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간의 유럽 배낭여행
오래된 습관처럼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검색만으로도 여행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말이다.
좀 힘들 때, 우울할 때, 심심할 때 등 수시로 커피 한 잔과 노안 안경을 장착하고, 자판을 신나게 두드리면서 금세 실제로 여행을 하는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2019년 6월, 그날도 습관적으로 특가로 나온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와! 뭐지? 아ooo 직항으로 파리 in 로마 out 왕복 항공권이 70만 원이라고?' 있을 수 없는 파격적인 가격에 흥분해서 시간이 되는 작은아들을 급하게 섭외한 후 덜컥 항공권을 예약했다.
6개월 후에 떠나는 항공권이다.
처음 몇 달은 마냥 좋았다. 20일간의 여행루트도 짜고, 평소에는 관심 밖이었던 서양미술사 같은 책도 보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많이 보기 위해 세계사와 미술사에 빠져보기도 했다. 게다가 여행 영어 회화도 매일 외우면서 설레는 시간을 보내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 시간이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숙소와 교통편 등 모든 일정에 대한 예약이 끝나고 실시간 여행 정보를 얻고자 유럽여행카페에 가입해서 후기들을 보고 있었다. '엇! 내 나라 밖은 너무 위험하구나! 어떡하지? 가야 해 말아야 해?' 너무나 심각한 갈등에 직면했다.
소매치기, 싸인단, 파리 대중교통파업, 바가지, 화장실, 베드버그등 막연하게 꿈꾸던 배낭여행이 여러 사람의 조언을 더하다 보니 실제로 당할 일처럼 심각하게 다가왔다.
'가지 말까' 마치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우리나라 곳곳이 너무 아름답고, 내가 안 가본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깨끗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면서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배낭여행을 하루에도 열두 번 무르고 싶기도 했다.
결국, 결전을 앞둔 군인처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비장하게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쓸데없이 미리 걱정했던 시간이 바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유럽에서의 20일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체코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누텔라를 잔뜩 바른 굴뚝빵을 먹으며, 흘러내리는 누텔라에 손이 끈적거리는 것 마저도 좋았다.
별을 뿌린 듯 사방이 꿈속 같아, 마치 약에 취한 듯 행복감에 취해 있을 때 눈이 마주친 나와 비슷하게 취한 표정의 외국인 부부. 그때 우리는 입까지 벌리고 크게 웃으며 서로의 기분에 함께 동화되었다.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어마어마한 식당의 규모에 놀라고, 그런데도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고 얼마나 소란스러웠는지, 정신이 혼미해져 갈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친절한 현지인, 그녀는 정신없이 바쁜 웨이터에게 우리 대신 주문을 해주고 동전까지 정확하게 계산까지 해주었다. 서로 번역기 돌려가며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워 번역기 앱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녀가 베풀어준 호의와 함께 찍은 사진은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꽤 자주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미드나잇 파리'를 보면서 몽마르트르 골목길과 퐁네프 다리를 지나 센강 변의 북캐스트를 떠올리고 미소 짓는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면서 피렌체의 두오모와 아르노 강의 다리들, 미켈란젤로 언덕을 찾아가면서 또각또각 걸었던 골목길들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지금도 나는 유럽의 어느 아름다운 거리로 순간이동하는 듯한 즐거움에 빠진다.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여행을 떠나기 전이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여행을 다녀와서 추억이 팝콘처럼 주체하지 못하게 튀겨져 나올 때가 아닐까!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유럽 배낭여행은 아직도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행복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