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에 대한 글을 다시 쓰게 될 줄 몰랐다.
지난주에 글을 올리던 날 외출했다가 돌아왔더니 앞글 마지막에 언급했던 책이 와 있었다. 이미 글을 올려놓았던 터라 마음 편하게 읽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된 지 오래된 품절도서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읽어야 할 거 같아서 중고로라도 주문을 했던 건데, 책을 주문하길 정말 잘했다.
이 책은 사건만 설명을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앞뒤 맥락과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쓰여 있어서 먼저 읽었던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이 책을 읽고 이해되기도 했다. 더구나, 나혜석기념사업회 유동준 회장의 권유를 받고 자료를 넘겨받아서 쓴 책이라는 점에서 먼저 읽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앞서 읽었던 책과 정반대인 이야기도 있고, 다른 책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생략되었던 이야기도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읽은 거 잊어버리기 전에 순서는 무시하고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기로 한다.
━ 수덕사에서 친구인 일엽 스님이 자신이 가르침을 받고 스님이 되게 해준 만공 스님을 소개시켜줬을 때 만공 스님이 나혜석이 정말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걸 알고 '고근'이라는 법명을 지어주면서 스님이 되는 방법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설명을 해주었다. 나혜석이 생각을 바꾸어 스님이 되겠다는 말을 번복하지만, 이 이름은 나중에 나혜석의 오빠와 올케 배숙경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나혜석을 양로원으로 보내기로 했을 때, 수속과정을 밟기 위해 나혜석의 나이를 예순 살로 하고, 성은 첫사랑이었던 최승구와 같은 최씨로 해서 '최고근'으로 써먹게 되었다.
━ 나혜석은 오빠네 집에 불쑥 찾아갔을 때 올케와 조카들이 나경석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어서 오빠집에 몰래 드나들다가, 어느날 오빠한테 들킨 후로는 오빠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지만 들키기 전보다는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거기다, 둘째 큰아버지 나기형이 아들이 없어서 양자로 갔던 수원의 큰오빠 홍석(연기자 나문희 씨가 나홍석의 손녀다.)과 개성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딸 나열의 집에도 드나들었지만 가족들인데도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는 티를 냈다. 모든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짐스러워하는 폐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나혜석을 오빠와 올케가 양로원으로 보냈다. 먼저 읽었던 책에서는 오빠인 나경석이 실망한 여동생을 집에 들이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올케가 힘을 써서 양로원으로 보냈던 거라고 읽혔는데, 이 책에서는 나경석과 배숙경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으로 나온다.
━ 나혜석이 수덕사에 있을 때 나경석이 얼마간의 생활비를 보내주기 시작했는데, 나혜석은 오빠의 이유 있는 속도 모르고 그 돈으로 서울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거지꼴에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친구들을 찾아다녔지만 반겨주기는 커녕 의도적으로 피하다 보니 갈 곳이 없어서 오빠집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양로원으로 이어졌다.
━ 나혜석이 수덕사에 찾아가서 스님이 되려다 그만둔 이유가 일엽 스님과의 자존심 싸움에 밀렸기 때문이고, 그래서 삐진 나혜석이, 머물고 있던 수덕사 근처 여관을 떠나 합천 해인사로 갔다는 얘기는 일엽 스님의 소개로 해인사에 갔다는 이 책과 완전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 나혜석이 동생 지석과 학교에 입학할 때 나명순, 나양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졸업할 때 나혜석, 나지석이 된 것도 오빠 나경석이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였다고 나온다.
━ 나경석이 혜석을 일본으로 유학시킨 이유도 혜석의 특별한 재능을 키워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도 신교육에 눈을 떠 조국의 독립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란다.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막내 여동생 지석의 유학까지 주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하고, 나중에 이광수와 결혼을 하게 되는 나혜석의 친구 허영숙에게도 일본 유학을 권했다고 다른 책에 쓰여 있는 걸 보면 이 얘기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나경석은 두 여동생보다 먼저 일본에 유학을 하고 있었고, 일본에 불고 있는 신여성 바람을 의식했을테고 후에 만주에서 고무공장을 운영하면서 독립군 자금을 대주었다는 얘기로 볼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동생 지석은 아버지의 '1년'이라는 허락 조건대로 1년 만에 중퇴하고 귀국해서 결혼을 했다.
다른 책에서는 나혜석의 유학은 오빠 나경석이 아버지를 설득해 일본에 유학시켰다는 얘기까지만 해놓아서 나혜석이 워낙 똑똑해서, 여자는 여자고등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시집을 가면 된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꺾고 아버지를 설득해 일본 유학을 주선했다는 정도로 읽혔고, 동생 지석은 학교에 입학하면서 나혜석과 함께 이름이 바뀌는 과정을 언급할 때 한 번 등장하고 마는데, 동생 지석의 이름과 유학 과정에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 나혜석은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이혼만은 막으려고 했던 생각에 김우영에게 현모양처가 되겠다고까지 했다. 김우영은 이혼을 성립시켜놓고 보자는 계산에서 정말 자식을 못 잊겠다면 이혼 후 자식들과 동거를 해도 좋고, 전과 똑같이 지내도 무관하다는 편지까지 보내왔다. 나중에 자식들을 못 만나게 경찰에 신고까지 해서 접근을 막은 걸 보면 이건 이혼 도장을 찍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음이 맞았다. 재산 분할 문제와 함께 김우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인간으로 살고 싶다>에서 시어머니는 죽기 직전,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미를 데려와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김우영이 아이들에 대해 혹은 아이들 입장에서 발언하는 건 읽은 책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큰아들 '선'이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다면 12살의 나이에 사망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혼고백장>에서 나혜석은 "부부간 충돌이 생긴 뒤는 반드시 아이가 하나씩 생겼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부부싸움 직후 화해의 제스처로 성관계를 갖는 건 여자에겐 최악이다. 이런 것만 봐도 김우영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밀어부치는 성격이라는 게 보인다.
