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쓸모 있음에 관한 마사 누스바움의 책 <시적 정의>를 읽고 최근에 읽다가 멈춘 소설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은희경 작가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연작 소설집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민들레는 민들레’와 같이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바라보는 타인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글은 첫 번째 소설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라는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오래전에 미국에서 겪었던 유사한 경험이 나의 감정 어떤 부분을 강하게 흔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1시간의 비행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불안에 떠는 내가 12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여행이다. 뒤돌아보면 술이나 약물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시작부터 나는 미련하게 버텼다. 비행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추락할 것 같은 불안에 계속 기도했다. 안전하게 도착하게 도와달라고. 새로운 곳에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살려달라고. 낯선 나라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일하지만 한인회사에서 일을 할 것이고 한국 사람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도 끝도 없는 기대 같은 것이었다. 언어의 장벽보다 더 어마어마한 벽이 그곳에 숨어있는지 모른 채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한국을 떠났다.
한국에서 새사람이 왔다며 모두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 쳐다보듯 신기하게 쳐다봤다. 내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한인마트의 사장은 응원이랍시며 내 어깨와 손을 시시때때로 주물럭거렸고, 나에게 월급을 주던 사장은 틈만 나면 직원들의 험담을 나에게 늘어놓으며 이곳에서 신분을 유지하고 살려면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한다고 나를 앉혀놓고 훈계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또 다른 직원에게 내 정신 상태를 들먹이며 욕을 했다.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때 사장이 나에게 하던 말과 행동들이 모두 가스라이팅임을 알아차렸다. 그곳의 직원들은 주말마다 호의를 베푸는 척 나를 데려가 자신의 집에 하숙을 하기를 바랐다. 나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국 사회에도 한인사회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였고 내가 무슨 희망을 찾는답시고 이곳에 와서 개고생인가 싶어 괴로울 때면 아무도 없는 성당에 가서 펑펑 울었다. 그래도 버터야 한다고, 혼자 힘으로 떠나왔으니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살았다. 저녁 값을 아끼려고 차 트렁크에 음료와 견과 바를 쌓아놓고 먹었다. 나를 이곳에 소개해 준 대행사와 미국 에이전시에 되지도 않는 언어로 항의해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내 얄팍한 언어 실력으로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간신히 1년을 버티고 두 손 두 발 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때의 경험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 나는 승아이기도 했고 민영이기도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 삶의 다른 기회는 없을 것 같아 미련하게 버텼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내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종종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나를 또 어떻게 이용하려나 싶어 믿지 못했고,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치를 떨며 한국인들이 있는 곳을 피해 다녔다. 결국 나는 나는 내 스스로 문을 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분명 미국 생활에 자유를 느끼고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그때의 외롭고 힘들었던 기억에 빠져들었다. 아마 아무에게도 쉬이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얼굴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을까? 그때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어렵고 힘든 일은 버티며 참지 않는다. 그럴만한 체력과 감정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에게만 최선을 다하며 살기도 바쁘다. 성공이나 미래 같은 거창한 꿈도 없고 그저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보내면 만족하는 일상을 산다.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으면 나는 웃으며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