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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 Aug 02. 2018

자신의 삶에 언제나 열정적인 그녀

치앙마이 코워킹 스페이스 호스트 Pim과의 저녁


누군가의 이야기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책 속의 한 구절에서, 영화 속 대사에서, 강연자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 속에서 울림을 주는 순간을 만난다. 치앙마이에서 지내던 어느 날,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치앙마이에서 코워킹 스페이스 Addicted to work를 운영하는 Pim(핌)과의 대화였다. 내게 울림을 주었던 그 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도착하자 마자 아이스커피를 마실 생각으로 코워킹 스페이스의 문을 열었다. 여느 날처럼 커피를 주문하려는 내게, 핌은 특별히 맛있는 두유가 있다며 권했다. 그래서 두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핌은 소이라떼를 갖다 주면서, 내 자리에 작은 꽃병도 함께 놓아주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길에서 꺾어온 꽃이라고 하였다. 언젠가 읽었던 치앙마이 에세이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태국은 길에서 꽃을 조금씩 꺾어와서 집에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꽃이 지천에 널려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글로 읽었던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하니 새삼 신기했다. 




© Addicted to work

덕분에 산뜻한 기분으로 오후를 보내고, 다른 코워커들이 일찍 떠나서 한적해진 저녁. 핌이 내게 저녁밥을 만들어주겠다며 요리를 하러 부엌에 들어갔다. 


핌은 곧 밥과 간단한 찬거리를 부쳐 오면서, 김치도 함께 내왔다. 태국에서 태국인이 차린 저녁에 김치가 나오다니! 그래서 의아하고 신기한 마음에, 김치를 어디에서 구했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더 놀랍게도 직접 만든 김치라고 했다. 태국에서 한국음식은 비싸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것을 따라서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터라 김치를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핌이 만든 김치는 달달했다. 설탕을 좋아해서 김치를 만들 때 설탕을 많이 넣었다고. 태국인들은 대체로 설탕을 좋아해서, 커피도 달달하게 마시고 음식에도 설탕을 자주 곁들인다. 설탕이 잔뜩 들어간 김치는 태국 사람다운 레시피인 셈이다.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핌은 내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핌은 통계학을 배웠고, 슈퍼컴퓨터를 다루었으며, 코딩을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래서 젊을 때는 코딩으로 게임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그런데 너무 열심히 일해서인지 몹시 아프게 됐다고. 그래서 그 일을 그만 둔 것이 30대 즈음이었다고 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난 이후에는 커피에 푹 빠져서 베트남, 라오스 등에 커피를 배우러 갔고, 태국에 돌아와서 베트남음식과 커피를 파는 레스토랑을 운영했다고 했다. 근데 또 너무 열심히 일해서인지 다시 아프게 됐다고 하였다. 그래서 베트남 레스토랑도 그만 두고, 이제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커피를 좋아해서 라오스에 커피 농장을 가지고 있으며, 치앙마이 외곽에서 원두를 로스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기도 한다고. 그 원두는 Addicted to love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데, 동명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주문하면 배송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Addicted to work의 한 쪽 구석에는 포장된 원두 봉지가 쌓여 있다. 


Addicted to work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녀가 원두의 생산부터 가공, 추출까지 공정의 전 과정을 신경 쓴 커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핌이 내려주는 커피는 매우 맛있다.  


© Pim Noah
그녀를 설명하는 세 단어 
Coding, Vietnam restaurant, Coffee lover 


Addicted to Love 원두 © Addicted to work

그녀의 커피에 대한 열정을 들으니 문득 이곳이 카페인지 코워킹 스페이스인지 궁금해졌다. 그런 나의 질문에 핌은 Addicted to work는 코워킹 스페이스이며,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만들 때 시끄럽지 않은 음료만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믹서를 써야하는 스무디는 메뉴에 넣지 않았다고. 


© Addicted to work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심하게 공간과 고객을 신경 쓰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Addicted to work를 찾는 고객에게 핌은 일하기 좋은 자리를 알려주고, 햇살이 드리우는 오후에는 천으로 창을 가려 적절한 업무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때때로 인터넷이 말썽일 땐 양해를 구하곤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태국에서 지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조언을 하기도 하는, 영락없는 코워킹 스페이스 운영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요리를 즐기는 그녀는 이따금 고객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자리를 마련한다. 다만, 그녀가 언제 요리를 할지는 그녀 마음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물론 커피도 좋아해서 고객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 그녀의 페이스북 피드에는 커피나 원두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어느 날은 커피 농장에 다녀오겠다며 드넓은 커피 밭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핌이 만든 요리 © Pim Noah
커피 밭 © Pim Noah


It is life. 이게 인생이란다. 


그녀가 병원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30대 초반. 그런데 4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인생은 지속되고 있다. 그녀가 살아온 삶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삶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열정적이다.  


Addicted to work라는 이름은 마치 자신에 삶에 언제나 열정적인 그녀의 인생을 말하는 듯하다. 그녀의 애정이 담긴 커피와 일에 열정적인 사람들, 의욕을 북돋아주는 문장들이 있는 이 소박한 공간은 자신의 삶에 늘 열정적인 그녀를 닮은 공간이다. 



Addicted to work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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