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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an 09. 2022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 제니 오델》


P.27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절반은 우리의 관심을 도구화하는 디지털 세계의 관심경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다른 무언가에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그 ‘다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실제 세계의 시간과 공간이며, 시공간에 다시 연결되는 것은 우리가 그곳에서 서로 관심을 가지고 만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종종 집에서 와이파이 연결을 끊어놓는다. 휴식이라는 핑계로 SNS 새로 고침만 누르는 내가 한심해질 때, 해사한 아이의 얼굴보다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나와 남편의 모습을 발견할 때 무거운 마음으로 인터넷 연결을 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힘들다. 우리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꾸준히 무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저 즐거움을 위해서다. 


2022년 첫 책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었다. 아이가 겨울방학이라 몸도 마음도 피로가 쌓였는지 책을 읽으면서 계속 졸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글은 아니었지만 속도감 있지는 않아 읽는 시간이 꽤 걸렸다.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지만 수도 없이 밑줄을 그어 형광펜 하나를 다 써버릴 정도였다. 책을 읽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봤고 산책을 하다 좋아하는 나무 옆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졸리면 자고 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을 마주 앉아 이야기할 시간은 부족해도 안부와 다정한 말을 건네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작가의 글이 자주 떠올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을 기울이는 일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내가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작가는 말한다. 내가 어떤 감각을 느끼며 삶을 살아갈지, 나와 이웃을 위해,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대하며 참여하라고 독려한다. 내가 아무리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질 때도 세상의 어느 한구석에는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 나의 관심과 참여를 기꺼이 받아줄 장소가 있다는 명백한 진리를 말해준다. 문제는 나의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자 집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나의 존재를 확장하는 일이다.


책을 읽고 나서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에 대해 좀 더 찾아보고 싶어졌다. 사진을 더 열심히 찍고 공부도 좀 더 해보고 싶다. 라이카 카메라가 사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적금을 드는 게 빠를까 로또를 사는 게 빠를까 고민하다 라이카 카메라 주제인 잡지 한 권만 샀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책을 읽으면 뭐하나 마지막은 항상 쇼핑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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