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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Feb 15. 2024

나는 가족센터의 계약직 보조인력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을 읽다가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내가 아는 사회복지 기관 중 가장 통합적인 장소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생각해 보니 인생 후반전 돌봄의 방향성을 세운 후 지난 몇 주 동안 처음으로 내 삶이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느끼게 해 준 일들을 지나오고 있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떨어졌다가 운명처럼 추가 합격을 하고, 신체검사를 받고, 필수서류를 제출하고…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다다른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서류를 검토하는 일이다. 서류 목록을 확인하고 정렬하고 묶는 것. 두 손은 분주하고, 두 눈은 부릅뜨고, 빽빽한 서류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숫자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서류의 모양새를 바르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기나길게 느껴진 몇 분이 더 지난 후, 나는 진정으로 이 역할의 달인이 될 수 있겠다고 믿고 싶어 진다.  

    

 “목록과 합계를 검토해요.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반드시 그 순서대로.”   

  

‘이건 복잡할 것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보같이 굴어서도 안 돼.

항상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한 번 더 검토를 빼먹지 말고.’     


이곳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여기 서류들은 세금의 쓰임의 증거라는 걸 상기시키려고 노력해. 너와 나, 우리는 국민들, 시민의 혈세로 일하는 거야.    

 

서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서류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서류들을 보고 또 본다. 나는 서류의 엄청난 빽빽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처음 내가 느낀 어마어마함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할 수 있는 상대도 별로 없었다. 그 서류들의 압박감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벽돌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틀려도 말이 없는 종이더미들과 내내 소리 없는 씨름을 이어갈 뿐이다. 고요한 분주함이 우러나오는 분위기로 보아 나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열렬히 그 고통에 맞섰던 듯하다. 그들이 일해온 결과물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나는 이 업무를 본래의 의도대로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진짜다. 그래, 이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저걸 다 해내지?’ 싶은, 한없이 위대해 보이는 각 파트에서 친절한 노련미를 뽐내는 우리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책정된 예산의 단 1원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골고루 잘 배정되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늘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는 경영진, 모든 곳과 모든 것에 그리고 모두에게 언제든 접근이 가능한 우리 사무실의 마스터키 같은 환경미화원 여사님, 가끔 들러 문서파쇄기를 비우는 사회복무요원, 매주 무거운 생수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여기저기 채워주시는 정수기 담당 사장님, 좀 더 민감한 대상자들을 다루는 전문 상담사 선생님들, 제2 언어 통역사들, 그리고 통화는 많이 해도 마주칠 일은 적은 아이 돌보미 선생님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활동하는 서포터즈 자원봉사자들까지. 보조인력인 나를 포함해 지금까지 대략 파악한 이곳의 숨은 조연들이다. 주연은 누구냐고? 저 서류들!!     


나는 동료들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해 왔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온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 그저 서로 각자의 업무에 쫓기느라 여유가 없기도 하고, 솔직히 다들 나보다도 한참 젊고 아직 성급하게 먼저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료들과 밝게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지금껏 일했던 그 어떤 직장에서보다도 이곳의 동료들이 얼마나 호의적이고 수월한 대화 상대인지 깨닫고 살짝 감동을 받기는 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각자 자기 업무를 찾아 흩어지고 나자 마침내 나는 완벽히 고독한 상태로 조용히 바쁜 하루를 시작하며 유니폼을 입듯 단순하고 명확한 마음이 된다. 일을 하다 보면 나는 정말로 많은 순간 진심으로 겸손한 마음이 든다. 이제 나는 보조인력으로서 수많은 사회복지 실무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상황과 변수들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 멋들어진 타이틀이나 경력을 가지지 않고서라도 그저 배경의 일부처럼 존재하는 내가 관찰과 본능을 통해 파악하고 알게 된 것들이 실제로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일도 없고, 추진해서 성과를 내야 할 프로젝트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어떠한 미래 목표도 없다. 이미 숙달된 지금 이 일을 앞으로 10년 동안 더 한다고 해도 아무런 발전이 없으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정말 솔직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전혀 움직이고 싶지도 않다.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버티고 밀리고 긁히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잃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조금 더 게으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 단순하고도 완전한 고독 속에서 서성거리고, 빙빙 돌고, 아무 무게감도 느끼지 않으며 숨을 고르는 동안 천천히 다시 마음을 열어 인간의 아름다움과 존엄함을 발견하고, 다정함과 애틋함을 느끼며 다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내 자신에게 허락하기를.      


나는 명랑하고, 인내심 많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겸손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보조인력이다. 뽐내지도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나에게서 피톤치드처럼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모두가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나 보다. 멀리서 나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나의 고독이 혹여라도 외로울까 첫날부터 먼저 살포시 다가와 몸을 낮춰 눈 맞춤을 하며 비스킷을 건네는 얼굴도 예쁘고 말씨에 마음씨도 예쁜 선생님, 늘 무심한 듯 넌지시 챙겨주는 나의 선임, 점심을 함께 먹자며 부르는 여사님,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혹시 가능한지 ‘부탁하며’ 몹시 고마워하며 핫초코를 건네는 선생님, 무거운 짐을 함께 찾아 들어주며 어서 가자고 내 일처럼 앞장서서 거들어주는 선생님, 설날에 손수 만들었다며 달큼한 식혜를 한 잔 담아서 자리까지 직접 가져다주신 팀장님.


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친절과 선의 그리고 어쩌면 인간의 의미를 다시 가르쳐준 것은 그런 조용하고 다정한 순간들일 것이다.    

 

나는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기타 사회복지 종사자입니다.







이번 글은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으며 필사하다가, 각색해서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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