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걸음 Jan 24. 2022

아빠가 죽었다

아빠가 죽었다. 갑자기 죽어버렸다. 아빠의 소식을 듣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밥을 안 치는 일이었다. 허둥지둥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아빠가 죽었지만 내 자식은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아이는 그림책을 꺼내들고 왔다. <할아버지는 어디 있어요?> 책을 펼치며 책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울었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조금 좋기도 해. 드디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니까.”


코로나가 시작된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릴 것 같은 불안함에 부모도 만나지 않았다. 지난달 아빠의 생일에도 돈 몇 푼을 보내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그게 아빠와 마지막 연락이었다. 아빠는 정말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죽었다.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숨을 멈췄다. 아빠의 죽음보다 아빠의 삶이 불쌍해 미칠 것 같다.


아빠에게 가는 길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그 안에 아빠가 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빠가 왜 죽었는지도,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내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전화와 물음에 동생이 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왜 죽었냐고 어떻게 죽었냐고 묻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부고를 내 손으로 알리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것에 비참해졌다.


아무리 잠을 청하려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아빠가 어디선가 나타날 거 같아서, 영혼이라도 올 것 같아서 그렇다. 그럼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예전에 본 어떤 일본 영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가기 전에 들리는 정류장 같은 곳이 있다고 했다. 아빠가 그 정류장에 들려 인사해 줬으면 한다. 그럼 나도 “아빠 고마워, 아빠 미안해. 아빠 사랑해” 목이 터져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다고 아빠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아빠에게 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귀신이라도 그게 아빠라면 만나고 싶다. 아빠 어디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