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일을 하는 남편 덕분에 요즘 손을 보태느라 바쁘다. 궁즉통이라고 명함과 광고 스티커 시안도 셀프로 해결하고, SNS 홍보 관리는 기본이다. 사다리도 잡아주고, 몽키도 찾아 주고, 작업하는 사진도 찍어주고, 이제는 작업 흐름을 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그때그때 필요한 도구를 미리 들고 서 있을 경지에 가까워졌다. 쫓아다니며 잔소리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말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남편으로부터 그동안 받은 구박과 핀잔을 되갚아줄 타이밍이다.
“도구함 제때제때 정리 좀 하지! 이것 봐, 여기에 넣어놓고 못 찾잖아. 아휴~! 적당히 하라니까 또 예술을 한다, 예술을 해! 이러다 날 샌다. 집에 가야지.”
제일 재미있을 때는 어서 글을 쓰라고 마감을 재촉할 때다. 남편도 블로그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데, 나더러 빨간 펜을 든 악덕 편집자라고 놀린다. 그런데 그 덕분에 브런치 작가도 되고 어느덧 벌써 글도 제법 쌓이지 않았는가. 이제는 알아서 잘 쓴다. 아니다. 원래 잘 썼다.
워낙 변수도 많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 번 손을 대면 끝장을 봐야 하고 너무 꼼꼼한 탓에 자꾸만 시간이 늦어진다. 다음 집에도 가야 하는데. 실제로 남편은 실리콘으로 정말 예술을 하고 있다. 집에서도 꾸준히 동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하고 틈날 때마다 계속 연습을 한다.
집수리를 의뢰하는 고객들이 아무래도 일과 시간에 혼자 있는 주부들이 많다 보니 부부가 함께 다니면 기사 아저씨 혼자 오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더 안정감이 들어서 좋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분위기도 훨씬 편안하고 친숙해져서 금세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잘 꺼내 놓으신다. 따뜻한 커피나 차도 내어 주시고, 텃밭에서 갓 따온 과일도 나눠 주신다. 작업 결과가 무척 마음에 드셨는지 가끔 그 자리에서 바로 현금을 내어 주시기도 한다. 게다가 늦은 시각까지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고생 많으셨다고 선뜻 조금 더 얹어서. 이심전심이라고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얼씨구나 ‘인 마이 포켓’이다.)
바쁜 직장인들도 많다 보니 늦은 저녁이나 주말 휴일에 다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도 종종 생긴다. 자영업자로 시간이 자유롭기도 한 만큼 휴일 없이 5분 대기조가 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주말에는 아침 일찍 싱글 여성 의뢰인댁에 방문했다. 늦잠이 자고 싶었지만, 함께 따라가길 잘했다 싶었다. 그분도 훨씬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살림이 아직 단출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우리가 욕실을 수리하는 동안 그분은 사부작사부작 여기저기 정리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젊은 친구가 부지런하네. 참 좋은 습관이야. 나도 좀 본받아야 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 모습을 보고 오니 나도 급 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비록 작심삼일이라도. 작업을 마무리하며 이제는 내가 먼저 "어디 못 박을 데 없어요?"하고 묻는다. 온 김에 여자 혼자서 하기 힘든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고 싶었다. 마침 사놓고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샤워기 교체를 덤으로 해드렸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그렇게 함께 다니다 보니 정말 다양한 집들을 보게 된다. 오피스텔 원룸에서부터 49평 아파트까지. 미니멀리즘에서 맥시멀리즘까지. 아파트도 정말 많고 다양하고 구조도 모두 제각각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물론 다양하다. 보는 눈이 넓어지니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된다. 사회성과 공감과 소통의 감각도 유지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듯이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부분이지만 내 눈에 들어오고 내 마음에 자꾸 걸리면 수리가 필요하다. 손댈 일이 생긴다. 불편하게 걸리는 부분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이 일이 참 뿌듯하고 보람 있게 느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