다. 스킨, 로션을 바르고, 이번엔 파운데이션도 조금 펴 발랐다. 가방 바닥에 깔려있던 틴트도 꺼내 입술에 톡톡 두드렸다. 혹시 빼놓고 나가는 것이 없는지 빈 방을 한 번 둘러본 후, 휴대전화, 지갑을 챙겨 방을 나섰다. 


로웬이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후드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앳된 모습이었다. 로웬은 호스텔에 머무는 외국인들과 비교하면 체구가 오히려 좀 작은 편이었다. 키도 나보다 조금 컸을 뿐 특별히 크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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