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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Oct 25. 2021

아픈 것에 도전하며 달리지 마세요

달리기를 일주일을 쉬었는데도 무릎 통증이 계속되어서 한의원을 찾았다. “저 러닝을 하고 있는데요, 무릎이 계속 아파서 왔어요.” 선생님은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얼마나 뛰는지 묻고는 무릎 상태를 살펴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참다가 병원에 왔나 생각했는데 이러다 앞으로 달리기마저 못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당분간은 뛰지 말고 꾸준히 치료를 받으라는 말과 함께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무릎은 한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도 같이 아파요. 한 번 다치면 쉽게 재발하고 한 번 망가지면 다시 복구도 되지 않으니 잘 관리해야 해요. 무릎이 안 좋으면 절대 뒤꿈치로 착지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라고 물었다.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는데 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열심히 달릴 줄만 알았지 올바르게 달리는 방법이나 아플 때 제때 병원에 가는 것은 이렇게 게을렀다니. 슬프게도 런데이, 나이키 앱에서 달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고 아직 포기하지 말라는 알림이 왔다. 나도 달리고 싶다고요.


당분간은 달리지 못할 것 같아서 묵혀두었던 달리기 책을 펼쳤다. 언젠가 제목만 보고 홀리듯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두께가 있는 책이라 미루고 미뤄왔던 책이다. 한동안 달리지도 못할 텐데 책이라도 읽어야지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헌사부터 감탄하며 밑줄을 그었다.


‘운동화 한 켤레 후다닥 신고 문밖으로 달려 나가면, 당신이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자유.’

- 존 제롬 (미국 작가)


으아악! 나도 자유를 찾아서 달리고 싶어서 현기증이 날 것 같다고요. 아픈 무릎을 매만지며 책을 계속 읽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까 무릎 통증에 관해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무릎 강화 운동도 찾아보지만 우선은 치료가 우선인 것 같아 그마저도 그만둔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여성이 2.4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는 달리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여성 마라톤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40년 전인 1984년부터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그저 집에 있으면서 쿠키나 굽고 아기나 낳는 존재’였던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 달리기를 시작하며 여성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역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억압과 통제의 벽을 깨트리고 달렸던 여성들의 이름을 알아간다. 그녀들의 달리기는 정확한 기록이나 이름조차 누락되어 있었다. 자신의 두 발로 달리는 것조차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그녀들이 왜 이토록 달렸는가를 쫓아가며 작가는 자신에게 달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다. 여성은 건강을 위해서도,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아닌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달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선생님, 저 언제쯤 다시 달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다. 한여름의 열기를 느끼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계절은 가을을 넘어 겨울의 추위까지 느껴진다. 오늘은 용기 내서 선생님한테 물어봐야지 생각하는 찰나 선생님이 나의 마음을 간파하듯 이야기를 건넨다. “아픈 것에 도전하며 달리지 마세요.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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