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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Mar 13. 2016

여행 중입니다(7)

가게 앞에는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가로등이 하나 있었다. 지지직 소리를 내면서 불안하게 떨리던 불빛 아래서 나는 로웬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바다가 보일거야.”

로웬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바다라니?”
“눈이 파란색이거든. 전에는 사람들이 나한테 컬러렌즈 꼈냐고 많이 물어봤어.”

로웬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자신의 눈 색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난 웃음을 터뜨렸으면서도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파란 눈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세 잔이나 마신 맥주의 취기 때문인지, 정말 하늘 같기도 바다 같기도 한 로웬의 눈빛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좋아서 나는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로웬의 속눈썹은 길었고, 코는 높았고, 눈빛은 깊었다.

 

“이렇게 가까이 오면 제대로 볼 수 없잖아.”

로웬이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내일 뭐 할 거야? 계획 없으면 같이 움직일래?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고마운 제안이었다. 


“그럼 아침에 키친룸에서 만나.”

나는 로웬에게서 떨어져 앞서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진 샌디에고의 밤거리는 연출된 영화 세트장처럼 깔끔하고 조용했다. 낮에 봤던 노숙인 두서넛이 건물 모퉁이에 모여앉아 있었다. 낡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채 잠든 사람도 있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는 막연한 설렘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로웬과 걷는 밤 거리는 로맨틱했지만, 바닥에 앉아 우릴 올려다보는 이들의 시선은 낭만과 거리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이 때 로웬이 내 허리에 손을 넣더니 자기 몸 쪽으로 붙여 세웠다.


“이 편이 좀 낫지?”

놀란 표정을 짓는 나를 봤으면서도, 로웬은 눈 한 쪽을 찡긋해 보이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앞을 보고 걸었다. 나는 그런 로웬의 옆모습이 좋아서 또 한참을 쳐다보며 걸었다. 


“내일 또 보겠네.” 

우린 숙소 앞에서 다섯 번 쯤 인사를 한 후에야 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방문이 흔들렸다. 어젯밤 인사를 나눴던 룸메이트들은 이미 체크아웃을 한 상태였다. 



지난 밤, 새벽 1시가 넘어 들어왔지만 방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덩그러니 큰 가방들만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돌아와서야 가방 주인들과 만날 수 있었다. 시간과는 무관하게 시끌벅적하고 에너지 넘치는 첫 인사가 시작됐다. 세미나 참석을 겸해 샌디에고에 놀러온 미국인 2명, 배낭여행 중인 캐나다인 1명 이렇게 3명이 룸메이트였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휴가 중이고, 3일 뒤에는 아니, 이제 2일이구나. 2일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거야. 음,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혹시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

손을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배낭여행 중인 캐나다인이 아는 척을 해줬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한국인 친구는 많아. 물론 한국에 가본 적도 없지만.”

30분 쯤 선 채로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정말 잘 준비를 해야 했다. 세미나를 위해 늦어도 오전 6시 반에는 호스텔을 나가야 하는 두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새벽에 나가야 되거든. 그래서 지금 작별인사를 해야만 해. 만나서 기뻤고 남은 시간 좋은 여행하길 바랄게.”

보통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최대의 호감을 전하며 대화를 나눴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전 말한 대로 룸메이트들은 해가 뜨자마자 이 곳을 떠난 듯 했다.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니 휑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저 요란스러운 노크에 대답을 해줘야했다. 


“누구세요?” 

서툰 영어를 웅얼거리며 방문을 열었더니, 외출 준비를 마친 로웬이 반가운 눈빛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로웬이 큰 소리로 웃었다.

“나 키친룸에 가 있을게. 준비하고 내려와.”


나는 30분쯤이 지나서 외출 준비를 마쳤다. 로웬은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으로 샌디에고 관광지를 찾아보고 있었다. 

“미안. 피곤했나봐.”


로웬은 나를 보자마자 오늘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피곤한 마음에, 밤 기운에, 술 기운에, 그리고 타지의 낯선 기운에 덜컥 외국 남자와 동행하기로 결심한 나의 성급함 때문에 그가 간 밤의 약속을 잊었길 바랐다. 솔직히는 그가 가자고 하면 내 쪽에서 선을 긋는 방법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로웬은 아침부터 내 방문을 두드렸고, 나는 또 기다렸다는 듯이 그와 함께 할 하루에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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