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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ul 31. 2021

누군가의 선의와 배려로 여름의
온도는 조금 낮아진다

폭염경보 재난문자가 계속 울리는 오후,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카페의 작은 테라스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달구고 입속의 시원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도 여름 열기를 느끼며 시원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는 즐거움이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데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장갑까지 단단히 끼고 호스를 길게 꺼낸다. “할아버지, 뭐하세요?” 묻는 아이에게 “보면 모르냐?” 할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답한다. 동네 꼬마는 그저 묵묵하게 꼬인 호스의 매듭을 풀며 할아버지를 돕는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건물 앞에 호스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발 언저리에 튀는 물방울이 성가시지만 할아버지가 뿌린 물 덕분에 바닥의 열기가 식어 바람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절로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넨다. “물 뿌려서 진짜 시원해요, 감사합니다.” 아이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할아버지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봤지? 방금 사람들이 나 멋지다고 한 거?”


나도 용기를 내 인사를 건넸다. “정말 시원해요, 할아버님!” “그래요? 나는 물 튈까 봐 조심해서 뿌렸어.” “시간 내서 애써주신 덕분에 많은 분들이 시원하게 거리를 지나가겠어요.” 칭찬에 머쓱해진 할아버지는 답했다. “수도세 얼마 안 나와!” 멋쩍은 할아버지에 인사에 퉁명스럽게만 느껴졌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도 할아버지의 장난 어린 물줄기를 피해 신이 나고 지나가던 아이들은 물웅덩이에 나뭇가지 놀이를 시작한다. 누군가의 선의와 배려로 여름의 온도는 조금 낮아진다. 내가 그 순간을 감사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할아버지는 물이 마르면 또 뿌려야지 하며 호스를 끌고 거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할아버지가 뿌린 물방울의 씨앗을 홀로 바라보며 시원한 커피를 더 시원하게 마셨다. 


가끔은 책 보다 삶에서 배우는 지혜가 더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귀에 꽂던 단절의 이어폰을 빼고 책을 덮었다. 오늘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나는 어떤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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