최린은 나혜석과의 관계가 자꾸 거론되니까 김우영과 이혼이 성사되면 조용해질 거란 계산 하에 이혼부터 시켜놓고 보자 해서 나혜석의 이혼을 종용하면서 이혼을 하면 미래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떡밥을 던져놓고 막상 이혼을 하자 모른체 했다. 최린은 조선 땅이 아닌 파리였기 때문에 나혜석과 불륜을 저질렀던 거고, 귀국 후 국내에서 나혜석과 얽히게 되자 귀찮아졌던 거다. 김우영이나 최린이나 김우영의 표현을 여기에 써먹자면 미래야 어떻든 현재만 사는 사람들이었던 거다. 나혜석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었다면 두 사람 모두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미련없이 돌아서서 자기 길을 가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부모님 덕에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 환경 덕분이었는지 그렇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 김우영이 이혼을 선언하고 나서 나혜석이 이광수한테 조언을 구하러 갔을 때 이광수가 언급한 스웨덴의 여성 사상가 엘렌 케이의 말대로 불화한 부부 사이에 기르는 자식보다 이혼하고 새 가정에서 기르는 자식이 양호하다는 말을 나혜석은 단지 이론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며 모성애를 강조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나혜석이 경제적 능력이 되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이혼하면 되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에게 직업이 장려되던 때도 아니었고, 이혼하면 아이들 양육권은 아빠에게 갔으므로 이광수가 조언한 엘렌 케이의 말은 나혜석에게는 염장을 지르는 말일 뿐이었다. 기생 출신 신정숙과 살고 있는 아빠에게 아이들을 두고 떠나라는 말로 이해될 수밖에 없으니까.
━ 나혜석의 실수들
1. 나혜석은 최승구만큼 김우영을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게 아니라 처한 상황(엄마마저 돌아가셔서 혼자에다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압박)에서 조건이 맞아서 김우영을 택했다. 심지어, 김우영에 대해 이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였어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까지 했을 정도로 김우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나혜석은 김우영의 일방적 밀어부치기식 사랑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합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두 사람의 뜻이 맞는 함께하는 사랑을 원했지만, 김우영의 일방적 밀어부침을 알면서도, 그걸 역이용해서 세 가지 조건에다 최승구의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요구했던 데서 이미 삐그덕거림의 징조가 보였다고 할 수 있다.
2. 구미 유람을 떠날 때, 다녀온 후를 생각하지 않고 집은 물론 돈이 되는 모든 것들을 팔아서 여행 경비를 장만해서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 여행에 들떠 '일단 떠나고 보자.' 이런 생각으로 다녀왔던 게 화를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을 다녀온 후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참 이상하게도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아닥친다. 무슨 막장드라마 보는 줄 알았다. 김우영이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서울로 올라가고 아이들과 남은 상태에서, 청춘과부로 친정에 와 있던 시누이가 모든 일에 시어머니 코치노릇을 하는 것도 모자라 여행 끝나고 온지 한 달쯤 후, 농사를 짓고 있던 김우영의 셋째 삼촌이 농사에 재미를 보지 못하고 조카가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왔고, 며칠 후 둘째 삼촌이 자그마치 다섯 식구를 이끌고 몰려와서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학자금까지 부담할 것을 나혜석에게 요구했다. 두 삼촌이 얹혀 사는 것도 모자라 둘째 삼촌은 예산도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켜서 학자금을 떠넘기고 1년간만 휴학하여 달라는 요구에도 노발대발했다.
3. 나혜석은 경제적 궁핍을 파리에서 헤어진 지 2년이 다 돼가는 최린을 통해 타개하려고 했다. 더구나, '다시 사귀기를 바란다.'로 끝맺은 편지가 일이 꼬여서 이혼을 부르게 되었다. 물론, 나혜석의 진심이라기보다 최린을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에서 절박한 심정을 써넣은 말이겠지만 이 말은 '내 평생을 당신에게 맡기오'로 왜곡되어 김우영의 귀에 들어갔고 김우영이 이혼을 결심하는 결과를 낳았다. 도와줄 사람이 최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최린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유럽에서 마무리까지 하고 돌아온 마당에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사람을 수단화할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 성격에 왜 까놓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는지...
4. 처음엔 김우영의 이혼 선언에 재산 반분하자고 했다가 김우영이 못주겠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모성애 때문에 이혼 못하겠다고 했다. 김우영한테는 <이혼고백장>을 발표했고, 최린한테는 <고소장>을 날렸다. 김우영한테는 이혼하기 싫었다고 했고, 최린한테는 이혼하라고 해서 이혼했는데 왜 책임 안 지냐를 물었다.
(폭망입니다. 다시 쓸 줄도 몰랐지만 이렇게 길어질 거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번엔 세 개로 자릅니다. 다음 글은 각각 14시, 15시로 예약해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