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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Feb 06. 2022

영원의 만남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은 무얼 말하는 걸까. 그런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p.31


아빠의 죽음 이후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책장에 있는 책을 하나둘 꺼내도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슬픔과 애도라는 감정아래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들곤 했다. 가끔씩 시집을 들추어보고 신문을 읽었지만 무거운 돌덩이를 안은 것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내려놓고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이것은 슬픔일까. 애도일까. 연민일까. 그냥 가만히 그 느낌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하늘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새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걷다보면 살아있는 것들이 보였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봄을 준비하는 겨울눈이 보였고, 사람들의 힘찬 발걸음을 바라봤고, 햇살 아래 포근하게 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지켜봤다. 아빠가 떠오르면 울다가 또 친구들 얼굴을 보고 웃었고 아이와 남편을 더 많이 껴안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책이 있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그리고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란 책이다. 《애도일기》는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3년간 쓴 일기이고 이 책의 번역자인 김진영 작가가 쓴 《아침의 피아노》는 자신의 암투병과 죽음 앞에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책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두 작가의 글을 나란히 읽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책속에서 찾으며 아빠를 다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을 기록하기 시작했던 2002년부터 아빠의 사진을 정리하며 인화할 사진을 고르고 짧은 기억들을 찾아 헤맸다. 얼마 전 그림책 심리학자, 신혜은 교수님이 서핑을 할 때 파도를 피하는 방법은 뒤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이라고 말해주셨는데 나는 그 파도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뛰지 않는 아빠의 굳어버린 몸과 얼굴을 만지던 그 장면을 계속 떠올렸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순간순간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넋 놓고 길을 걷다가 주차장 차단기에 얼굴을 부딪치기도 했다. 얼굴이 따끔거리고 얼얼했는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이 상처가 흉터로 남는다면 평생 아빠를 기억하며 살겠지 생각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몸에 새기려고 타투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다. 


사진 속에서 다시 아빠를 만나는 중이다. 잊지 않으려고 무뎌지지 않으려고 20년의 시간을 되돌아가며 좋았던 순간을 다시 기억에 새긴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다시 생생하게 만나는 것을 영원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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