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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an 24. 2022

아빠의 죽음으로 내가 배운 것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그냥 흘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빠를 떠나보내는 동안 눈이 많이 내렸다. 동생과 엄마는 새하얀 눈송이를 아빠가 내려주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아빠의 사고로 순식간에 변해버린 나의 삶이 눈으로 덮여버린 것 같았다.


이 사고의 책임자인 시공사 대표는 끝내 사과도 하지 않았고 조문을 오지 않았다. 사고의 수습도 하청업체에 맡겨졌다. 하청업체를 통해 장례비용을 내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아빠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합의는 언제쯤 하실 계획이냐며 의사를 물어왔다. 사람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화낼 힘도 없었다. 아빠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지만 결정해야 했다. 가장을 잃어버린 엄마의 남은 삶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변호사와 노무사를 선임했고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하루하루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문득문득 이제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쓸쓸해진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아빠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아직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못하나 보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생각하며 더 많이 가족의 손을 잡고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뜬금없는 질문인데요. 작은 아빠에게 우리 아빠는 어떤 형이고 어떤 사람이었어요?”


장례 기간 동안 아빠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작은 아빠에게 나는 물었다. 아빠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또 함께 해온 작은아빠는 아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지하고 존경하는 형이었지. 태어나 단 한 번도 형과 싸운 적이 없어. 싸울 일도 없었고 싸울 필요도 없었고. 내가 성인이 된 다음에는 이름 대신 항상 나를 동생아~ 동생아~ 하고 불렀어. 내가 동생을 대우해 줘야 사람들도 무시하지 않는다고. 나에게는 그런 형이었지.”


아빠가 떠나고 나서야 아빠의 삶에 대해 나는 많은 것을 알아간다. 내가 태어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빠가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자신을 위해서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은 아빠가 오랫동안 매년 연말이면 적십자 회비를 냈다는 사실도 무척 놀랐다. 작은 아빠의 텃밭에는 아빠가 기르고 가꾼 무가 흙 속에 보물처럼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아빠가 유일하게 남긴 선물 같은 무를 꼭 소중하게 요리해 먹고 싶다.


아빠가 삶으로 보여준 대로 남아 있는 우리도 이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아빠의 죽음으로 내가 배운 것을 이제 내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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