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은 그릇은 좀 치우고 가면 안 돼?” 며칠 동안 고민하다 남편에게 말했다. “이거 나보고 치우라고 식탁 위에 두고 가는 거야?”라는 날카로운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몸을 움직이는 게 편하다. 아이가 아무렇게나 화장실 슬리퍼를 욕조에 던져 놓아도, 남편의 소변 자국이 변기에 노랗게 묻어있어도 짜증은 나지만 가지런히 정리하고 깨끗하게 물을 뿌려 놓는다. 그게 주부의 역할이고 나의 노동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 것은 한 권의 그림책 덕분이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불만이 있어요》는 어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에 대해 아이가 질문을 던진다. ‘어른들은 늦게 자면서 왜 아이들은 일찍 자야 하는지’, ‘왜 동생이 잘못했는데 나만 야단을 치는지’, ‘왜 먹기 싫은 완두콩을 먹어야 하는지’와 같이 어른들이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질문에 아이는 단단히 화가 났다. ‘불만을 모두 얘기해서 어른들이 얄미운 짓을 못하게 하겠다는’ 아이의 불끈 쥔 주먹을 보자 나도 불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알았어하고 다음날부터 그릇을 치우고 출근했다. 그제야 얼굴을 찌푸리며 남은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하던 나의 마음도 깨끗하게 개수대 안으로 흘려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만을 이야기하고 나니 상대방도 불만이 있지 않을까 곰곰 생각하게 된다. 내 모습이 항상 모자람 없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닐 텐데, 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한 순간도 종종 있지 않을까.
혼자 이런저런 덧없는 상념에 빠져들고 있을 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는 나하고 놀고 싶지 않은 거지?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엄마는 맨날 피곤해하고 잠만 자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 아이의 쏟아지는 불만에 나는 피식 웃고 만다. 앞뒤 재지 않고 느끼는 대로 감정을 전하는 아이는 불만도 사랑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지, 괜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토로하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전달한다. 그제야 나는 깨닫는다. 그래! 내가 느끼는 대로 좋은 감정, 나쁜 감정 다 표현하는 게 뭐 어때서! 불만이 있으면 너도 이야기해! 너의 불만 나의 불만 참지 말고 우리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
그러나 나는 오늘도 시원하게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다. 생각만으로 사람은 쉽지 변하지 않는 법, 나는 오늘도 변기에 물을 뿌리고 아이의 슬리퍼를 가지런히 정리해둔다. 언젠가는 내 불만을 시원해서 쏟아버리리라 다짐하지만 오늘도 불만을 차곡차곡 마음에 쌓는다.
“엄마, 엄마는 왜 나보다 맛있는 거 많이 먹는 거야? 어린이가 작다고 맛있는 거 적게 먹으라는 법 있어?” 오늘도 있는 그대로 불만을 쏟아내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엄마도 불만이 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 이야기할 거야. 하지만 오늘은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